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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빈티지와 하이엔드의 공존 공간

by 윤영진 posted May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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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내세울 여행경험도 없는 사람이
폼이라도 잡듯이 외국의 예를 드는 것이
쑥스럽습니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적절한 소재였을 뿐이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평생 파리는 4번(단순 1일 이내의 경유는 제외) 총 20일 정도
경험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제 장년기 10년 동안 모질게 가슴앓이를 나눴던 여자가
파리에서 3년 정도 유학을 한 일이 있어서
그 여자와 3박4일 파리에서 머문 것이 다른 모든
어설픈 배회 시간을 다 합친 것보다
파리를 더 깊고 많이 느끼게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 좋은 예였습니다.


‘빈티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파리는 로마나 비엔나,
부다베스트 등의 도시에 비해서 최우선으로 꼽기는 무리일이지
모릅니다.

그러나 파리는 다른 유럽의 도시와 달리
라데팡스라는 ‘하이엔드’ 도시공간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라데팡스 건설기획이 처음 공표되자
그동안 빈티지적인 파리에 익숙했던 시민들은 물론
전 유럽의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라데팡스는 시간의 마법에 의해 평가가 바뀌었습니다.

현대음악의 불협화음이 협화음만큼이나
미학적 친숙함을 획득한 것과도 유사합니다.

2차 대전의 참혹한 파괴로
어쩔 수 없이 빈티지와 하이엔드 건축이 공존하게 된
베를린과도 서로 다른 면모입니다.


그러면서 부럽고 감탄스러운 것은…

파리는 빈티지 일색의 도시 공간에
라데팡스라는 하이엔드가 병존하는 것을
용인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 하이엔드 공간이 기존의 빈티지 공간을
잠식, 대체하는 것도 용인하지 않은 것입니다.

옛 것을 존중하되
새 것을 배척하지 않고,
새 것의 편리함에 혹해서
옛것을 버리지도 않는
현명하고 멋진
고급 정신문화의 본보기라고 여깁니다.


서울은 빈티지 공간이 무참히 전쟁으로 파괴된 이후
로엔드부터 시작해서 하이엔드로 급속히
공간 특성이 바뀌면서
그나마 남은 빈티지 공간마저도
빠르게 지우고 망가뜨렸습니다.

아니, 냉정하게 말해서
새롭게 급조된 서울의 건축공간은
하이엔드라는 표현도 아깝습니다.

그냥 로엔드와 미들그레이드가 뒤섞인 정도의 수준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더 나아가 빈티지적 풍모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4개의 큰 강마저도
하이엔드? (로엔드!)로 대체하겠다고 국론을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溫故知新 이라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매우 고고하면서도 실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가치가 바로 파리의 가치입니다.

中庸 이라는 가치가
단순히 기계적 중립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을 북돋고,
넘친 것을 덜어내는 지혜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