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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의 계절

by 항아리 posted Jun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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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공관은 동작의 폭 만큼이나 소리가 변화하는 폭도 큽니다.
 그 폭 안에서 뭔가 이것저것 두루 만족시키는, 그렇게 들리는 동작의 한 지점을 찾아 결정하게 됩니다.
 그것은 함께 어울리는 트랜스나 부품들과도 상호 작용을 하고, 함께 붙여쓰는 스피커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경우가 있어
 항상 그렇더라, 하는 식의 고정된 동작 결정값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전체적인 구성에 맞게 최선의 동작을 찾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소리를 직접 만지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들만의 길을 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제각각 아는만큼, 배운만큼, 이해하는 만큼 제 방식대로 소리를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소리, 네 소리로 갈리게 됩니다.

 결국은 하나의 소리일 뿐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소리로 다른 모든 내 소리, 네 소리들을 아우르거나 덮어버릴 수는 없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에겐 완벽한 것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그게 뭔지 모르고 섭취할 수도 없으며 소화할 수도 없습니다.
완전이니 완벽이니 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까닭입니다.

 바로 그 불완전성, 이리저리 흔들리는 변화의 폭은 진공관의 주요 특징이지만, 인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재미와 맛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와 맛만 추구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병들거나 늙어가며, 그라고 필연적으로 죽기 때문입니다.
 
 -여기 평생 재미와 맛만 좇다가 뒈진 녀석 잠들다-

 그런 묘비명은 왠지 모르게 허전합니다.
 그의 재미와 맛은 그만의 재미와 맛일 뿐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공감과 공유 또한 불가능합니다.

 

 공감과 공유.
 하나의 소리가 많은 사람의 공감과 공유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소리, 훌륭한 소리일 것입니다.

 인간이 해내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이뤄낼만한 가장 가치있는 일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다한들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공감하는 좋은 소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두 갖고 있는 똑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양심.

 

 양심은 모든 인간이 유일하게 똑 같은 어떤 절대적인 불변의 유일무이한 무엇입니다.
 물론 양심을 다뤄내는 방식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나 그 바탕과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양심은 인간을 말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며, 양심을 구현해내는 방식에 따라 사람의 질이 드러나게 됩니다.

 드디어 인간으로 살면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양심은 모든 인간이 다 갖고 있으나,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생명과 함께 어딘가에서 깃든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걸 지표삼아 그걸 좇으며 살아가라는 가장 강력한 장치일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이 이미 방향을 설정하고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전통이 알려주는 하늘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불성이니 어떤 절대적인 무엇이니 하는 것들은 그 양심의 다른 표현일 뿐,
거기에 또 다른 대단하거나 신비스러운 무엇은 없는 걸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서든 양심을 발견하며, 그가 양심을 어떤 방식과 경로를 통해서 어떤 모양으로 드러내는지
보게 됩니다.
 그런 동작과 진공관이 소리를 표현해내는 방식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진공관은 개같이 동작시키면 개소리를 내며
 선비처럼 동작시키면 선비같은 소리를 냅니다.
 사람 또한....

 

 개고기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보신탕 애호가들이 이런 맛 일찌기 어디에서도 맛본 적이 없다고 극찬해 마지않는
45년 전통의 개고기를 먹으며 양심을 생각합니다.
 
 -여기 평생 양심이 뭔지도 모르고 양심을 추구하던 녀석 잠들다-

 역시 이게 덜 허전해 보입니다.
 
 양심은 인간에게 깃든, 모든 인간이 다 갖고 있는, 그러나 인간이 소화할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진리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 똑같은 걸 갖고 있으니 남의 양심 볼 필요없고 자기 양심만 보고 됩니다.
 다른 이를 향해 양심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자들이 제가 알기로는 가장 양심없는 자들입니다.
 그저 자기 양심 살펴가며 양심이 알려주고 가르쳐주는대로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진정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45년 전통의 개고기를 먹고 그 절륜한 영양분을 에너지 삼아서.
 
 진공관과 소리도 그 이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진공관 또한 그게 뭔진 몰라도 어쨌든 양심있는 소리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오늘도 45년 전통의 그 개고기집은 오늘 소비할 개고기를 잔뜩 삶아내 식히고 있을 시간입니다.
 뜻하지 않게 뒤늦게 개고기에 중독된 듯 합니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꼴도 보기 싫고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보면 다른 집 개고기는 먹기 힘드니 개고기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오직 45년 전통의 개고기여야만 합니다.

 슬슬 45년 전통의 개고기집으로 갈 채비를 차리면서 그 45년의 일관된 양심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양심있는 소리와 양심있는 삶을 생각합니다.
 
 일찌기 이소룡이 그의 명저 '절권도의 길'에서 말했습니다.

 

  -무(無)에 대해서 연구하지 말고 잠시라도 무의 상태에 빠져 보아라.

 

 연구해봤자 알 수 없고 섭취할 수도 없으며 소화할 수도 없다는 면에선 무니 도(道)니. 양심이니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양심을 따르면 편하고, 따르지 않으면 불편하다.
 오직 그렇게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양심을 따랐는지 짐작할 뿐입니다.
 
 소리 또한 그와 같을 것입니다.
 양심있는 소리는 듣기 편하며, 양심없는 소리는 듣기 불편하다.

 

 개고기라고 다르겠습니까.

 양심있는 개고기는 맛있으며, 양심없는 개고기는 맛없다.

 아...45년 전통의 개고기가 새삼 되새기게 해 준 진리의 한 단면이니 요즘 같아선 이래저래 개고기에 감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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