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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대역 특성 과연 뭐가 정답인지

by 윤영진 posted Jul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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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귀가 점점 초고역을 못듣게 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생기기의 재생 특성만큼은 가청 주파수 대역을 넘어서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한동안 좋아했던
옛 빈티지 기기들의 협대역 특성에 대해서는
그냥 "회고적 취향"으로 치부하고 내심 좀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 80년 넘은 협대역 인터스테이지를 달아놓고
그 앰프로 음악을 들으면서 좀 미묘한 딜레마를 느낍니다.

트랜스포머의 에이징이 되가면서 저역만큼은 기대 이상으로 충실하게 재생됩니다.
물론 고역도 처음보다는 좋아졌지만 역시 한계가 있는지
약 15,000Hz 에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초동 펄스에서의 웬만한 1차 고음은 내주지만 초고역의 배음은 잘 안 들립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다른 앰프들은 생선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그대로 통짜로 구워놓은 것 같다면

이건 머리와 꼬리를 정리하고 가운데 토막만 구워놓은 느낌이 듭니다.

처음에는 당연스럽게, 안 보이는 머리와 꼬리에 생각이 자꾸 미치고
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듣다보니, 이렇게 먹지도 않을 머리와 꼬리를 잘 정리해 놓으니
오히려 먹기에 편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초고역과 초저역이 살짝 잘린 소리를 들어보면
중역대가 살집이 붙고 낭랑한 맛이 더 강조됩니다.

화사한 미세 배경음은 잘 안들리지만 오히려 고역의 악기 소리는 더 또렷해집니다.

보컬을 비교해봐도, 이 쪽이 더 목소리에 기름끼가 돕니다.
물리적 특성이 좋아질수록 비교적 보컬음이
한 끼 식사를 굶고 부르는 것처럼 들리기 쉬운데
이쪽은 배터지게 기름진 음식 포식한 후 질펀하게 부르는 느낌이 됩니다.

사실적이라기 보다 좀 각색과 윤색이 된 듯한 풍윤함입니다.
한 마디로 좀 "컬러링된" 음색입니다.

그런데 이 "덜 사실적인 음"이 한편으론 들을만 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오디오파일들이 말한 중에 이처럼
초저역과 초고역을 살짝 궁글린 것이 청감에는 좋게 느껴진다는
의미가 약간은 이해되기도 합니다.

물론 제게 파워앰프가 딱 한대만 있다면 그 한대 뿐인 앰프를
이런 음조로 튜닝해서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광대역 앰프가 여러 대 있는 중에 이와 같이
중역이 강조된 앰프도 한대쯤 필요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30년 동안 오디오 취미에 몰입해 살면서,
TR기기로 시작해서 회고적 빈티지 기기로,
그러다가 물리적 특성을 중시하는 어정쩡한 진공관 애호가로 조금씩 변모해왔는데

지나쳐서 다시 돌아갈 것 같지 않던 회고적인 빈티지 취향에도 다시
한 발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모든 길에는 왕도는 없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