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자연의 소리에 귀를 청소하고~

by 신영설 posted Jan 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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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때를 털기 위해 뒷산에 댕겨왔습니다.

공장에서 음악 듣다가 왼귀로 들어간 소리는 소화가 안돼서 띵~하고^^
오른쪽 귀로 들어간 소리는 귀바퀴에 머무르며 같혀서 안빠지는 것 같고...

음악도 적당히 들어야지 오디오도 승질내고 귀도 승질냅니다.
그래서 귀청소도 할겸 굳어 잇는 몸도 돌볼겸 아줌마들 구경할겸~

산 중턱쯤 오르면 4차선 도로에 왕래하는 차들의
소리는 깊은산 계곡의 물소리 처럼 소곤소곤 들립니다.

일단 그소리를 기본 베이스에 깔고 산길을 갑니다.

조금 있으려니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나서 눈을 돌려 보니
장끼(숫꿩...다들 아시죠?) 한마리가 암꿩하고 좋은시간 가졌는지 생기있는
초롱한 눈망울에 맵시 있는 자태로 나를 바라보며 옆으로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조금있으니 뒤쪽에서 다행이다 싶었는지 알토섹스폰 같은 목소리로 한번 웁니다.
사뭇 듣기 좋고 청명하기까지 합니다.

한참을 또 가는데 다람쥐 한놈이 도토린지 밤인지 까치발로 서서
두손으로 오물거리며 먹다가 지꺼 뺏어 먹을까봐 냅다 내뺍니다.
겨울잠을 푹 자야하는데...
나같은 사람들이 온산을 헤집고 다니니까 짐승들이 때를 잊고 삽니다.

여기저기서 테너섹스폰 같이 울어제끼는 암수 쌍쌍 까치 자슥덜~~
아침 저녁으로는 밥풀데기 얻어 먹을려고 인가로 내려왔다가
배 채우면 산중턱에 모여서 연애질 하고 난리입니다.
목이 쉰놈두 있습니다. 누가 짝을 잘 안해주나 봅니다.

돌아오는 코스 3분의 2지점에 있는 수미정사라는 사찰 마당에 들어섭니다.
마이크로 증폭되어 들리는 스님의 염불소리는 마치 얼어있는 내가슴속
얼음덩어리를 녹여주는 화롯불과 같이 은은하면서 따듯합니다.

바람이 살살 불어서 그런지 온화한 앞마당에 풍경도 나불거리고,
사찰에서는 본래 짐승을 거두지 않는데, 그곳에서는 길잃은 강아지
몇마리를 돌봐줍니다. 누가 세상에서 나를 그리 반가워 할까요?

주머니에서 사탕 두개 꺼내서 까주니 잘도 핥아먹습니다.
은은히 울려퍼지는 찬불가 몇소절에 마음을 정화하고,
뒤돌아서 내려오는데 날이 푹해서 눈 녹은물이 많아서인지
또랑에 물이 제법 피래미 여울 넘어가는 소릴 내며 흘러갑니다.

만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자주 가는곳이라 아는분도 가끔 지나갑니다.

이어폰끼고 노래하며 걷는 분...
몸은 불편해 보이는데 지팡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걷는 분...

부부인지 서로 손잡고 다정히 걷는 쌍...
좀 과체중인 관계로 얼굴이 벌개서 헐떡거리며 걷는 여성 분...

어휴~ 숨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ㅎ
더 이뻐지려는지 좋은 몸매임에도 운동복 입고 달려가는 처녀...

마지막 언덕에 서서 사방을 둘러 봅니다.

그윽한 안개속 도시에 삭막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등뒤쪽 산속에서는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나를 위해 연주를 해줍니다.

동서남북으로 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오늘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합쳐저서 있습니다.

동쪽은 봄이요^ 남쪽능선은 여름이요^
서쪽은 가을이요^ 북쪽 응달은 아직 겨울이요~

소리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사람냄새가 있고,
마음을 다독이는 어머님 품 같은 산이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