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정류관과 출력관의 궁합

by 윤영진 posted Feb 11, 200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보통 정류관을 선택할 때는 그냥 회로도에서 권장하는 관을 쓰는 것이 상례고, 이걸 여러가지 다른 관으로 바꿔가며 좋은 음질의 것으로 교체해서 쓰기도 합니다.
이 때 주로 판단하는 것이 전류량과 다음 단 필터 콘덴서의 용량입니다.
더 나아가 직렬형이냐 방렬형이냐를 놓고 따져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류관이란 것이 개발될 당시로 가면, 거의 대부분 출력관의 특성을 전제로 '매칭관'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간과하기 힘듭니다.
방렬 다극관이 대종을 이루면서는 정류관의 궁합은 무시된 경향이 있지만, 출력관이 거의 직렬 3극관이던 시절에는 정류관의 '적합성(궁합)'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히터의 가열 속도입니다.
출력관 히터가 가열되기 이전에 플레이트에 고전압이 인가되면 출력관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데미지를 입는 형국입니다.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정전압관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근원적 대책은 정류관의 히터 가열속도와 출력관의 히터 가열속도 간의 시간차를 맞추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쉬운 방법은 직렬 3극 출력관앰프에 방렬형 정류관을 쓰는 것입니다.
정류관에서 캐소드가 늦게 가열되어 B전압 공급이 지연되니까 직렬 출력관에 데미지를 덜 줍니다.
그런데 방렬형 정류관을 직렬3극관 앰프에 사용하면 음이 딱딱하게 경직되고 저역이 뭉치기 쉽습니다. 직렬형 정류관의 부드럽고 나긋한 음색을 원한 경우는 맞지 않습니다.
정류 전류량 역시 회로에서 요구되는 총량에서 너무 과다한 스펙의 정류관을 사용하는 것도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대표적인 예가 출력관 2A3과 정류관 80(또는 280)입니다.
280, 80이라는 비교적 고전 정류관들은 245,45,2A3 으로 이어지는 RCA 3극 출력관의 개발 과정에서 가장 적합한 정류관으로 원설계되어 나온 관들입니다.
당연히 히터 가열 속도나 정류 전류량 등이 출력관과 가장 잘 어울리게 설계되었습니다.
따라서 출력관의 좋은 음색 구현, 출력관 수명의 연장 등에서 좋은 매칭을 이룹니다.
제 경험으로도 2A3의 가장 잘 맞는 정류관은 280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예이고,
300B와 274B 의 예를 포함해서 독일계 출력관과 매칭 정류관들, 영국계 출력관과 매칭 정류관들이 각기 다 제 짝이 있습니다.

정류관 매칭에서는 정류량과 음질에 더해서 히터 가열속도 등 종합적인 매칭관계를 한번 쯤 더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의 매칭이 어긋나면 이후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정전압 회로나 정전류 회로, 히터 정류회로 등 다양하고 복잡한 처방들이 상대적으로 더 필요해지는데, 진공관 앰프에서 구성과 회로가 복잡해질수록 득보다는 실이 적은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음식재료의 궁합과도 같아서, 재료 궁합이 잘 맞으면 영양밸런스도 좋아짐은 물론 맛을 보충하기 위해서 조미료를 더 넣는 것도 필요없게 됩니다.

진공관을 생물(살아있는) 명태라 하면, TR은 동태 비슷해서,
생물 명태찌게는 동해안 부두에 턱 자리잡고 쭈그러진 양은 냄비에 그냥 소금과 무만 넣고 끓였을 때
가장 맛있는 반면, 동태찌게는 멸치,다시마 등으로 다시를 내고 갖은 양념이 첨가되어야 제 맛이 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진공관과 신선한 음식재료는 비슷해서 되도록 간단하게(적은 증폭단수, 적은 부품, 간단한 회로....)
만들어진 것이 본질적 맛을 잘 우러내게 만듭니다.

*물론 제 주관적인 의견이니 그냥 읽고 흘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