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관 하나로 죽끓는 변덕 다스리기

by 윤영진 posted Jun 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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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지치고 귀찮고.... 휴일이면 숙취 다스리느라고 시체놀이 하고.....
몇 달 동안 다른 기기는 못 만지고 트랜스 프리 튜닝하며 지냈습니다.
자작 기기란 것이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튜닝 시간은 10배 이상 걸리나 봅니다.

전원부 만지는데 한달쯤, 관 튜닝에 2주일쯤, 바이어스 전압과 B전압 미세하게 맞추는데 또 한 달....  이제 거의 원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기나 시스템이 아니더군요. 정말 죽 끓는 꼴하고 흡사한 제 변덕입니다.
몸 상태에 따라, 날씨나 습도에 따라, 듣는 음악 소스에 따라, 그냥 이유 없이 기분에 따라....
어제는 좋았던 음도 다음날에는 안 좋게 느낍니다.
이처럼 제멋대로 바뀌는 변덕에 맞춰 기기를 튜닝한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이걸 해보겠다고 앰프 배따고, 네트워크 뒤집고....

차츰 미련한 저도 머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변하는 벽덕에 맞춰 원하는 음으로 살짝 살짝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오 최근에 이 잔머리 공법이 얼추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절대 비법은 아닙니다. 진공관 오디오 시스템에서 가장 손 쉽게 바꿔 낄 수 있는
진공관을 변덕에 맞춰 바꿔 꼽는 겁니다. 그렇다고 시스템 라인에 걸쳐 있는 십수개가 넘는 관을 일일이 바꿔 낄 수는 없습니다.
딱 하나 또는 두 개만 가지고 변덕 취향의 대부분을 맞춰주어야 합니다.

바로 허리에서 그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프리앰프지요.

프리앰프만 가지고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파워앰프와 스피커 라인이 매우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버릇이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면 원하는 꼼수를 부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꼼수를 완성하려고 파워앰프와 스피커 네트워크를 뒤집어 엎었습니다.
최대한 중립적이고 측정치까지 평탄하도록....

그렇게 해 놓고, 프리앰프 역시 최대한 중립적으로 맞춰놓은 다음......
초단 플랫단 관 하나로 변덕에 대응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프리앰프 초단 플랫단에는 바이어스 변동 없이 다음과 같은 관들을 꼽아도 무방합니다.

12AY7, 12AT7, 12AV7, 6211, 12FV7, 12DW7, 12AZ7........

그런데 이것들이 각각 음이 다 틀립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AT7은 고역 쪽으로 밸런스가 기울고, 반대로 AZ7은 저역쪽으로 기울고....
AY7은 음이 뭉친듯 중역으로 찰기있게 나오고, AV7은 AY7에서 약간 찰기만 뺀듯 나오고,
6211은 12AU7하고 거의 흡사한 밋밋한 음이 나오고....

따라서 매일 변덕이 끓을 때마다, 요 초단관 딱 하나만 바꿔서 듣는 겁니다.

물론 제 변덕의 질이 아주 지저분해서 이것 하나로만 만족 못할 때도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류관을 한 가지 더 바꿔줍니다.

5Y3GT가 표준인데, 5Y3G나, 5V4G, U50 등을 가지고 변화를 줍니다.
정류관도 직열관과 방열관의 음색 차이가 크기 때문에 변덕 다스리기에 유용합니다.

그러나 초단관과 정류관 2가지만 되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각 5종만 사용해도 수십가지 조합이 나오니까 단순한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두통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요즘은 미리 말했듯이 초단관 딱 하나만 가지고 놉니다.
정류관은 직열형인 오스람마르코니의 U50과 방열형인 RCA의 5V4G 2개로 좁혔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니, 전원 켜기 전에 한 1분쯤 초단관을 담아 놓은 박스를 들여다 보는 것이
일종의 준비운동처럼 되었습니다.
형번에 따라, 제조사에 따라 약 20여종의 초단관이 들어있는 것을 주욱 보고 고르며
당일 듣고 싶은 음색을 결정합니다.

날카롭게 가고 싶으면 텔레풍켄 12AT7에 방열형인 5V4G를 각각 하나씩 뽑아듭니다.
풍성하고 저역으로 깔고 싶으면 RCA의 12AZ7과 U50을 뽑아듭니다.
물론 얼추 듣다가 중간에 변덕이 나도 관 하나만 바꿔 꼽으면 됩니다.

역시 게으름이 꼼수와 잔머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


* 거저 물건 산 자랑

전에는 가끔 E-BAY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했는데, 한동안 끊고 지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비겁하게도 제 이유는 귀차니즘 때문입니다.
메일 주고 받으며 돈 부치고, 물건이 와도 관세 때문에 귀찮게 할 일이 번거럽고....

그런데 미국 서부에 친한 후배가 가 있고, 다른 후배 하나가 한달에 1-2번 정도 그 곳을 출장 다니면서 제 사정이 확 피었습니다.
미국의 셀러 중에 외국으로는 물건 안 보낸다고 유난 떠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원인은 대개 한국의 약속 어기는 응찰자들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이런 물건은 한국 사람이 비딩을 못하니까, 한국사람들이 응찰하는 물건에 비해 낙찰가가 거의 1/5 이하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요즘 필요한 물건 있으면 "USA SHIPPING ONLY"만 찾아서 낙찰을 받습니다.
물론 물건은 미국에 있는 A라는 후배 주소로 보내고, B라는 후배에게는 미국 갈때마다 A집에 들러서 올 때 핸드캐링해서 가져오게 합니다.

내일 아침에 B가 공항에서 제 집으로 1940년대 제조한 젠센 혼 드라이버와 800HZ용 혼 세트, WE의 프리앰프 한 개(한 개는 1년 전 구했기에 드디어 짝을 맞춤)를 가져다 줍니다.

혼과 드라이버 페어는 전부 $58, WE프리앰프는 $120 썼습니다.
만약 한국사람들과 경합 벌이고 정상적으로 쉬핑했으면 이 두 가지 물건 구하는데 2천 달러
정도는 썼을 겁니다.

물론 공짜는 없습니다.
수고하는 후배, 전에 미국가서 아가씨 있는 술집에서 술 샀습니다.^^

그 때 제 파트너 아가씨, 한국 방배동 카페에서 만났던 아가씨였습니다. 세상 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