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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속초에서 300K를 달려 두 분이 오셨습니다

by 항아리 posted Sep 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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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오시겠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들은 두 분의 연세와 먼 거리를 감안하여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죄송한 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분께선,

 우리는 어디든 다 다닌다.
 아마 가보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산이라고 못갈 것은 없으며 전혀 부담 갖지마라.
 어떤 소리든 30초만 들으면 그 소리에 대한 판단은 끝난다.
 우리는 아직 어디서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꺼이 기선을 제압당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장 보다 시각적으로 더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제 방 청소를
하면서 두 분을 기다렸습니다.
 
 앰프를 만들다 보면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떤 방식을 생각하고 그 방식대로 배선을 해서 첫 소리를 내는 건 사실
가장 쉬운 일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마음에 들지않는 부분이 가장 적은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언제나 떠들지만, 좋은 소리가 뭔지 모릅니다.
 아닌 소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최초의 소리에서 아닌 것을 자꾸 해결해갈
뿐입니다.

 그 과정이 진도가 나갈수록 미묘하고 어려워집니다.

 좋은 소린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가 좋아하는 소리의 몇 가지 유형이 오락가락합니다.
 하나씩 선택해서 들으면 각각의 장단점이 엇갈립니다.
 결정이 어려워집니다. 장단점이 엇갈린다는 것은 결국 제각각 불완전한 소리라는
뜻과도 같으니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한 앰프에서도 별의 별 소리를 다 낼 수 있으므로 기기 바꿈질은 제겐 남의 일이고
남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안될 부품은 라인업에 끼지 못합니다.
 된다고 경험했고 된다고 믿는 부품들로만 앰프를 구성합니다.
 그러다보니 그게 다 50년대 전후의 부품들이 되어 버리고 나날이 부품 구하긴 어려워지고
가격도 오늘과 내일이 다를 지경이지만,
 그것들이 우선 갖춰져야 길고 긴 튜닝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두분께선 정말 30초 정도 들어보시더니 입을 여셨습니다.
 모두 수긍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튜닝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고 저는 제가 만들어낸 소리의 약점을 다시 깨닫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나 들어도 좋다고 할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만큼 돌대가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혼자서 골방에서 듣다보니 소리가 점점 얌전하고 작아지는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만큼 돌대가리이긴 합니다.
 
 또한 늘상 주장하지만, 오디오란 건 우물안 개구리 취미입니다.
 저는 제가 알고 이해하는 소리의 폭, 제가 경험했고 할 수 있는 정도,
그런 우물들에 들어 있는 한 마리 개구리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원했던 대로 재미있고 즐겁고, 보람차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두 분께선 어떤 소리를 듣고 있나 들어보러 주말에 속초에 갑니다.
 그런 판단은 사람을 보고 합니다.
 소리에 관한 이런저런 말들이 참 많지만, 저것은 저 사람만의 것이다, 라는 느낌을 주는
말들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디오판 어디선가 망령처럼 떠도는 값싼 언어들을 주워섬기는 말들이 거의 전부이고,
오디오 평론가 같은 관념적이고 현혹스런 언어로 분칠한 말들이 화학조미료처럼 뿌려질
뿐입니다. 정말 피곤하지요.

 두 분은 자기의 언어를 가지신 분들입니다.
 한 분은 말로는 저에게 안되겠다고 크게 웃으시고, 또 한 분은 언어선택에 몹시 곤란을
겪으시곤 하셨는데, 그게 오디오판의 지긋지긋한 죽은 언어들을 오랜 시절 피해온 까닭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다녀와서 후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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