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기

정갈하고 깨끗한 젊은 처자에게 바치는 초꼬마 6V6 싱글

by 항아리 posted May 05,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충남 아산에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심심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자가 셋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저입니다.
 

 그 셋은 나이가 제각각이나 서로 친하게 어울리며,
 만나면 주로 음악을 듣다가, 배고프면 시내 나가서 돼지머리 국밥을 먹고,
배가 불러지면 시내 원두커피 집에서 젊은 처자들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십니다.
 그리고 해가 지면 각자 집으로 갑니다.

 

 시내의 원두커피 집들 중, 제 눈에 확 들어오는 젊은 처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보기에 좋아서였습니다.
 정갈하고 깨끗한 분위기,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 온몸에 좔좔 흐르는 조신함과 성실성...

 

 나 쟤 좋아. 그냥 좋아. 딴 생각 안해. 보고 있으면 좋고 그걸로 끝. 더 바랄 것 없어. 정말이야.

 

 저는 심심한 두 사람에게 앵무새처럼 그 말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심심한 우리 셋은 그 커피집에 자주 갔습니다. 툭 하면. 그 커피집의 소형 PA 소리가 그렇게
싫었으면서도.

 

 그러던  어느 날,

 그 젊은 처자가 곧 그만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소식은 파랗고 맑은 하늘은 여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그 젊은 처자가 자기 커피집을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오, 이것은 정말 잘되었구나, 싶은 소식이었습니다.

 

 축하 축하. 놀러갈께.

 

 심심한 우리 세 인간은 그 젊은 처자에게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젊은 처자는 밝게 웃으면서 소녀처럼 기뻐했습니다. 보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하늘이 빵꾸blowout나도 갈 것이다,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제가 잠시 멀리 간 사이 두 인간이 그 젊은 처자의 커피집을 찾으러 갔다가 못찾고 허탕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지 않았는데 찾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인조인간과 디지털정신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요즘 처자들 하곤 아주 다른 그 처자의 유니크Unique하면서도 오소독소Orthodox한 매력을 보자마자 눈치챈
것은 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심심한 세 사람 중에 거리에, 세상에 흘려져 버린 듯한 여자만 보면 오토매틱으로 작업을 거는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멀리 간 사이, 다른 사람과 저하고 둘이서 그 젊은 처자의 커피집을 찾아나섰습니다.
 바로 찾았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갔기 때문입니다.

 

 아직 개업을 하지 않았고, 내부 치장 중이었습니다.
 우리를 본 젊은 처자는 매우 놀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저는 여자의 가식은 즉각 꿰뚫어 보고, 그 가식으로 남자를 조절하려는
여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상대하지 않고 즉시 피합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젊은 처자의 모습에 찾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기쁨이 지극히 밝은 빛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저는 커피집 개업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품었던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천정 모서리에 매달린 자그마한 PA용 스피커 두 발, 거기서 나오는 메마르고 지저분한 소리. 참을 수 없었습니다.

 

 여인이여, 장사를 할 생각인가?
 왜요?
 손님들의 귀를 괴롭히면서 장사를 하겠다는 게 맨 정신이 박혔다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소리가 좀 그렇긴 해요. 그런데 돈이 모자라서...
 여인이여, 왜 내게 얘기하지 않는가. 내가 있지 않은가.
 이것저것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돈이 없는데....
 하지만 여인이여, 공짜로 해주지 않을 거면 내가 얘기나 꺼냈겠는가.
 정말요?

 

 소녀처럼 놀라고 기뻐하는 젊은 처자. 저는 목소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사람을 뭘로 본 건가. 내가 허언이나 일삼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아직 준비도 안됐지만 젊은 처자가 급히 내려서 빼준 커피를 마시고 -오, 커피 맛있네, 커피 맛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와 전혀 부담을 주지않을 앰프를 만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느라 혼자서 분주했습니다.

 

 예전에 사진의 케이스-원래 포노앰프였습니다-를 들고 놀러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포노 소리를 어떻게 더 좋게 해볼 생각이라 했는데, 제 집에 와서 마음을 바꿨는지 수고스럽겠지만
들고 온 포노앰프를 버려 달라고 부탁하고는 놓고 가버렸습니다.
 케이스를 쓸 생각으로 안팎에 달라붙었던 것들은 다 털어내고 부탁대로 다 버렸습니다.
 
 저 케이스에 달라붙을만한 적절한 부품들을 고르고 선택했습니다.
 전압은 220v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아카이 전원트랜스가 있었습니다.
 아웃트랜스는 마침 옛 미제 장전축에서 나온 44mm 코어의 아담한 놈이 있었습니다. 그런 놈들, 작다고 우습게 보면
안되는 소리가 납니다. 제대로 대우해 준다면.
 있을 건 다 있어야 했습니다. 정류관과 초크도 준비합니다.
 정리 안되는 인생,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맞춘 듯이 하나하나 나타납니다.
 자리 배치를 하고 구멍을 뚫었습니다.
 

 처음 자작할 때 기분. 십 년이 갑자기 젊어진 것처럼 활기차고 역동적인 기쁨이 샘솟아 납니다.
 새하얗고 차가운 알루미늄 색이 꼴보기 싫어 칠을 합니다.
 기왕이면 비싸고 고급스런 자동차용 락카를 씁니다.
 
 부품장착 - 배선 - 첫 소리 - 튜닝 - 마감.

 꼬박 하루가 걸립니다. 역시 본격적으로 나이를 처먹어가는 게 틀림없습니다. 간만에 최고조의 집중력을 발휘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 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어디 거시기 하나님도 쉰다는 일요일 아침,
 저는 쉼없이 부담없고 가격없는 6v6싱글을 돌립니다.
 커피집에서 하루 왼종일 울어야 하는 놈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생기면 안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빌미 삼아 한 번 더 갈 수 있겠지만, 그게 두 세번 반복되면 젊은 처자는 저를 의심할 것입니다.
 저거 후로꾸fluke 아냐?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젊은 처자의 커피집은 아담합니다. 스피커는 젠센 풀레인지로 하기로 합니다.
 매달려 있던 PA 스피커는 뽀개 버릴 것입니다.
 메마르고 지저분하게 날리는 소리엔 스피커도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좀 있다가 설치해 주러 갑니다.
 설렙니다.
 
 그러고보니 저 놈을 준비하고 만드는 동안, 정말 안심심했습니다.

 (알파볼륨 100k옴 - 5879 5결접속 - 코넬드빌리어 커플링 - 6v6 5결 접속 - 장전축 아웃트랜스 - 젠센 풀레인지의
구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