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7
이제 유럽의 고전 3극관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훨씬 비싸게 되었습니다. 물론 40년대의 300B 역시 금값보다 비싸진 지 오래 되었고 300B 각인관은 개당 300만원을 가볍게 넘어섰습니다. 우리 같은 음악 매니아에게는 그것들이 음악과 관련되지 않는 한 다이아몬드보다 더 비싸다한들 의미가 없겠지만 “방금 들은 그 목소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처지이니 정말이지 신경이 곤두섭니다. 300만원이라면 사실 꽤 쓸 만한 프리․파워 한 세트를 살 수 있는 돈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구 하나의 값이 그렇다니…. 300A는 부르는 게 값이라네요.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데 양평에 있는 어떤 창고와 송파에 있는 어떤 아파트에 300B가 4천여 개, 300A가 수십여 개 있다고 합니다. 단지 그것들은 ‘Not For Sale'이랍니다. 정말 절박하게 필요하지만 살 돈이 없거나 또 돈이 있다 해도 살 수 없다고 하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것들을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조씩 나눠준다면 저는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떤 수단으로 구했든지-개의치 않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관련하여 여러 영웅들을 알고 있습니다. 일지매라거나 임꺽정이라거나 쾌걸 조로라거나…. 저는 아주 실제적인 사람이어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부친의 허영이 없었다면 모차르트는 없었을 것이고 부친의 회초리가 없었더라면 베토벤도 없었을 겁니다. 말 안 들으면 잡아 패야지요.
그러니 위에 열거한 여러 영웅들이 악질 탐관오리들을 몇 명 손 좀 봤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요. 그런데 이제 그만 해야겠습니다. 군 시절에 고참병하고 쌈질하다가 영창에 2박 3일 머문 적이 있는데 할 일 아니더군요.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지천명입니다) 귀중품을 원해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반지도 인공 다이아몬드로 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에게 받긴 했지만 그 돈은 오디오로 둔갑했고 큐빅으로 때웠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컴맹이신 것이 다행입니다. 그 사실은 여태도 비밀이니까요.
저는 아주 실사구시적 정신에 투철한 사람이어서 단지 허영과 과시, 그리고 장식만을 위해 큰 돈 쓰는 것을 꺼립니다.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지요. 다이아몬드 반지나 금시계를 착용해서 숙면을 취하거나 시원한 배변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진지하게 고려했을지도 모릅니다. 플라톤이 시보다 훨씬 시적인 산문으로 젊은 제게 말해준 “가슴 속에 황금을 가진 사람은 세속의 황금을 탐낼 이유가 없다.”는 교훈이야말로 평생을 일관하여 제 마음속에 메아리쳐 왔습니다. ‘가슴 속 황금’ 역시도 제게는 없는 듯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저역시도 오디오를 제작하고 매입하기 위해 계속해서 황금을 탐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개탄이야말로 제 인품이 형편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저만해도 부러워할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요. 사실 제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면 200만원쯤 하는 일제 싸구려 시스템으로 만족하고 안 들리는 소리는 마음으로 들었겠지요. 유감입니다. 저 역시 필부에 지나지 않으니. 그러나 저는 최소한 음악 세계에 있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매점(買占)을 하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C모 씨나 J모 씨는 엄청나게 많은 기기와 진공관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할까요? 저는 오디오 매니아들에 대해 안타까운 공감을 합니다. 다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좀 더 좋은 음을 들으려고 긴축에 또 긴축을 하면서 오디오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지요. 사실 우리들은 남대문표 티셔츠 한 장도 돈이 아까워 벌벌 떱니다. 저는 한때는 3500원 짜리 점심을 먹으려고 20분을 걸어 다닌 적도 있습니다. 단돈 500원을 아끼기 위해.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세 정거장을 걸어서 집에 왔습니다. 그렇게 보름을 걸으면 소위 ‘빽판’을 한 장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재벌 분들께서는, 훨씬 더 자신들에게 어울릴 것 같은 다른 취미를 제쳐두고 왜 오디오 기기를 매점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 이런 분들이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기가 필요하다면 세상에서 알려진 가장 좋은 기기를 한 두 조 마련하면 끝나는 것 아닌가요? 제가 듣기론 C 모 씨께선 장차 오디오 박물관을 열 작정으로 기기를 모은다고 하셨다는데 구역질이 납니다. 그렇다면 왜 동일한 기기를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모으시나요? 박물관에 124B를 열 대, 142C를 여섯 대, PX25 관을 백 개씩 갖다놓을 작정인가요? 저는 그런 박물관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덕 중 허영과 허위의식을 가장 혐오합니다. 만약 C모 씨께서 “나는 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라거나 “모아두면 장차 큰돈이 될 것 같아서”라거나 “모조리 독점을 하면 값은 저절로 오를 것 아니겠어” 등등의 말로 자신의 기기수집 증후군을 해명했다면 화는 났을지언정 이렇게까지 인간에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이러한 내심은 감춘 채로 고귀한 목적을 끌어대, 우리 모두와 어쩌면 자기 자신까지도 기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분노와 역겨움을 보여서 점잖으신 탄노이 애호가 분들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며칠 전 다음과 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PX 25 싱글 앰프를 만들고 싶은데 도저히 관을 구할 수 없어요. 일본에 가서 구해야 하는데 한 조에 400만원을 달라고 하네요.” 여러분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 화가나지 않나요. 그 돈이라면 아예 오디오 세트 한 조 값입니다. 저는 유럽에 전화했습니다. 네덜란드 그로닝엔에 친구가 살고 있는데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해본 거지요. 그 친구는 며칠 후 “불가능하다”고 전화했습니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들이 싹쓸이를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싹쓸이된 관의 대부분을(26개) C모 씨가 한꺼번에 매입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절대 안 판다고 하네요. 창고에 처박아 두고 있는 것이지요. 창고에!
우리에겐 어마어마하게 소중해서 한 번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진공관들이 창고에서 썩고 있는 겁니다. 단지 돈 많고 무식한 어떤 속물들 때문에. 진공관 값이 터무니없이 치솟게 된 것은 그러한 속물들의 매점이 한 원인인 것이지요. 더구나 이러한 고신뢰관은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한정된 수량만 남아 있는 것이지요. 돈이 많다거나 돈을 잘 번다거나 하는 사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경쟁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돈 모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진공관은 무차별적으로 모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도대체 이러한 것들을 독점하는 것은 인간성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일까요? C모 씨는 듣기로는 S대학을 졸업했다고 하고 S산업의 이사진 중 한 명이라는데 그 정도 되면 가방끈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아시아의 왕들은 경쟁적으로 후궁들을 들였습니다. 어떤 왕은 수백 명씩 거느렸지요. 그런데 그 후궁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이웃 국가의 왕에게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허영이었지요. C모 씨, 부디 많은 허영과 더불어 잘 사세요.
제게 PX25 관이 세 개 있었습니다. 제 앰프를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그 중 두 개를 그 친구에게 팔았습니다. 제가 매입한 가격으로. 이제 ‘양들은 침묵’하더군요. 제 PX25 앰프는 날아갔지요.
저 역시도 악덕과 탐욕에 있어서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한심한 인간이긴 합니다. 그래도 저는 사랑과 공감이 우리를 덜 불행하게 하는 커다란 두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리는 서로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또 문제가 생겼을 땐 같이 한번 애써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돈벼락을 맞더라도 C모 씨처럼은 살지 맙시다. Pecunia avarum irritat, non satiat.(돈은 탐욕을 부채질할 뿐이지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진공관의 역사 이래 RE604만큼 사랑을 많이 받은 관은 없을 겁니다. 심지어 K모 엔지니어나 A모 진공관 전문가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관이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소리란 없는 법인데도요. 보통 교양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정언적 어법’을 쉽게 씁니다. 취향이란 다양한 것이라 이런 판단을 할 때에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라는 조건이 붙어야 하는 것임을 모르는 거지요. A모 진공관 전문가께서 RE604 관에 대해 모 잡지에 기고한 부분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AD1 앰프를 만들어 듣고 있던 터라 RE604의 존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막상 RE604의 소리를 듣고 나서는 산산이 조각난 자존심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지와 오만에서 오는 편견과 아집이 20년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았다는 자괴감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는데도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 (지멘스) ED는 음색이 너무 가늘지만 아름답고, PX4는 중후하면서도 섬세하다. 또 AD1은 약간 거친 듯하면서도 화려하고 RE604는 비단결같이 유려하니 어찌 상하를 논하겠는가.”
상당한 감상과 과장을 섞어서 글을 쓰시는 분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RE604에 대한 상찬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해야겠습니다. RE604는 확실히 그 부드러움과 저역의 깊이, 확고한 분해력 등에 있어서 뛰어난 관입니다. 그러나 RE604의 음을 아름답다고 묘사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약간은 차갑고 명석하고 지성적인 느낌을 주지요. 섬세하고 예쁘게 생기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초연하고, 애교 떨지 않고 품위 있는 여성-마치 알프레흐트 뒤러나 한스 메믈링 회화의 여주인공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탄노이 애호가에게 있어서 이 관은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출력이 1.4W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싱글로 탄노이를 구동하면 모기 소리가 납니다. 결국 PP나 파라싱글이라야 하지요. 저는 제 텔레풍켄 파워앰프에는 출력관 소켓을 두 개 만들고 바이어스 전압을 조정하여 경우에 따라 ED관도 쓸 수 있고 RE604도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았는데 RE604 소켓은 탄노이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RE604를 사용한 독일계의 진공관 앰프는 크게 7개가 있습니다. 우선 클랑필름 PP가 있고, 클람필름 파라 싱글, 지멘스 PP, 클랑필름 싱글 등이 있습니다. 모두 상당한 고가입니다. 1500만 원이 넘습니다. (제작합시다. 더 좋은 앰프를 만드는 데 700만원 정도 듭니다.)
저는 위의 네 앰프 중 클랑필름 PP와 지멘스 PP를 갖고 있는데 성격이 약간 다릅니다. 클랑필름 PP의 경우 REN 904 두 개로 증폭하고 인터 스테이지를 사용하여 입력감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고역이 아름다운데 밸런스가 약간 위쪽으로 치우쳐 있지요.
지멘스 PP는 밸런스가 실연과 상당히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역이 약간 둔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오디오 기기는 언제나 실황보다 약 2도 정도 높게 튜닝되어 있습니다. 고역으로 어느 정도 치우치는 게 듣기에는 더 자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래 들으면 피곤합니다. 지멘스 PP는 다행히도 음역대가 실제 악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듣기에 아주 편합니다. 단지 저역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하여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합니다.
클랑필름 PP는 본래 영사기용으로 광전관을 읽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보통 관전관의 전압은 0.1~0.12mv이고 카트리지는 0.25~0.5mv이므로 광전관용 앰프는 가정에서 카트리지로 듣기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지요. 프로용이라는 것을 어떤 앰프의 우수성을 가라는 한 조건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는 가정용이 좋습니다. 그런데 좀 들을 만하다 싶으면 가정용이 오히려 엄청난 고가가 됩니다. A라는 진공관 앰프는 파워앰프가 6천만원이고 L이라는 앰프는 4천만원이고 B라는 앰프는 5천만원이고 …. 세상이 온통 미쳤습니다. 한국의 하이엔드 유저들은 국제적인 봉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A라는 앰프를 몇 년 전에 집에 들인 적이 있습니다.(제가 잠깐 지름신에게 넘어간 경우입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제 연봉 정도를 손해보고 그나마 사정사정해서 내보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조언하는데 진공관이 되었든 솔리드 스테이트가 되었든 빈티지를 듣던 분들은 절대로 하이엔드는 사지 마십시오. 엉터리없이 비싸고, 처분하기 어렵고, 중고 시세 형편없고, 미적 가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타노이와는 미스 매칭입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나 나감직한 길바닥 미인이 아프로디테 여신 정도의 품격 있는 여인과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여러 RE604 기성품 중에서는 지멘스 PP를 가장 높게 평가합니다. 우선 푸근하고 매끈하고 풍성합니다. 본래 RE604는 저역의 댐핑 능력이 뛰어난 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인단을 상당히 가립니다만, 좋은 라인단과 결합되었을 때 지멘스 PP는 정말이지 기품 있고 안정된 소리를 냅니다. 또 열어보면 제작의 치밀함과 공들인 흔적이 금방 느껴집니다. 눈에 띤다면 빚을 내서라도 사놓을 만한 앰프입니다. 워낙 귀해서 평생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앰프입니다. 지멘스 PP와 탄노이 모니터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지멘스 PP는 저역의 댐핑능력이 뛰어나고 또 탄노이는 앰프의 그러한 특성을 잘 살려줍니다. 단지 라인단이 충실하지 않을 경우 저역이 벙벙거릴 위험이 있습니다. 클랑필름의 PP와 파라싱글은 저역이 깨끗하고 단단합니다만 고역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재조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앰프를 튜닝하기 위해서 꽤 고생했습니다. 서너 명의 엔지니어들이 고역을 치렀지요. 반면에 지멘스 PP는 저역을 단정하게 만들기 위해 고생을 치러야 하는데 이 경우는 오히려 프리부쪽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RE604 관은 클랑필름사와 텔레풍켄사에서 각각 제작했는데 양 사의 경우 모두 초기에는 벌룬(balloon) 모양의 관을 출시했고 후기에는 ST형의 관을 만들었습니다. RE604의 경우 매우 특이하게도 벌룬관과 ST관의 음색이 상당히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이름을 지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음색이나 다른 여러 성격이 상이합니다.
벌룬관은 부드럽고 우아한 소리를 내지만 약간 둔합니다. 어딘가 두루뭉술한 느낌이지요. 저역이 매우 많이 나오긴 합니다만 그렇게 선명한 저역은 아닙니다. 벌룬관의 가치는 중․고역에서 나타납니다. 형언할 수 없는 유려함을 보이지요. 탄노이와 어울리는 측면은 여기에 있습니다만 사실상 벌룬관과 탄노이는 좋은 궁합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탄노이의 약점인 저역을 보강해주지 못하는 진공관이니까요. 반면에 ST관은 상당히 선명하고 시원한 소리를 냅니다. 저역도 단단하게 맺히고 응답특성도 빠릅니다만 이번에는 고역에 문제가 있습니다. 탄노이에 맥킨토시 앰프를 매칭시켰을 때 가끔 나타나는 현상-‘쏘는 고역’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경우 탄노이 역시도 혼 스피커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지요. 저 자신도 이 문제는 해결을 못했습니다. ST관을 오래 듣고 있으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섭니다. 3극관이 정말 싫어지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저의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날카로운 소리를 저는 워낙 싫어하니까요. RE604 애호가의 경우 ST관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벌룬관이나 ST관이나 모두 클랑필름사의 것이 텔레풍켄사의 것보다 높게 평가됩니다. 주의 깊게 들어보면 클랑필름사의 관들이 좀 더 풍성한 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클랑필름사의 것이 좀 더 수명이 길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탄노이와 RE604의 조합은 어떤 조합 못지않게 잘 어울리는 매칭입니다. 단정하고 깔끔한 성격이 둘 다 비슷합니다. 특히 벌룬관일 경우에는 풍성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훌륭한 밸런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듣기에 매우 편하면서도 음색은 매혹적입니다.
독일 오디오 매니아들은 RE604 관을 매우 좋아합니다. 아마도 그 선호도에 있어서 ED관과 더불어 가장 선두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이지 RE604 싱글 엔디드와 유로딘. 비요노르, 클라톤 등의 조합은 거의 환상적입니다. 제가 아는 매니아 한 분은 위의 세 종류의 스피커를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RE604와의 조합이 매우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피곤하더군요. 두 시간쯤 듣고 나니까 엄청난 피곤이 몰려 왔습니다. 저는 역시 탄노이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