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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수냐 점수냐

by 윤영진 posted Oct 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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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
위에 글을 올려주신 안병원님과 박명철님과 같은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
소위 말하는 '고수'의 경지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진공관이나 나쁜 스피커는 없고, 그것을 잘 이해하고 다스려서
자기 마음에 흡족한 소리를 듣는 것이 지고지선이라는 깨달음이 바로 오디오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 다다를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눌스님 이후 크게 논쟁의 화두가 아니었던 돈수와 점수의 수행론이
성철스님에 의해서 대단한 논쟁으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돈오돈수는 깨달은 이후(돈오)에 더 이상 궁극적으로 닦아야 할 것이 없이
단박에 모든것이 전부 닦아졌다(=돈수).
그러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는 구경각의 깨달음입니다.

돈오점수는 깨달은 이후(=돈오)에 즉 단박에 깨쳤다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살아온 습기(習氣, 과거의 잘못된 습관)를 완전히 제거 하지 못했기에
여기서 벗어나려면 점차로 습기제거를 위한 닦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꼭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오디오에 있어서 자기 기준을 세우게 된 지점을 "돈오"에 비유하자면,
즉, 처음에 말한 '고수'로서의 주체적 판단기준을 성립시킨 후를 말하자면

그 이후 '돈수'로 갈 것인지, 점수로 갈 것인지의 갈래가 또 남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허름한 6.5인치 풀레인지에 6V6 싱글앰프로
'돈오'의 깨달음을 얻고, 그 이후 기기에 대한 욕심 없이 좋은 음악을
즐기고 있다면 이는 '돈수'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깨달음 이후에도
일정한 기본 기준은 유지한 채
유닛을 바꿔본다든지, 인클로져를 다르게 모색해 본다든지
앰프의 출력관을 바꿔본다든지 하는 것은 점수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5극관에서 그다지 비싸지 않은 3극관으로 변화를 구해본다든지 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수백만원짜리 ED관을 쓰겠다고 하는 식은 '점수'의 본질과도 벗어나는 것이겠지요.

만약 깨달음의 경지의 지고한 수준을 말하자면 오디오에서도
돈오돈수가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디오 취미란 것은 결국 그 어느 한 곳에 모두 귀일한다고 해도
다른 샛길에 대한 호기심과 시행착오를 즐기는 데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도를 닦는 것과 달리 이런 시행착오를 과오라고 여기지 않고
재미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돈오돈수의 경지에 이른 분들이 이제 오디오 수행길의 초입에 있는 분들에게
아무리 방황하지 말고 돈오돈수하라고 해 봤자
따르기 어려운 주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너무 경직된 외길 보다는
너무 이 정도 선에서 벗어나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욕망 가는대로
갈지자 걸음으로 휘영청 즐겁게 노는 길을 마음으로 주고 받는 것이
바람직한 길 같습니다.

아무리 허름한 기기로 천상의 즐거움을 얻는 길을 말로 전한들
실제로 몸과 마음과 지갑을 희생하면서 경험한 다음에
그 길을 이해한 것과 같겠습니까?

저도 아들들에게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해 보고 느낀 다음에야 수긍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