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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으로 카바세를 울리기까지 2개월의 여정

by 조영훈 posted Nov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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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으로 까바세를 울리기까지 ‘2개월의 기록’

^◇새로운 도전

^정확히 10년만이다. 산본신도시의 비교적 넓은 집에 입주하면서 탄노이 오토그라프, JBL 4345 등 대형 스피커와 빈티지 진공관 앰프로 세팅해 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음악에 심취했던 이후로.
^서울로 다시 입성하면서 IMF 경제위기와 잇따른 이직 등 음악은 그야말로 사치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것저것 시스템을 거의 정리하고 서브로 남아있던 뮤지컬피델리티 신포니아와 JBL L100, 토렌스 126마크2, 인켈 금장 CDP 등을 보유한 채 음악을 거의 듣지 않으면서 지낸 세월이 10년.’
^그 사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큰 아이가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 큰 아이의 변신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수험생이 있는 집안이 모두 그렇듯 쥐죽은 듯 지내던 내가 이제는 볼륨을 높이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남아있는 서브를 보면서 이 안에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CD 가운데 하나인 개리 카의 ‘콜리드라이’를 듣거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남아있던 것이 사실이다.
^저녁 약속이 많아지고 술을 먹을 기회가 많아졌던 나에게 ‘상사의 절주’는 새로운 변신을 요구하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나만의 시간이 늘어난 것.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나만의 소리를 만들어보자.

^◇캠브리지 AZUR와의 만남

^일단 가지고 있던 시스템을 정리하기로 했다. 다행히 서브였지만 인기있던 기종이었던 만큼 10년전 시세보다 오히려 높은 가격에 팔렸다. 토렌스 126과 JBL L100 센츄리는 여전히 빈티지 계열에서 인기있는 항목이었고, 신포니아도 가격대비 평가가 좋아서인지 몰라도 쉽게 팔렸다. 백수십여만의 돈으로 새판을 짜기로 했다.
^소리전자와 와싸다, 실용오디오 등 중고장터가 활성화된 인터넷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각종 평론가들이 써내려간 기계들에 대한 평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요즘 나온 기계들을 중심으로 매칭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사실 오디오 장만하는 일에 시간을 들일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평론가들의 글을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용산 모 전자에서 평론가 사이에 평이 좋았다는 캠브리지 AZUR 340CDP와 앰프를 들여왔다. 스피커는 그 샵에서 보유하고 있던 엘락 톨보이 구형 스피커였다. 기대감을 갖고 차에서 내려 세팅한 첫 소리. CDP에 쇼스타코비치를 울리는 순간 쏟아지는 저음에 놀랐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저역은 펑퍼짐한 아주머니 엉덩이처럼 방안에 주저 앉기 시작했다. 저역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에이징이 덜 된 것은 아닌지, 뒷면에 다트를 막아주면 좀 나아지지 않을 지 밤새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전에 시스템보다도 못한 ‘막소리’라는 느낌.

^◇북셀프 스피커로 가보자

^용산 샵에 전화를 해서 일단 스피커 만을 바꿔보기로 했다. 요즘 나오는 탄노이의 톨보이 머큐리 시리즈로 바꿔봤다. 하지만 저역의 양이 줄어들어 퍼지는 느낌이 줄어들었을 뿐 음질은 오히려 악화됐다. 입체감이나 정위감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귀에 듣기 좋은 부드러운 소리만이 가득했다.
^결단을 내려 10만원을 손해보기로 하고, 스피커를 일단 정리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한동안 연락을 끊었던 고수 두 분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전 직장 거래관계로 만나던 선배는 빈티지 애호가이다보니 알텍계열과 영국계 KT66, 이봉화 선생님 프리를 쓸 정도로 빈티지에 인이 박힌 분이다.
^여러가지 스피커를 검토한 결과 가격도 50여만원 수준에서 찾기로 하고, 북셀프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처음에는 셀레스천SL6SI와 프로악 타블렛, 차리오 등 시장에서 비교적 찾기 쉬운 스피커이면서도 과거 명성이 있었던 기계에 중심점을 뒀다.
^장터 검색 결과 적당한 물건이 나오기도 했지만 여러 여건으로 좀더 기다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에포스M 12.2가 눈에 띄었다. 선배는 평가가 좋은 요즘 스피커라는 점과 과거 국내에 들어와 평가가 좋았던 모델의 복각제품으로 평가가 좋다는 얘기를 해줬고, 세운상가에 맡겨진 물건을 찾았다.
^기대감을 갖고 매칭. 일단 그동안의 방황했던 소리보다는 좋았다. 에포스의 특성상 약간의 질감도 느껴졌고, 대역 발란스 등도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바로 내 눈 앞에서 펼쳐졌고, 2차원 적인 소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캠브리지 320앰프의 능력이 과거 내가 보유했던 신포니아보다도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에포스는 생각보다 앰프의 높은 출력을 필요로 하는 스피커였다. 88DB 안팎의 앰프이니 그럴 것도 같았다. 그래서 앰프를 AZUR에서 비교적 상위기종인 640A로 바꿔봤다. 하지만 볼륨 레버가 조금 낮아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하나도 나아졌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진공관 앰프와의 매칭- ‘볼란테를 만나다’

^일단 고수들과 상의한 결과 고출력의 앰프로 바꾸는 것이 좋은데, A클라스로 구동하는 100와트 정도의 트랜지스터 앰프는 예상보다 가격이 높았다. 옛날부터 명성이 있다는 기기들 중에서 탐색을 시작했다.
^흔하게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기계의 가격도 만만찮은 게 현실. 그래서 일단 640A의 프리앰프의 프리아웃(인티 또는 프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 기능을 활용할 겸 인켈의 200와트급 1311앰프를 구했다. 하지만 시작도 전 앰프는 고장. 수소문 끝에 인켈 애프터서비스 센터에서 물경 5만원을 주고 기계를 고쳤다. 최상의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캠브리지 640을 프리로 에포스에 물렸다.
^저역이 단단해졌고 볼륨을 먹는 정도도 확연히 좋아졌다. 하지만 음질은 오히려 거칠고 발랜스가 맞춰지지 않은 불균형. 결국 A클래스 파워앰프를 매칭하더라도 이에 맞는 프리앰프를 찾아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남았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웠다.
^그 즈음 뮤지컬피델리티의 100와트급 모노모노 두 덩어리의 파워앰프가 싸게 나와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선뜻 구매를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고수님은 요즘 나오는 진공관 앰프로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기에 이르렀다. 이연구소와 SIS 등 국산 진공관 앰프 중 여러가지를 보면서 어떤 것이 좋을 지 고민하던 차에 인천에 사는 분이 640앰프를 찾는다고 연락해왔다. 물론 그 사람이 쓰던 ‘볼란테’라는 17와트급 진공관 인티앰프와의 맞교환 조건이었다. 인천 동암까지 어렵게 달려가 앰프를 가져왔다.
^하지만 에포스를 울리기에 출력이 모자란지 소리에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볼란테 라는 인티앰프에 대한 평은 좋았기 때문에 이 앰프를 만든 비즈니스코리아에 연락을 했다. 20만원의 비용을 들이면 최근의 제작기법인 정전압 방식과 모노모노로의 회로 재구성, 출력트랜스 교환을 통해 30와트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며 원하는 포노단을 연결할 수 있도록 포노앰프를 내장해준다는 사장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주말을 기다려 송파구 올림픽아파트 건너편 SK주유소 뒷골목에서 어렵사리 비즈니스코리아를 찾았다. 그리고 1시간여 작업이 시작된 것을 봤지만 마무리를 보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월요일 저녁에 앰프를 찾아서 에포스와 연결한 결과 적당한 출력, 넓어진 스테이지, 질감있는 현소리와 타악기 등 원하던 소리에 근접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좀더 정제된 느낌의 소리가 다가왔고, 나도 다소간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몇일간에 걸친 에이징이 이어지면서 소리는 자리를 잡아갔다. 개리 카에 이어 베를린필 12명의 첼리스트 연주는 편안한 느낌으로 비틀즈를 연주했다. 하지만 대편성곡을 듣기에는 다소간 모자란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막연히 머리를 스쳤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비즈니스 코리아를 찾았을 때 들어보았던 ‘판테온’이라는 진공관 앰프가 뿜어내던 인상적인 소리였다. 사실감이 넘치면서도 디테일에서 악기마다 윤기있는 소리를 내던 바로 그 모습.

^◇카바세를 들여오다

^1달여의 방황 끝에 일단 비교적 원하던 소리에 근접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에서 시스템 정비를 끝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은 ‘판테온’에 대한 막연한 동감과 함께 제대로된 스피커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에포스M12.2는 요즘 스피커 가운데 비교적 하이파이적인 소리를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서 소리장터에서도 물건이 나오기만 하면 금새 사라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100만원 이하대 스피커에서 ‘최상’이라는 꼬리표를 없앨 수는 없었다. 넓은 스테이지감으로 무대를 옮겨주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며 정밀한 묘사 등에서는 떨어진다는 생각.
^어떤 소리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모니터적인 소리’를 지향하기로 했다. 초대형스피커들을 구동하기에는 내가 듣는 청음 환경이 좋지 않았다. 약 3~4평의 방에서 톨보이를 비롯한 12인치 이상 대형 우퍼의 스피커들은 저음이 서로 엉키거나 뭉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북셀프 스피커 특히 모니터 스피커를 통한 해결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즈음에 장터에 고개를 내민 물건이 ‘카바세 고엘레떼 500’ 스피커다. 하이엔드적이면서 모니터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스피커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하이엔드 메이커인 JM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 카바세사였다. 그리고 이 회사의 코엘레떼 북셀프 스피커는 프랑스 국영방송의 모니터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기록을 봤다. 영국의 BBC 모니터가 지금까지도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이 같은 점을 반영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바세는 국내 시장에서는 너무나 낯선 이름이었다. 카바세를 갖고 계신 분은 광고회사를 다닌 분이신데 그 댁에 수백장의 다양한 장르의 CD를 보유한 것으로 봐서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었다. 삼성의 하이엔드 엠페러 프리에 A클래스 50와트 앰프에서의 매칭은 음장감이나 질감 등에서는 이 스피커의 좋은 성향을 나타냈다. 현재도 160만원에 판매될 정도로 하이엔드적이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매칭에서의 최대 문제점은 ‘피로감’이었다. 성악을 비롯해 피콜로 등 초고역을 기동하는 소리들은 ‘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분이 낮은 가격에 이 스피커를 팔려고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소리가 맞지 않으면 수업료를 지불하고 즉시 팔아야지. 하지만 진공관 소리라면 쏘는 느낌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 까.’ 이러저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집으로 향했고, 볼란테 인티앰프에 물리는 순간. 그 소리는 환상 그 자체였다. 적당한 윤기와 선명한 고음, 적당히 깔린 저역 등. 무대도 넓어져 스피커 사이의 공간에 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판테온을 들여오다
^오디오 파일들이 갖는 한계는 타협이 없다는 점이다. 일정 수준이라는 기준도 없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해 다른 소비를 줄이고 맹목적인 ‘지름신’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러한 부분을 경계하면서도 비지니스코리아에서 들었던 ‘판테온’ 앰프에 대한 유혹은 끊임없이 나의 귀전을 맴돌고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El34와 KT88, KT90 호환이 가능한 이 앰프는 30~70와트까지 출력을 내줘 거의 모든 스피커의 구동이 가능했다.
^판테온의 신품 가격이 300만원이 넘기 때문에 중고제품을 기다리기로 하고, ‘구함’ 코너에 글을 올리고 몇일이 지나서 판테온 EL34를 보유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비교적 업그레이드가 잘 된 초기모델이어서 이 기계를 사들이는 대신, 후배에게 내가 애장했던 볼란테를 넘겼다. 어렵게 소리를 만들어준 앰프를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기계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빈티지 피셔로 제 소리를 못내 고민하던 후배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후배는 볼란테의 팬이 돼 지금도 AE 스피커와 함께 즐거운 음악생활에 빠져있다.
^판테온을 들고 비즈니스코리아를 찾았다. 정사장님은 이 기계로는 카바세를 울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유를 들어보자. 카바세는 흔히 말하는 출력음압은 95DB로 높은 편에 들어가지만 카바세사에서 설명한 핸들링 파워는 100와트, 최고파워는 700와트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판매사에서도 100와트를 기동할 수 있는 EL34를 추천한다. 실제로 내가 처음 들었을 때의 소리에 대해서도 대만족이었다. 부드러운 느낌에 적당한 배음이 깔린 저역의 소리에 고음도 균형을 잃지 않은 느낌. 사실 이대로 만도 나에게는 대만족이었다.
^하지만 정사장님은 진공관 가운데 가장 출력이 높은 KT90을 구동해야만 제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일단 정사장님의 말씀을 듣기로 했다. 그 분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 번의 만남으로 신뢰가 쌓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분은 지방에 있는 고객들이 고민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고, 본인이 만든 기계를 중고로 매입한 사람이 가지고 오더라도 언제든지 최신기계에 해당하는 업그레이드를 해준다. 판테온에 대한 업그레이드는 의외로 포노단을 바꾸고 진공관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간단히 해결됐다.

^◇케이블의 중요성
^판테온KT90에 물린 카바세는 그전까지 듣지 못했던 단단하면서도 절제된 저음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또한 말러나 쇼스타코비치를 들을 때면 이전에 들리지 않던 타악기며 목관, 금관의 소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말러는 모든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때 ‘악기별로 3~4명의 연주자가 필수이며, 타악기는 7~8명에 달하고 현은 무제한으로 공급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제대로된 앰프와 매칭된 시스템에서 그 같은 말러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각 악기는 서로 균형을 맞추고 무대위에서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연주를 한다. 바이올린은 왼쪽 스피커에서 연주하고 첼로와 콘트라바스는 오른쪽 스피커의 배음을 깔려서 나타나고, 무대중앙 왼쪽에서는 트라이앵글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목관보다 깊은 곳에서 금관악기들이 순간적으로 출몰하면서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김민기나 김광석은 눈을 감으면 스피커 사이에 스테이지를 만들고 숨소리까지 토해내며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다. 야노스 스타커나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는 현을 긁어내는 소리의 질감이 내 가슴을 타고 내리는 듯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적당한 질감과 사실적인 소리의 구성이다.
^앰프와 스피커의 매칭에서 새롭게 느낀 점은 최고의 궁합을 이뤘을 때는 볼륨을 낮춰도 중고역과 저역의 발란스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각기 출몰과 퇴장을 반복하는 악기들의 소리가 7~8시 볼륨 레벨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 이전까지 볼륨을 한없이 높이고 싶었던 마음이, 하나라도 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느낌이 볼륨단자를 높이는 이유였다면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볼륨이 작아도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제는 남아있었다. 힘이 넘치다보니 드디어 고역에서 쏜다는 느낌과는 다른 약간의 ‘쇠소리’ 같은 느낌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이 즈음 나의 케이블은 국산 가운데 장터를 통해 평가가 좋았던 오릭스사의 실릭스라는 최고급 은도금 선제를 사용했다. 물경 15만원이 넘는 이 케이블은 동선에 은도금을 한 선재로 악기 소리를 더 다양하고 디테일하게 내줬지만 고역에서 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 사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얘기하자 “어설픈 고역에서 최고 주파수대가 잘려버린 결과 고역의 찌꺼기와 같은 것이 남아서 쏘는 느낌으로 귀를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 소리를 여과없이 흘려줘야 쏘는 느낌이 아니라 시원한 고역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분이 제시한 ‘순은선’의 가격은 내가 쓰기에는 너무 비싼 수준이었다. 그래서 오릭스사의 최고급 동선을 주문해서 소리를 연결했다. 고역의 쏘는 느낌을 씻은 듯이 사라졌고, 소리는 두리뭉실 듣기에 너무나 편한 소리로 변했다.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정사장과 안부전화를 하면서 이런 결정을 얘기했다. 정사장은 “내가 자네에게 선을 빌려줘서라도 진짜 소리가 뭔지 알려줘야 했는데… 후회가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그 궁극의 소리가 무언지에 대한 욕심이 다시 발동했다. 소리가 맞지 않으면 케이블을 되돌려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은선케이블에 백금으로 도금하고 나사에서 우주선에 사용한다는 선으로 만든 은케이블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소리가 완성됐다고 판단해 후배를 불러 맥주 한잔을 마시던 때 비즈니스코리아에서 택배로 순은선이 도착했다. 후배와 함께 선에 연결하면서 “만약 이게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궁극의 소리에 가깝다면 어떡할까”라고 되뇌이며 인터선과 스피커케이블을 교체했다.
^놀라운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고음은 시원스레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저역은 땅땅한 처녀의 엉덩이처럼 음악의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조수미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힘든 기색이 없었다. 나오꼬 테라이의 쇼스타코비치 ‘왈츠’를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은 듣는 내 가슴에 눈물을 쏟아내기에 충분한 감흥을 줬다.

^◇새로운 음반과 CD를 만날 때 느끼는 감흥
^음악을 좋아할 때 ‘오디오’를 좋아하는지, ‘소프트웨어(소스)’를 좋아하는 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느 부류의 사람인가.
^지난 2달간의 방황하는 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나를 ‘오디오 파일’이라고 부를 것이다. 끊임없는 바꿈질에 하루라도 장터를 보지 않으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3학년때 대학입학 기념으로 선물받은 스타라우트 전축과 함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판을 처음으로 산 이후 지금까지 LP 500여장과 CD 100여장을 모았다.
^이 가운데 90% 이상을 직접 들었고, 아마도 10장 가운데 3~4장은 10번이상, 그 중에서도 10%는 100번이 넘게 들었을 정도다.
^요즘은 음악을 듣기가 너무나 좋아졌다. LP 소스는 과거보다 풍성해 과거의 명연주 음반을 회현동 지하상가에만 가면 1만원 안팎의 가격에서 구할 수 있다. 동유럽이 붕괴되고 유럽이 이제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면서 우리 수입업자들이 콘테이너로 LP를 수입하고 있는 덕분이다. CD도 가격이 매우 저렴해져 이제 CD로 음반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다.
^10년전 LP 귀한 것 한장에 돈 10만원씩 주고 사던 시절에 비하면 한결 좋아진 셈이다. 또 그 사이에 천재 소리를 듣던 연주자들은 이제 중견 연주자로 발돋움해 ‘명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독일 브릴리언트가 바하 30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155장의 바하 시리즈를 20만원도 안되는 돈에 샀다. 요즘 바하의 합시코드부터 실내악, 오르간 음악을 재미가 너무나 쏠쏠하다. 6개월이면 이 음반을 모두 들을 수 있을 듯 싶다.
^카바세에 판테온이 매칭한 바하의 연주. 아마도 내가 음악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 까 싶다.

****비즈니스코리아 홈페이지는 www.vacuum-audio.com, 전화번호는 401-1881입니다. 이 글은 이 회사를 홍보하기위한 글이 아닙니다. 2개월간 내게 맞는 소리를 찾아 수업료부터 시간까지 너무나 아까운 지불을 했습니다. 비즈니스코리아를 찾는다면 이 방황의 시간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진수 사장을 만나서 그의 해박한 오디오와 음악에 관한 지식을 접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제가 그분의 팬이 된 기념으로 자발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