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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초심인지 변덕인지

by 윤영진 posted May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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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을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주로 "제조국가별 진공관의 조합 사용'을 위주로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주로 완제품 빈티지 기기를 사용하다 보니, 원설계에 사용된 진공관들의 조합이란 것이 "제조국가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살자..." 단계였습니다.

그러다가, 2-3년쯤 경력이 쌓이다 보니, 건방증이 생겨 소위 '호환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초단관이나 정류관 위주로 "좀 더 음질이 좋다는 대체관"을 다른 제조국가나 회사의 것들에서 찾아서 이리저리 바꿔꼽는 재미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금씩 돈이 많이 들게 됩니다.^^
아마 대표적인 것이 5U4G를 U52나 274B 등으로 업그레이드 할 때,
6J5 미제 철관을 영제 오스람이나 멀래드의 유리관으로 업그레이드 할 때,
6SN7을 영제 ECC32 등으로 업그레이드 할 때 느끼는 희열 같은 것이겠지요.

여기서 조금 더 나가게 되니, 오버홀의 단계를 지난 소위 '개조'나 '자작'의 재미를 찾게 됩니다.

독일산 초단관에 영국산 출력관에 미국산 정류관 등등....
요새 유행하는 '휴전' 스타일로 나름대로 조합을 해서 꾸며보는 재미가 또 쏠쏠합니다.

대체로 영국관들이 중역대는 매력적이지만 고역과 저역이 두리뭉실하기 때문에,
독일계 초단관 등으로 매칭을 하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한다든지 하는 '음색 튜닝'에 재미를 붙입니다.
정반대로 칼칼한 맛이 지나친 독일계 출력관에 영국산 초단관을 붙여서 살짝 음을 궁글리는 식이지요.

최근까지 그런 재미를 주로 느끼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수구초심인지, 아니면 '순혈주의적 복고풍'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꾸 같은 국가 제조관들끼리 시리즈로 구성해서 듣는 쪽으로 갑니다.

PX4, PX25 등 질렬3극관이나 KT66등 다극관이나 대표적인 영국관들은(그나마 PX4 같은 것은 음이 빠르고 선명해서 별 관계가 없지만) 독일계 초단관으로 단점을 보완하는 쪽을 선호했는데,
이제는 그냥 MH 계열의 영국산 초단관을 붙이는 쪽으로 취향이 바뀌는 겁니다.

여자의 외모를 놓고도 전에는 "아! 코만 조금 높이면 완벽한 조화를 이룰텐데...",
"눈만 조금 더 커보이면 좋을텐데..." 식으로 나름의 '조화와 개선'을 추구했다면,
요즘은 "아이- 성형수술하지 않고 그냥 원래 얼굴이 더 자연스럽고 좋았을텐데..." 식으로
바뀌는 겁니다.

사람이 착해지는 건지, 미련해지는 건지, 아니면 귀찮아지는 건지.....

즉, 나름의 '정형화된 미학적 스타일'을 정해서 모든 요소들을 그 방향으로 짜맞추는 데 열성을 기울이다가, 요즘은 "그냥 제 개성을 잘 살리는 쪽"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미국관이건 영국관이건 독일관이건 각각의 특색을 그냥 유지하면서 즐기는 쪽으로 자꾸 마음이 갑니다.

특히 초단관의 선택에서 그렇습니다.
초단관 중 너무 잘난 관들은 출력관의 음색이나 특성을 앞에 나서서 지배해 버리는 기질이 있습니다.
특히 텔레풍켄의 관들이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처음에는 텔레풍켄의 음조성 특성이 개인적인 기호와 잘 맞아서, "제 잘난 척 하는 꼴"도 예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차츰 그러다보니, "이건 아닌데..." 하는 회의가 드는 겁니다.

세상이 아주 좋은 단 한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없을 겁니다.
입맛도,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만 줄창 먹으면 금방 질리듯이.....

그래서 요즘은 두리뭉실한 초단관에 두리뭉실한 출력관을 꼽아서 한참 듣고,
그러다 싫증나면 샤프한 초단관에 샤프한 출력관을 꼽아서 또 한참 듣곤 합니다.

그렇게 즐겨마시던 폭탄주를 이제 한자리에서 한 잔 이상 안 먹으려 하는 술버릇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