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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은 사망 직전에 가장 좋은 소리가 난다???

by 윤영진 posted Mar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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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렵게 빈티지 독일제 출력트랜스를 구해서 RS241 싱글앰프를 하나 만들어 듣고 있습니다.
초단 REN904를 인터스테이지를 거쳐 드라이브하고 RGN1064로 정류합니다.
그동안 영국관, 미국관을 위주로 듣다가 독일관을 들어보니 각 나라마다의 진공관 음색이 자못 차이가 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재즈 등에서는 미국관이 좋은 듯 하지만, 클래식에서는 독일관이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영국관은 둘 사이에서 중간 성격을 내고....

미국관은 애 둘 낳은 30대 아줌마처럼 아직 미색이나 색기도 남아 있지만, 약간은 수줍음은 사라진 걸지고 여유있는 소리라면,
영국관은 20대 중후반의 아직 체면도 차리고 내숭도 떠는 듯 하면서 각선미나 몸의 굴곡도 좀 드러내는 발랄한 느낌이 나고,
독일관은 아직 완전히 여성미를 갖추지 못한 10대 후반의 약간 보이쉬한듯한 신선함과 풋풋함 속에 '귀족적'인 품위를 살짝 감춘 느낌이 나고.....

그런데 저의 고충 중의 하나가 부실한 방진, 방음 설계로 인해 이웃집에 음악 소리가 들리는 점이고, 마눌님의 잔소리 중에서 "오디오에 헛돈 쓴다."는 소리 다음으로 저녁에 음악 소리 작게 틀라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스피커를 스파이크로 받치고 별 짓을 해서 신경을 썼지만, 아무래도 음악 듣는 시간이 퇴근 후라야 하고, 음량도 어느정도 고음과 저음이 제소리 낼 정도라야 하기에 늘 힘든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전에 잠깐 겨쳐갔던 클랑필름 RS241 PP앰프에서 뽑아놓았던 "은퇴관"들이 좀 있었습니다. 거의 수명이 다 되어서 테스터에서 "BAD" 판정을 받기 가까운 수준의....
이걸 시험삼아 꼽아봤더니, 역시나 낮에 큰 음량으로 틀면 음이 비실거려서 웬 할아버지 에어로빅 무리하게 하는 소리가 납니다. 당연히 게인도 잘 안먹어서 프리앰프의 볼륨이 오후 2시방향까지 가야 하고.....

그러나 저녁이 되어 낮은 음량으로 틀어보니, 이게 상당히 감칠맛 나는 소리를 냅니다.
물론 제 프리앰프의 게인이 매우 낮게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프리앰프 볼륨을 11시 방향에 놓고 틀어도 마눌님이 밤 11시 넘어서까지 전혀 잔소리를 안 합니다.
오히려 싱싱한 신품관을 프리게인을 낮춰서 비슷한 음량으로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요염하고 감칠맛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전에 어느 노고수님이 "스피커는 에지가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기 직전, 진공관은 히터가 삭아서 끊어져 나가기 직전이 가장 좋은 소리가 난다."는 가히 구라스러운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전에는 거의 믿지 않았지만, 지금 그 소리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 저녁과 심야에는 은퇴하셨던 퇴물 출력관을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