지인으로부터 왕선생님의 사과문이 실렸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방금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과문'이 아니라, 부드러우나 엄한 '꾸짖음의 글'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 모든 분란의 시초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이견(異見)도
언어소통의 문제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부족"으로부터 비롯하였습니다.
또, 그렇게 인식하여야만 비로소,
왕선생님의 해명을 바르게 받아드렸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익은 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로 선생님의 경륜과 열정을 재단하고 질타한
몇몇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번 일로하여 전체 한국민에게 나쁘고 서운한 감정은 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아니했던 까닭에 침묵하였으나,
선생님의 주장에 공감하고 매력을 느낀 많은 애호가들이 있었을 것임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 들리셔서, 이 좁고 고여있는 연못에
큼직한 돌 하나를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왕선생님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최명수 배상
방금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과문'이 아니라, 부드러우나 엄한 '꾸짖음의 글'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 모든 분란의 시초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이견(異見)도
언어소통의 문제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부족"으로부터 비롯하였습니다.
또, 그렇게 인식하여야만 비로소,
왕선생님의 해명을 바르게 받아드렸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익은 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로 선생님의 경륜과 열정을 재단하고 질타한
몇몇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번 일로하여 전체 한국민에게 나쁘고 서운한 감정은 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아니했던 까닭에 침묵하였으나,
선생님의 주장에 공감하고 매력을 느낀 많은 애호가들이 있었을 것임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 들리셔서, 이 좁고 고여있는 연못에
큼직한 돌 하나를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왕선생님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최명수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