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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와 엔지니어

by 윤영진 posted Apr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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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엔지니어와 몽상적 오디오 매니아>

모든 오디오 애호가들은 오디오의 음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돈이 무한적으로 확보된다면 별 걱정이 없습니다.
대개 경제적인 어려움을 갖고 욕망 실현의 갈등을 겪습니다.
그래서 자작을 하기도 하고, 트웨이크나 엎튜닝 등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음질 향상을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갈등이 발생합니다.

즉, 일종의 경험적 민간요법을 바탕으로 “신화적 처방”을 동원하거나
기술적 검증이 안 된, 또는 기술적 이론으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방법론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의미 그대로 저지르는 부류로서
‘몽상적 오디오애호가’가 있고,

배운 원칙에서 웬만하면 벗어나지 않으려는 ‘전문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몽상적 오디오애호가’에 속합니다.

이 두 부류는 항상 그치지 않는 대립적 다툼을 벌일 소지가 있고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귀찮고 지쳐서 소 닭 보듯 외면하고 지내는 게 일상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두 부류는 서로 상대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론이 왜 필요하냐면,
“정확한 재현”의 가장 필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소 뒷발로 쥐 잡듯이 저 같은 몽상가가 전문 엔지니어보다
더 좋은 기기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작동원리를 충실히 모르고 한 결과이기 십상이니
그 결과를 다시 똑 같이 재현해서 다량으로 복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숨어있을 수 있는 위험요소나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없기 십상이라, 특정한 조건과 조합에서는 상당히 좋다가도
뭔가 조건 변수가 달라지면 성능이나 음질이 틀어져 버릴 가능성도 많습니다.

즉, “보편성 획득”에 하자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전공지식을 통해서 오디오 기기를 제작하거나 운용하는 ‘전문 엔지니어’들에게도
특정한 문제가 있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귀에는 좋은데, 측정결과가 안 좋으면 인정을 않거나
이론적으로 선험된 원칙론에서 벗어난 시도는 일단 부정하는 태도를 갖기 마련입니다.

물론 전문 엔지니어들도 다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연히 전기, 전자 엔지니어링 전공을 했는데
음악을 좋아하고 오디오를 좋아하는 부류가 하나고

음악이나 오디오에 대한 매력보다는 오디오 기기의 제작이나 설계에 좀
치우친 좀 드라이한 엔지니어가 다른 하나입니다.

음악애호가이며 오디오애호가인데 전공지식까지 갖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파수 특성이 좀 안 좋거나, 디스토션이 좀 많아도
소자의 나특성이 좋거나, 슬루레이트가 좋거나, 배음 특성이 좋으면
그 쪽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엔지니어링 마인드를 많이 가진 분들은
주파수 측정 오차나 디스토션 함유량, 정현파 측정 결과 등등 세세한 부분에서
불만족스러우면 일단 인정을 않습니다.

다시 몽상적 오디오애호가 부류로 돌아가서....

이들 역시 “미신적 사고”를 지닌 쪽과, 어느 정도 “대체 의학적” 효과 정도를
확보한 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앰프 내부의 10cm짜리 배선을 특수한 어떤 선으로 바꿨더니
음이 천지개벽 변했다는 식이라면 좀 과한 표현으로 “미신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콘덴서나 저항 등에 있어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신적” 사례는 오히려 전문 엔지니어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냉소의 대상”으로 방치됩니다.
다툴 여지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이지요.

전문 엔지니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보다 더 나간
“대체의학적 처방” 같은 것입니다.

요즘 제가 남용하는 신호계 트랜스포머와 쵸크 등도 한 예가 됩니다.

의사들과 대체의학자들 간의 피나는 갈등이 연상됩니다.

“말기암 환자가 어떤 식품을 어떻게 먹었더니 확산이 멈췄거나 치유가 되었다.”
식의 대체 의학적 속설들이 자주 있습니다.

전문 의사들은 발끈합니다.
방사능 치료와 항암제, 수술 외에는 인정을 못합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의사들도 지금 당연하게 사용되는 수많은 의약품들의 근원이 이런
선험적 “대체 의약제”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잊고 있습니다.

만약 페니실린이 그 약효가 검증되기 이전에 누군가가
곰팡이에서 우수한 항생제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면
기성 의약계에서는 혹세무민의 거짓이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전자기기 메이커, 자동차 메이커 등에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간에 벌어지는 다툼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슬림한 휴대전화를 원한다고 판단한 디자이너가
두께 6mm짜리 휴대전화를 디자인해서 만들자고 합니다.
엔지니어들이 거의 촛불시위 수준으로 들고 일어납니다.
케이스 자체 두께, 기판, 배터리 등등 필수 부품의 두께만 더해서 8mm는 넘는데
말도 안 되는 몽상적 디자인을 내놓았느냐고 화를 낼 겁니다.

그런데 사장이 폭압적으로 찍어 눌러서 해결해서 만들라고 하자
몇 달 안 되어서 6mm 두께의 휴대전화가 만들어집니다.

트랜스포머를 진공관 앰프에 스테이지간 결합에 많이 쓰는 일도 비슷합니다.

전기·전자 공학적으로 트랜스포머란 근원적으로 대역이 좁아서
RC결합을 대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미 PEERLESS에서는 1940년대에 가청 주파수 대역을 리니어하게 커버하는
트랜스포머를 만들었습니다.
코어를 고심해서 선택하고, 권선방법을 개량하고....
온갖 모색과 노력을 해서 목표를 달성한 것입니다.

즉,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케이스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했을 때 투입되는 비용과 노력이 얻어지는 성과에 비해서 너무 효율이 적을 때,

둘째는, 선입관념에 젖어서 “할 수 없거나 할 필요 없다”고 미리 단정 지었을 때.....


첫째 이유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단지 1%를 더 개선하기 위해서 효율 낮은 비용 투자를 하겠다는
개인적 욕구가 있지 않다면 그럴 필요는 없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선입관념 때문에 반대하거나 안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든, 특히 오디오에 있어서도
엔지니어 마인드만 존재하면 새로운 장으로의 변화나 발전은 없습니다.
그냥 기존의 것을 자꾸 더 정밀하게 하는 개선 외에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몽상가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몽상가들에게 부족한 이론적 지원과 보완은
전문 엔지니어들이 맡아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전자기기 메이커는 필연적으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관계가 좋습니다.

마크레빈슨, 골드문드, 그리폰.....등등
세계 최고의 오디오 브랜드를 일으킨 과정 역시
몽상적 디자이너와 견실한 엔지니어가 서로 시너지를 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존중하고 배우고 돕다 보면
서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전문엔지니어가 디자이너를 “무식한 몽상가”로 매도하고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를 “교조적인 땜쟁이”로 매도한다면
어느 누구만이 아닌 모두에게 퇴보와 손해를 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