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그랬다.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할 때가 있다.
요즘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디지털 피아노를 줄 곧 눈팅을 하다가 결국 업라이트 피아노를
사게 됐다. 물론 피아노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초보자다. 늦은 나이인데도 배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저질러 버린 것이지만, 오디오 장치에 투자했던 금액을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다.
괜찮은 오디오 기계는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 단순히 증폭기인데도 말이다. 거기에 CD나
LP값까지 추가되고 소스기계인 플레이어까지 들어가면 상당한 금액이 든다.
그런데, 오디오에 빠진 상태에서는 이 금액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한 개도 아깝지가 않았다. 그래서 수년 아니다 수 십 년 동안 오디오 장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끝이 없는 구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느 순간, 아내의 재봉틀 사건(아내가 1년 동안이나 졸랐다. 난 돈이 아까워
사지 말라고 설득하다 홧김에 사버렸다. 출력트랜스 하나 값만큼을 말이다. 그런데
밤샘 작동법을 익히며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으로
편협한 길가에 나를 발견하곤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로 즐길 수 있는 피아노 구입의 허락을 받고 구입하게 된 것이다.
(옛날 같으면---)
물론, 전문가가 될 수도 되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최소한 코드를 눌러서 간단한
대중가요 한 곡쯤은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면 족하기 때문에 피아노학원에 등록할
필요도 없고 혼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그렇게 결정했다.
근데 솔직히 백 만원 대의 피아노를 살려고 하니 돈이 너무도 아깝더라. 만약 이것을
내가 원하는 오디오를 사려 했다면 한 개도 아깝지가 않았을 텐데, 참말로 그랬다.
더욱이 오디오 자작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부품에 전혀 주저함 없이 즉시
지불하곤 한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랜스 하나가 수 백 만원하는 것을
못 사서 안달난 적도 있었다. 중고 피아노 두 대 이상 살 수 있는 돈을 트랜스 하나에
지불하지 못해서 말이다.
거기에 저항 콘덴서 뭐 이런 것은 그래도 적은 것이고 전선 줄(인터선, SPK선 하나가
수 백 만원하는 것을 보고도 당연히 고가여야 좋은 소리가 난다며 스스로 자위하며
맨날 눈팅으로 하루를 소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어리석은 짓을 재봉틀 사건으로 드디어 깨버리고 진짜 다른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오디오 감상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제 진짜 더이상 오디오 기계를 사는데
돈을 쓰지 않고, 즉 오디오 구입으로 포기해야
하는 다른 것에 대한 가치를 많이 생각하며 ---.
해서 취미의 수준이라면 너무 지나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이 것 저 것도 봐가며
즐기려 한다. 해서 피아노는 아들 놈 집사람까지 함께 (아직 몸이 접근하려 하지 않아서)
몇 주(?) 후부터 배워보려 한다. 그때까진 오디오를 좀 더 생각(?)하믄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