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부품을 구했으면 라인단 제작에 들어갈 차례입니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까요? 엔지니어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오디오 애호가들은 그 기기의 선택에 있어서 의외로 수동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으로 만족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성품들은 터무니 없이 비쌉니다. 사실상 어떤 기성품의 경우는 가격의 90%정도가 부가가치입니다. 즉 부품 값은 10%정도라는 것이지요 그 10%에서도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샤시 값입니다. A사의 파워앰프 중에는 6천만원 정도되는 것이 있는데 들여다보면 아닐 말로 기가 막힙니다. 싸구려 진공관이 16개 박혀 있는데 -전부 3만5천원 짜리 러시아 산- 트랜스는 도대체 어떻게 감은 것인지 음악성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기성품의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상 많은 진공관을 사용하여 출력을 높이는 것은 음악성을 위해서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같은 조건일 때에는 출력이 낮을수록 고운 소리가 납니다. 싱글이나 pp정도가 바람직하지요. 기성품들은 우선 능률이 낮은 현대 스피커에 맞춰 튜닝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당히 놓은 출력을 지닙니다. 자연 섬세하고 정묘한 음악성을 잃기 쉬운 것이지요. 또 다른 문제는, 기성품은 40년대의 300B나 PX25, PX4, RE604, ED, DA30 등의 3극관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싸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제가 열거한 위의 관들이야 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훌륭한 관들입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요. 이러한 관으로 만든 -그것도 싱글로 제작된- 앰프는 제작 이외에는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애호가의 수준이 진공관의 특성에 따른 차이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가 되면 제작에 돌입할 수준이 되고 매니아 중의 매니아가 되는 것입니다. 탄노이 모니터 시리즈에 이르면 진공관의 특성에 따른 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저는 언젠가 얼치기 전문가가, 자기도 한때 탄노이를 썼었는데 스피커가 둔해서 관의 특성을 잘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젠센 동축형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정말이지 한참동안 웃느라고 정신을 못차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젠센이야말로 둔한 스피커입니다. 그 분은 젠센 15인치 코엑시얼을 쓰고 계셨는데, 스피커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우퍼의 울림소리가 마치 종이 문창호지가 겨울 바람에 우는 소리를 내는 것과 흡사하였습니다. 버석거리더군요. 그런데 그 스피커가 관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망치로 바이얼린을 연주한다는 것을 믿을지언정 젠센 코엑시얼이 관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관의 개별적인 특성을 드러내는데에 있어서는 사실은 독일 계열의 유로딘이나 비오노르가 훨씬 유능합니다. 그 스피커들은 정교하고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탄노이가 관의 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어쨌든 라인단이나 기타 앰프를 만든다고 자부하는 엔지니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정한 날입니다.
문제는 엔지니어입니다. 단언컨대 라인단을 만들어줄 엔지니어를 구하시기 힘들 겁니다. 그 이유는 우선 엔지니어 대부분은 고객이 라인단을 만들어 달라면 쉽게 응하지만 부품을 가져다 주면서 이러이러한 방식의 라인단을 만들어 달라면 대부분 거부감을 보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일만 하려 하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새롭다고 돈 되는 것은 아니지요. 명의(名醫)라고 이름난 의사들은 고칠 수 있는 병만 고치지, 어려운 병은 고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환자를 고치려 고군분투하다가 실패하느니 흔한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무차별로 퍼부어서 고쳐놓는 편이 명의 소리를 듣기는 훨씬 쉽기 때문이지요.
두 번째 이유는 자부심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러이러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하쇼.” 합니다. 부품 값에서도 좀 남겨먹고 싶고 또 스스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는데 굳이 부품까지 갖다 주면서 참견하는 것에 자존심이 손상되고 이익도 손상되니까요.
엔지니어와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대체 선택 기준이 없습니다. 모두가 가장 잘났다고 합니다. 또 못하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력 없고 게으른 엔지니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게으르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작은 일들을 성실하게 하기보다는 큰일에 바가지를 씌우면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기 기기를 팔거나 수리해주고 나서는 이제 끝입니다. 그 기기가 문제를 일으키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신속하게 해결해주기보다는 어떻게든지 기피하면서 짜증스럽게 대합니다. 웃는 경우는 단 한 순간뿐입니다. 돈 받을 때!
다른 전자 영역은 조용한데 오디오 엔지니어들만은 마음 놓고 서로가 잘났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까요? 이유는 시장이 좁기 때문입니다. 별로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니까 대기업에서는 손을 대지 않고 여기저기 소규모 공방에서 작업을 합니다. 만약 대기업에서 손댔다면 이 분야도 벌써 논란은 끝을 맺었을 겁니다.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거기에 모여 있으니까요. 삼성이 실패한 것도 돈이 안되는 사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대체로는 돈이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합니다. 값비싼 음식점이나 고급 부띠끄를 좋아하는 우리 아줌마들은 음악도 오디오도 싫어합니다. 아줌마들과 예술의 관계는 제가 나중에 한번 다룰 것입니다만, 아줌마들에게 있어 음악 예술이란 테이블 뮤직 정도의 의미입니다. 음악보다는 자기네들 수다가 훨씬 소중합니다. 가끔 엔지니어들이 오디오 잡지와 힘을 합쳐 자기 자신을 홍보할 때 굳이 자기 경력을 광고하며 애쓰는 것은 사실 그 경력이 별 볼일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박사님이시고, 누구는 좋은 직장을 퇴직하고 (오로지 오디오가 좋아서) 오디오 제작에 투신했고, 누구는 30년간(혹은 20년간) 오디오에만 매진해 왔고, 누구는 머리가 너무 좋아서 이론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고 등등. 오디오 제작과 관련된 한 아직 중세시대에 있는 거지요. TV기사나 냉장고 기사나 에어컨 기사는 별로 잘난 척 안합니다. 유독 오디오 기사들만이 잘났습니다. 자기 우물 속에서 혼자 큰 소리 치는 거지요. 사실 저는 항공기 제작소에 근무하며 동시에 오디오 자작이 취미인 선배 한 분과 잘 지내고 있는데 그 분은 “오디오 제작이 가장 쉽고 휴대 전화 제작이 가장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그 지겨운 자화자찬이란....... 여기에 더하여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츄어 전문가들입니다.
대충 만들자고 들면 오디오 제작처럼 쉬운 것도 없다보니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좀 있고 기계만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공관에 관한 자료 좀 보고 또 몇 개 만들어서 실패도 성공도 하고 잡지나 인터넷에 기고하며 지명도를 좀 얻고 이제 오디오로 돈 좀 벌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이제 돈벌이를 하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을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 몇 명 알고 있는데 제게 바가지를 덮어씌우려고 엄청 애쓰다가 실패했습니다. 모르는 척하고 조용히 있으면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상투 꼭대기에 올라앉으려 듭니다. 취미는 취미로 그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더 거드름을 피우고 더 오만합니다. 자기는 다른 직업이 있고 취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고귀하다는 것이지요. “내 걸작을 사려면 부탁하고 굽실거려야한다”는 태도인데, 이런 사람이야 말로 실력은 없으면서 돈은 더 무섭게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기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오디오 제작과 수리는 이론만으로도 안 되고 경험만으로도 안 됩니다. 이 둘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왜 이런가 하면 오디오 기기란 음악이라는 정묘한 예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계측기를 전투대형으로 배열하고는 “관 꽂아 볼 필요도 없어요. 계산과 오실로스코프로 다 나오니까요.” 하는 엔지니어를 믿지 마십시오. 소리는 냉랭하고 무미건조하고 비음악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30년의 경험’을 선전하면서 자기 경험과 자기 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 엔지니어도 믿지 마십시오. 그 경우 어쨌든 그럴듯한 소리가 나온다고 하지만 밸런스가 안 맞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하지만 집에서 조용히 들으면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30년의 경험’을 떠들어대는 엔지니어에게는 그 사람이 평소에 하던 것이나 맡겨야지 새로운 것을 갖다 주면 큰일 납니다. 도대체 ‘진공관 특성표’도 없이 앰프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돈을 적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경력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오디오에 종사하기보다는 전파상에서 땜질이나 해야 할 수준입니다.
어떤 국가의 수준은 기기의 제작 능력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문제 있는 기기에 대한 책임의식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현대자동차의 급격한 기술 향상은 자동차 자체의 성능 이상으로 북미 시장에서 ‘10년, 6만km’의 보증수리기간을 선언했을 때 결정된 것입니다. 제작 이상으로 AS가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이 점에 있어서 아직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그 지능은 의외로 단순 무지합니다.
드물게 좋은 엔지니어도 있습니다. 그러한 엔지니어의 첫 번째 특징은 겸허와 정직입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우리 매니아는 대부분의 경우 기기의 기술적 측면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많고 두려움도 많습니다. 그러한 무지에 대한 엔지니어의 짜증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매니아 중에는 터무니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멀쩡한 기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도 하고, 조금 나는 험도 참지 못해하기도 합니다. 40년대 3극관 앰프에서 어떻게 험이 없기를 기대하나요. 이러한 요구들은 헤파이스터스가 환생한다 해도 해결하지 못할 것들이지요.
조금씩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들과 숍 주인들 쪽에서의 개선이 더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매니아이니까요. 특히 엔지니어들은 음악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즉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공학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잔머리의 약삭빠른 사람들은 학문을 비웃습니다만 이론 없는 경험은 맹목이고 경험 없는 이론은 공허입니다. 이 둘은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기 싫거나 음악 듣기 싫거나 땜질이 싫으면 은퇴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길이나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 자체를 사랑하지 않거나 연주회장에 자주 다니지 않는 엔지니어도 자기 직업을 그만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황을 모를 때에 도대체 어디에 맞추어 기기를 튜닝하겠습니까? 그 빈약한 상상력만으로? 계측기만으로? 경험만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오디오 기기와 관련하여서도 소비자 운동이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로서의 우리도 품위와 기준을 가져야 하겠지만 엔지니어와 판매자 역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의무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격, 기기의 신뢰성, 친절, AS 등의 항목을 정하여 동호인들의 의견과 평점을 거쳐 순위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것은 어떤 엔지니어나 상점주를 몰락시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친절하고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좀 더 번성케 하고 이제 오디오에 갓 발을 들여놓는 초심자들이 좀 더 실수 없이 음악의 세계에 다가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 일에 대한 엄격한 사랑을 품고 오로지 연구와 실험적 시도에 매달리는 엔지니어를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의 기기는 한참 동안 좋은 평가를 못 받았지만 이제는 멋진 작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외제 오디오에 대한 ‘허영의 시장’에서 그야말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에 대한 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저는 동호인 여러분의 의견을 더욱 존중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종합된 의견서는 ‘소비자 보고서(consumer report)’로 만들어져 1년에 두 번 인터넷상에 공표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와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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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가 제작하게 될 지도 모르는 라인 스테이지와 관련하여 오디오 엔지니어들에 관한 얘기를 굳이 한 것은 사실 엔지니어들의 문제가 탄사모 조직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엔지니어들에 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해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들의 수고와 기기 수준과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탄노이 애호가들의 기질은 앞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조용하고 젊잖습니다. 엔지니어들이 횡포를 부리고자 들면 고스란히 당합니다. 엔지니어나 오디오 판매상의 부당함에 맞붙어 싸우는 것은 탄노이 애호가들의 기질과는 맞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이상한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싸움도 잘한다고 하던데.......
우리 애호가의 수준이 진공관의 특성에 따른 차이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가 되면 제작에 돌입할 수준이 되고 매니아 중의 매니아가 되는 것입니다. 탄노이 모니터 시리즈에 이르면 진공관의 특성에 따른 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저는 언젠가 얼치기 전문가가, 자기도 한때 탄노이를 썼었는데 스피커가 둔해서 관의 특성을 잘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젠센 동축형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정말이지 한참동안 웃느라고 정신을 못차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젠센이야말로 둔한 스피커입니다. 그 분은 젠센 15인치 코엑시얼을 쓰고 계셨는데, 스피커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우퍼의 울림소리가 마치 종이 문창호지가 겨울 바람에 우는 소리를 내는 것과 흡사하였습니다. 버석거리더군요. 그런데 그 스피커가 관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망치로 바이얼린을 연주한다는 것을 믿을지언정 젠센 코엑시얼이 관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관의 개별적인 특성을 드러내는데에 있어서는 사실은 독일 계열의 유로딘이나 비오노르가 훨씬 유능합니다. 그 스피커들은 정교하고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탄노이가 관의 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어쨌든 라인단이나 기타 앰프를 만든다고 자부하는 엔지니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정한 날입니다.
문제는 엔지니어입니다. 단언컨대 라인단을 만들어줄 엔지니어를 구하시기 힘들 겁니다. 그 이유는 우선 엔지니어 대부분은 고객이 라인단을 만들어 달라면 쉽게 응하지만 부품을 가져다 주면서 이러이러한 방식의 라인단을 만들어 달라면 대부분 거부감을 보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일만 하려 하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새롭다고 돈 되는 것은 아니지요. 명의(名醫)라고 이름난 의사들은 고칠 수 있는 병만 고치지, 어려운 병은 고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환자를 고치려 고군분투하다가 실패하느니 흔한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무차별로 퍼부어서 고쳐놓는 편이 명의 소리를 듣기는 훨씬 쉽기 때문이지요.
두 번째 이유는 자부심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러이러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하쇼.” 합니다. 부품 값에서도 좀 남겨먹고 싶고 또 스스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는데 굳이 부품까지 갖다 주면서 참견하는 것에 자존심이 손상되고 이익도 손상되니까요.
엔지니어와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대체 선택 기준이 없습니다. 모두가 가장 잘났다고 합니다. 또 못하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력 없고 게으른 엔지니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게으르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작은 일들을 성실하게 하기보다는 큰일에 바가지를 씌우면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기 기기를 팔거나 수리해주고 나서는 이제 끝입니다. 그 기기가 문제를 일으키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신속하게 해결해주기보다는 어떻게든지 기피하면서 짜증스럽게 대합니다. 웃는 경우는 단 한 순간뿐입니다. 돈 받을 때!
다른 전자 영역은 조용한데 오디오 엔지니어들만은 마음 놓고 서로가 잘났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까요? 이유는 시장이 좁기 때문입니다. 별로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니까 대기업에서는 손을 대지 않고 여기저기 소규모 공방에서 작업을 합니다. 만약 대기업에서 손댔다면 이 분야도 벌써 논란은 끝을 맺었을 겁니다.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거기에 모여 있으니까요. 삼성이 실패한 것도 돈이 안되는 사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대체로는 돈이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합니다. 값비싼 음식점이나 고급 부띠끄를 좋아하는 우리 아줌마들은 음악도 오디오도 싫어합니다. 아줌마들과 예술의 관계는 제가 나중에 한번 다룰 것입니다만, 아줌마들에게 있어 음악 예술이란 테이블 뮤직 정도의 의미입니다. 음악보다는 자기네들 수다가 훨씬 소중합니다. 가끔 엔지니어들이 오디오 잡지와 힘을 합쳐 자기 자신을 홍보할 때 굳이 자기 경력을 광고하며 애쓰는 것은 사실 그 경력이 별 볼일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박사님이시고, 누구는 좋은 직장을 퇴직하고 (오로지 오디오가 좋아서) 오디오 제작에 투신했고, 누구는 30년간(혹은 20년간) 오디오에만 매진해 왔고, 누구는 머리가 너무 좋아서 이론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고 등등. 오디오 제작과 관련된 한 아직 중세시대에 있는 거지요. TV기사나 냉장고 기사나 에어컨 기사는 별로 잘난 척 안합니다. 유독 오디오 기사들만이 잘났습니다. 자기 우물 속에서 혼자 큰 소리 치는 거지요. 사실 저는 항공기 제작소에 근무하며 동시에 오디오 자작이 취미인 선배 한 분과 잘 지내고 있는데 그 분은 “오디오 제작이 가장 쉽고 휴대 전화 제작이 가장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그 지겨운 자화자찬이란....... 여기에 더하여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츄어 전문가들입니다.
대충 만들자고 들면 오디오 제작처럼 쉬운 것도 없다보니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좀 있고 기계만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공관에 관한 자료 좀 보고 또 몇 개 만들어서 실패도 성공도 하고 잡지나 인터넷에 기고하며 지명도를 좀 얻고 이제 오디오로 돈 좀 벌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이제 돈벌이를 하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을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 몇 명 알고 있는데 제게 바가지를 덮어씌우려고 엄청 애쓰다가 실패했습니다. 모르는 척하고 조용히 있으면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상투 꼭대기에 올라앉으려 듭니다. 취미는 취미로 그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더 거드름을 피우고 더 오만합니다. 자기는 다른 직업이 있고 취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고귀하다는 것이지요. “내 걸작을 사려면 부탁하고 굽실거려야한다”는 태도인데, 이런 사람이야 말로 실력은 없으면서 돈은 더 무섭게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기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오디오 제작과 수리는 이론만으로도 안 되고 경험만으로도 안 됩니다. 이 둘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왜 이런가 하면 오디오 기기란 음악이라는 정묘한 예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계측기를 전투대형으로 배열하고는 “관 꽂아 볼 필요도 없어요. 계산과 오실로스코프로 다 나오니까요.” 하는 엔지니어를 믿지 마십시오. 소리는 냉랭하고 무미건조하고 비음악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30년의 경험’을 선전하면서 자기 경험과 자기 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 엔지니어도 믿지 마십시오. 그 경우 어쨌든 그럴듯한 소리가 나온다고 하지만 밸런스가 안 맞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하지만 집에서 조용히 들으면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30년의 경험’을 떠들어대는 엔지니어에게는 그 사람이 평소에 하던 것이나 맡겨야지 새로운 것을 갖다 주면 큰일 납니다. 도대체 ‘진공관 특성표’도 없이 앰프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돈을 적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경력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오디오에 종사하기보다는 전파상에서 땜질이나 해야 할 수준입니다.
어떤 국가의 수준은 기기의 제작 능력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문제 있는 기기에 대한 책임의식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현대자동차의 급격한 기술 향상은 자동차 자체의 성능 이상으로 북미 시장에서 ‘10년, 6만km’의 보증수리기간을 선언했을 때 결정된 것입니다. 제작 이상으로 AS가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이 점에 있어서 아직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그 지능은 의외로 단순 무지합니다.
드물게 좋은 엔지니어도 있습니다. 그러한 엔지니어의 첫 번째 특징은 겸허와 정직입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우리 매니아는 대부분의 경우 기기의 기술적 측면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많고 두려움도 많습니다. 그러한 무지에 대한 엔지니어의 짜증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매니아 중에는 터무니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멀쩡한 기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도 하고, 조금 나는 험도 참지 못해하기도 합니다. 40년대 3극관 앰프에서 어떻게 험이 없기를 기대하나요. 이러한 요구들은 헤파이스터스가 환생한다 해도 해결하지 못할 것들이지요.
조금씩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들과 숍 주인들 쪽에서의 개선이 더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매니아이니까요. 특히 엔지니어들은 음악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즉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공학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잔머리의 약삭빠른 사람들은 학문을 비웃습니다만 이론 없는 경험은 맹목이고 경험 없는 이론은 공허입니다. 이 둘은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기 싫거나 음악 듣기 싫거나 땜질이 싫으면 은퇴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길이나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 자체를 사랑하지 않거나 연주회장에 자주 다니지 않는 엔지니어도 자기 직업을 그만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황을 모를 때에 도대체 어디에 맞추어 기기를 튜닝하겠습니까? 그 빈약한 상상력만으로? 계측기만으로? 경험만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오디오 기기와 관련하여서도 소비자 운동이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로서의 우리도 품위와 기준을 가져야 하겠지만 엔지니어와 판매자 역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의무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격, 기기의 신뢰성, 친절, AS 등의 항목을 정하여 동호인들의 의견과 평점을 거쳐 순위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것은 어떤 엔지니어나 상점주를 몰락시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친절하고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좀 더 번성케 하고 이제 오디오에 갓 발을 들여놓는 초심자들이 좀 더 실수 없이 음악의 세계에 다가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 일에 대한 엄격한 사랑을 품고 오로지 연구와 실험적 시도에 매달리는 엔지니어를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의 기기는 한참 동안 좋은 평가를 못 받았지만 이제는 멋진 작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외제 오디오에 대한 ‘허영의 시장’에서 그야말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에 대한 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저는 동호인 여러분의 의견을 더욱 존중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종합된 의견서는 ‘소비자 보고서(consumer report)’로 만들어져 1년에 두 번 인터넷상에 공표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와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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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가 제작하게 될 지도 모르는 라인 스테이지와 관련하여 오디오 엔지니어들에 관한 얘기를 굳이 한 것은 사실 엔지니어들의 문제가 탄사모 조직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엔지니어들에 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해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들의 수고와 기기 수준과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탄노이 애호가들의 기질은 앞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조용하고 젊잖습니다. 엔지니어들이 횡포를 부리고자 들면 고스란히 당합니다. 엔지니어나 오디오 판매상의 부당함에 맞붙어 싸우는 것은 탄노이 애호가들의 기질과는 맞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이상한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싸움도 잘한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