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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팔에 대하여

by 박경희 posted Nov 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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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도팔이라는 분에 대하여 들어 보신적 있지요? 아직 들으신 적이 없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도팔은 실명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를 장사동 세운상가를 휩쓸며 보낸 한량입니다.
그 분의 취미는 오디오 바꿈질 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만 선량하고 유쾌하고 온순하고 비단결 같은 분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소리"에 대한 주관이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본래 스스로에 대하여 주인이 되지 못하면 타인이 그의 주인이 됩니다. 이 분의 경우는 오디오 장사꾼들이 그의 주인 노릇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꿈질이 계속된 것입니다.
이 분의 부친은 상당한 재산가였고 종로 일대에 건물도 여러 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이 분이 마침내 그 재산을 물려받자마자 벼락부자가 된 도련님이 하는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남자들이 보통 발을 들여 놓는 여러 환락에 차례로 발을 담그었지만 유독 오디오에 대하여 엄청난 탐욕과 관심을 보였습니다. 종로구 부개동 에 오디오를 위한 엄청난 넓이의 지하실이 있는 집을 짓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도 곧 헐값에 팔아 치웠습니다. 자칭 음향 전문가가 오셔서 이러쿵 저러쿵 바람을 집어 넣으며 잘못 지어졌다고 사기성 유혹을 하였기 때문이지요. 이런 식으로 이럭 저럭하여 가진 재산을 다 털어먹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신 지 몇 년 되셨습니다. 고인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빕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도팔을 “오디오에 발을 잘못 들여 놓은 팔푼이”라고 주석을 붙였습니다. 고유명사가 보통 명사가 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마키아벨리즘이 된 것처럼....  ‘오디오 병은 죽어야 고치는 병’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 이야기와 금언은 웃으며 읽을 것은 아닙니다. 전적으로 사실이고 그 결과는 자못 살벌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취미가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오디오 취미만큼은 아닙니다. 오디오는 상당한 자산을 털어 넣기 알맞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ebay에서 Ed관을 하나 경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관이었습니다. 일백 수십만원이 날라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형으로 모시고 존경하는 오도팔 한 분이 며칠 전에 Siemens Ed와 Siemens Ca에 이백여만원을 털어 넣었다가 역시 날렸습니다. 빈티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든다해도 현상은 이렇습니다. 완전히 의기소침해져서 지금 감기 몸살을 앓고 계십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지 필라멘트가 끊어진 진공관 때문은 아니라 해도 자꾸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콘의 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합니다. 물론 잘못은 오디오에 있지는 않습니다. 탐욕에 물든 우리한테 있지요. 모든 것이 '내 탓(mea culpa)'입니다.
제 주머니에는 어제까지 일만원이 총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저도 어제 과일 사먹었습니다. 어떤 독지가께서 3만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얄밉다고 도로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 독지가는 누구일까요? 오도팔 때문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겠지요. 저는 정말이지 한심한 오도팔입니다. 엊그제도 이 시대의 한 진정한 오도팔과 서로 통화하며 우리 자신에 대하여 개탄했습니다. 그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 안됩니다
등산이나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