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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다

by 안효상 posted Oct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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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신입사원이던 시절 그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다고 생각되는 돈을 주고 AR ES-1이라는 턴테이블을 구입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대체재로 나타난 CD의 편리함, 간편성, 첨단 이미지 등에 밀려 거의 내 사랑을 받지 못했고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난 후 LP는 지금까지 손 대지 않고 오디오 생활을 해 왔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 멀티시스템에 심취하게 된 이 후 스피커 만들기에 열중해 왔고 이 스피커의 튜닝은 CD를 얼마나 잘 재행하느냐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CD를 얼마나 잘 재생하느냐 보다는 CD로 재생하되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스피커의 조합을 변경하고 각종 앰프의 매칭을 변경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슬슬 들어가면서 필연적으로 CD의 본질적인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은 불편함, 이사할 때의 부담감 등으로 LP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묻어두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묻어 두기에는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중역용 드라이버로 JBL 375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거슬렸던 부분이 알루미늄 진동판의 음색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표현으로는 너무 색기가 많아 요염하고, 증류수처럼 깨끗하기는 하나 제대로 된 물 맛이 나지 않고, 너무 쇠 소리가 강해 인간의 목소리 같은 유기체에서 나오는 소리는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간의 목소리 재생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알텍 290드라이버를 구원군으로 투입하여 500에서 1250Hz까지는 290드라이버로 1250에서 7000Hz 까지는 JBL 375로 구동하는 4웨이 멀티로 변경한 것입니다.
변경 후에 제가 노렸던 포인트는 상당부분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근본적인 해결은 안된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동시에 추진되고 있었던 것이 아날로그 시스템의 부활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 아내가 먼저 제안하였으나 귀찮음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 계속 미루다가 결국 떠밀려서 가볍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턴테이블은 가장 저렴한 것 중에 구하기 쉽고, 인정도 받고 있는 테크닉스 1200MK2, 바늘은 슈어 MM형으로, 포노 앰프는
오스오디오 PH-700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녁 무렵 포노 앰프를 아내와 같이 가서 사 들고 와서 시스템에 연결하고 분위기 잡아 가며 들었습니다. 안성기씨의 커피광고 같은 분위기…..
기대는 했었지만 이렇게 제 고민을 일거에 날려 버릴 줄 몰랐습니다.
JBL 375가 기생에서 성숙하고 지적인 숙녀로, 증류수에서 약수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런 초보적인 아날로그 시스템이 저를 전적으로 만족시킨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근본적으로 고민하던 포인트를 일거에 날려버렸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 동안은 스피커를 어떻게 구성할까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바쳤다면 이제는 턴테이블, 암, 카트리지, 승압 트랜스 등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 길을 돌아 이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