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제나 단순하고 순수하고 소박한 인품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미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도 제가 싫어하는 성향은 이와 반대되는 것들이겠지요. 치장, 허영, 허위의식, 거드름 등. 본래 모든 역겨움은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스스로를 더 과대평가하는데서 나옵니다. 누군가가 “근엄이란 정신적 결여를 육체적으로 때우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제 인생살이의 경험상 매우 정확하고 냉정한 야유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거드름을 많이 피우며 온갖 근엄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대체로는 머리가 둔하고 인간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사람들이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겸허와 내적 자신감은 같은 것입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이 솔직할 수 있고 또 그 솔직함은 겸허로 이르게 되니까요.
저는 누군가가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물으니까 소설 작가들이 자기 감상을 끝도 없이 유치하게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것이 역겹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어설픈 문학가들은 간결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이론상 가장 이상적인 문장은 명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형용사와 부사구들을 이리저리 늘어놓으며 온갖 끈적거림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깨나 쓴다는 작가들은 상투적인 감상들을 늘어놓으며 독자를 진저리나게 합니다. 문학이 죽었다고 얘기합니다만 요새 우리나라에는 문학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설들은 한갓 수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학이 죽은게 아니라 문학가가 죽은 거지요.
스피커 역사에 있어서 탄노이의 성공은 간결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탄노이는 기술적으로 대역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그 구성을 최대한 간소하게 가져갔으니까요. 물론 이것 외에도 탄노이의 여러 장점이 있지만 일단 간결하다는 점에서 탄노이는 기술적으로 탁월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지껄이는 것보다는 지껄일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껄일 만한 사유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조용하고 간결합니다. 경박하고 얇은 사람들이 항상 시끄럽습니다. 망치로 징을 두드리듯이 시끄럽습니다. 자기 치장과 소란스러움. 지겹습니다. 물론 풀레인지가 더 간결합니다만 이 경우에는 지나치게 대역을 희생시키게 됩니다. 1만 2천 헤르쯔 이상은 안 나옵니다. 탄노이 이후로 많은 스피커 제조 회사들이 탄노이의 기술을 모방했습니다만 탄노이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음악성 있는 소리”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여기에서 탄노이는 특유의 품위와 호방함으로 여타 스피커와는 차원을 달리했습니다. 탄노이는 단순하고 순수하고 소박합니다. 그리고 어떤 치장이나 소란스러움이 없습니다. 허심탄회하고 시원스럽지요.
저는 일군의 오디오 애호가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 특히 성악 재생에 있어-어떤 고급 스피커를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내보냈습니다. 매우 훌륭한 기기였지만 탄노이의 호방함이 없었습니다. 소리가 너무 복잡하다보니까 어린애가 칭얼거리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마누라가 바가지 긁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제 취향은 복잡한 것 못 참는 것이니까요. ‘간결이 지혜의 요체’이고 ‘존재는 이유 없이 증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이 진공관에도 적용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캐소드나 그리드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소리가 더 조잡해지고 거칠어지고 왜곡됩니다. 사실 저는 이 사실을 말하기를 여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취향일 뿐입니다. 저는 어쩌면 단순히 제 취향과 어긋난다고 해서 방열관이나 다극관에 대해 부정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게 치부해 주십시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초단과 드라이브관으로 3극 직렬관을 사용하게 되면 많은 분이 제 견해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Aa를 초단으로 Ca를 드라이브 관으로 출력관 Ed를 드라이브 했습니다. 이 앰프는 원래 텔레풍켄의 Ad1 SE 였습니다만 제 호기심이 오리지날 빈티지 앰프를 날려 버린 것입니다. 제게 오리지낼리티는 부차적인 의미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소리니까요.
그런데 이 앰프를 처음 듣고는 실망 했습니다. 좀 심심했습니다. 소리가 풍부한 맛이 없었습니다. 약간은 초라하고 삭막했습니다. 오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연주회장에 가면 어딘가 실황이 더 초라하고 삭막하고 힘이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지요. 저는 씁쓸한 헛웃음을 날렸습니다. “또 기백만 원이 날아갔구나. 이 따위 짓은 그만 해야겠다. 실험정신이 왕성한 것은 좋지만 집안 거덜 나겠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제 Ed앰프는 여전히 그 초라한 소리를 계속내고 있었고.
이상한 노릇입니다. 그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한 겁니다. 사실 엔지니어도 이러한 구성에 반대 했었습니다. 직렬관 드라이브는 댐핑 팩터가 너무 작아서 힘이 없고 저역이 안 나온다는 이유였지요. 저는 제 고집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의 말도 좀 듣고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이 초라한 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초라함이 소박함으로 바뀌고 약한 소리는 진실한 소리가 되고 삭막함은 간소함이 된 것입니다. 제가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직렬관 드라이브가 원래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일까요? 괜찮은 여자는 첫 눈에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 한가락 했었는데, 첫 눈에 들어올 정도로 화려한 여자는 곧 싫증납니다. 첫 눈에는 마치 안개에 쌓인 듯이 애매하고 초라한 듯한 여자가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적인 여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 여자가 지성적이라면 이 매력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해 갑니다. 소박하고 순결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니 이제 성적 매력까지도 생겨나는 것이지요. 사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두세 번째 눈에는 싫증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3박4일이 아닙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여자를 골라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부디 이 왕년의 바람꾼의 충고를 새기기 바랍니다.
저는 홀린 듯이 이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듣고 있었습니다. 들을수록 소리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LCR 포노단을 사용하는데 증폭관이 모두 3극 직렬관 (101F, HL2)입니다. 그리고 제 라인단은 WE49B인데 역시 264A라는 3극 직렬관을 증폭관으로 채용한 기기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3극 직렬관으로 된 시스템인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앰프를 클랑필름의 RE604 SE로 바꿔들었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실망 했습니다. 이 앰프는 REN904로 드라이브 한 것인데 그 사납고 왜곡되고 거칠고 해상력이 떨어지는 소리에 저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3극 직렬관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해상력과 소리의 직접성에 있습니다. 저는 어떤 얼치기 오디오 애호가가 “지나치게 해상도가 높으면 소리가 사나워진다”고 주장하는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웃음조차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상도가 높으면 소리는 부드러워집니다. 이것은 마치 펜싱과 도끼의 차이와 같습니다. 펜싱은 정교하고 날카롭고 빠른 운동입니다만 오히려 그 동작은 우아하고 부드럽고 선명합니다. 도끼를 휘둘러 대면 그 동작은 거칠고 사납습니다. 본래 정확하고 정교한 언어는 글을 부드럽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언어는 글을 거칠고 우악스럽게 만듭니다. 정교한 사격은 총알 하나로 토끼를 잡을 수 있지만 정교하지 않을 경우 토끼를 잡으려면 마구잡이로 대포를 쏘아대야 합니다.
정교함은 부드러움을 부릅니다. 우리는 보통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차갑고 냉정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가까스로 학교 공부를 잘한 겉똑똑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지적인 사람들은 겸허하고 부드럽습니다. 날카로운 지성이 오히려 심정적 온유함을 부르는 것이지요. 머리가 좋고 사유가 선명한 사람들은 인간의 운명적 결함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한 스스로도 그러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자기 인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온유하고 관용적입니다. 우리는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 사람들은 사실 영어, 수학이나 잘한 사람들이지 지성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초일류 대학을 나온 어떤 사람들이 천하에 둘도 없는 멍청이 들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확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3극 직렬관은 해상도가 높기 때문에 그리고 소리에 직접 닿기 때문에 오히려 부드럽습니다. 제가 제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와 RE604 방렬관 드라이브 앰프와의 비교에서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방렬관 드라이브는 어딘가 우악스럽고 사납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박진감과 선명함을 느끼는가 본데 이것은 경험부족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경험이나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서 종종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근세의 인식론적 연구는 “우리 경험을 벗어나는 문제에 대하여는 어떤 추론이나 언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쉽게 말합니다. 그리고 우겨댑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이깁니다.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마치 들어본 것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보는 것이 믿는 것”이상으로“듣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듣다가 RE604앰프를 들으니 마치 딴 집 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해상도가 떨어지니 커튼 뒤에서 나오는 것처럼 멍청한 소리가 나옵니다. 저는 이번에는 방렬과 (12AX7)으로 만든 다른 LCR 포노단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식자우환”입니다. 이제 도저히 들어주지 못할 소리가 나옵니다. 마치 도끼로 주방 접시들을 부수는 소리라고나 할까요. 오디오와 관련한 제 운명이 또 다른 전기를 맞은 것입니다. 직렬관 드라이브가 제 운명이 된 것이지요.
직렬관 드라이브에는 저음이 안 나온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레 짐작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방렬관 드라이브 앰프에서 나오는 그 과장되고 부푼 솜사탕 저음(cotton sugar bass)을 진짜 저음으로 착각하고 있거나요. 직렬관 드라이브의 저음은 오히려 선명하고 잘 분화된 저음입니다. 좀 더 연주회장에 가까운 소리라고나 할까요. 실연과 상관없는 그 과장된 저음에서 오히려 오디오적 쾌감을 느낀다면 계속 그것을 즐기면 됩니다. 단지 소박하고 진실한 저음을 “없는 저음”이라고만 말하지 않으면 됩니다.
저는 사실 이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많은 반대와 회의를 무릅쓰고 주문했습니다. 우선 모든 엔지니어들이 회의적입니다. 저음이 안 나올 것이다, 허밍 사운드가 심할 것이다, 플러터 노이즈가 심할 것이다 등등. 그들은 말합니다. “AF7이나 310A 한방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냐”고. 그러나 “되는 것”은 오디오에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디오는 단지 기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로망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희망하는 바의 좋은 소리를 향한 나름의 노력을 35년간 경주해 왔습니다. 제게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럴 듯한”소리가 난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 꿈이니까요. 물론 저는 제작자의 고충을 이해합니다. 또 이해해야 합니다. 저 자신 오랜 세월의 오도팔 생활 중에 온갖 풍상을 다 겪었는데 왜 그들을 이해 못하겠습니까? 3극 직렬의 드라이브 관은 우선 고전압을 요구합니다. 스윙시키기가 어렵지요. 그리고 히터와 캐소드가 하나이기 때문에 플러터 노이즈가 나기 쉽고, 증폭률이 낮고, 화이트 노이즈나 외부 유입 험에도 몹시 취약합니다. 이 모든 사항이 엔지니어들의 제작 능력의 극단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기피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전원부를 신호부와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히터 트랜스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외부 유입 험에 대한 모든 대비를 해야 합니다.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기 때문에 시도해 볼 만하다고 말하겠습니다. 누구나 하는 것을 가까스로 하면서 스스로가 탁월한 엔지니어라고 자부하는 것은 가소로운 자기도취입니다. 저는 이러한 자기 망상에 빠진 엔지니어 몇 명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실력 있는 오디오 엔지니어라고 자랑하고 싶다면 그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만약 험 없고 말끔한 3극 직렬관 드라이브의 파워 앰프를 어떤 엔지니어가 만든다면 저는 기꺼이 그 사람을 존중하고 칭찬하겠습니다. 그러나 안일한 세계에 잠겨있을 양이라면 자부심은 강아지에게나 양도해야 합니다. 강아지는 그 애교와 충성으로 돈 들이는 주인님을 만족스럽게 하니까요.
어떤 분들은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많은 돈이 드는 것 아니냐. 나도 돈만 있다면 시도하겠다.” 그러나 직렬관 드라이브관이 절대 비싸지 않습니다. 310A나 ML4나 REN904보다 비싸지 않습니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없으니까요. Valvo Aa의 경우 신품이라고 해도 한 조에 20만원이고 philips Ca 관은 30만원, ML4신품은 한 조에 30만원 REN904는 4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용의 문제는 크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 탄노이 애호가들에게는 이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탄노이 스피커의 구동에 있어서는 저역을 얼마큼 다스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탄노이는 확실히 저역에 있어 약점을 보입니다. 아차하면 벙벙거리며 멍청한 소리를 내니까요. 그러나 3극 직렬관 드라이브는 저역의 분해도가 높습니다. 그러니 드라이브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는 금방 드러납니다. 제가 알기로 어떤 사람들은 탄노이를 울리기에는 Decca의 PX4나 PX25의 앰프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천 만원 정도 되는 앰프일 겁니다. 저 같으면 그 반의 돈을 들여 PX4나 PX25 싱글을 101F와 102D로 드라이브 하겠습니다. 장전축에 붙어 있는 그 부품스러운 앰프가 그 가격이라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 트랜스는 Kenyon사의 것입니다. 좀 그렇지요. 저도 한 조 가지고 있습니다만 고민입니다. 그 거칠고 수선스러운 소리를 듣자면 한 숨이 다 나옵니다.
오늘은 이만 지껄이겠습니다. 다음에 마음 내키면 제 Ed 앰프 사진 올려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저는 누군가가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물으니까 소설 작가들이 자기 감상을 끝도 없이 유치하게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것이 역겹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어설픈 문학가들은 간결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이론상 가장 이상적인 문장은 명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형용사와 부사구들을 이리저리 늘어놓으며 온갖 끈적거림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깨나 쓴다는 작가들은 상투적인 감상들을 늘어놓으며 독자를 진저리나게 합니다. 문학이 죽었다고 얘기합니다만 요새 우리나라에는 문학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설들은 한갓 수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학이 죽은게 아니라 문학가가 죽은 거지요.
스피커 역사에 있어서 탄노이의 성공은 간결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탄노이는 기술적으로 대역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그 구성을 최대한 간소하게 가져갔으니까요. 물론 이것 외에도 탄노이의 여러 장점이 있지만 일단 간결하다는 점에서 탄노이는 기술적으로 탁월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지껄이는 것보다는 지껄일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껄일 만한 사유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조용하고 간결합니다. 경박하고 얇은 사람들이 항상 시끄럽습니다. 망치로 징을 두드리듯이 시끄럽습니다. 자기 치장과 소란스러움. 지겹습니다. 물론 풀레인지가 더 간결합니다만 이 경우에는 지나치게 대역을 희생시키게 됩니다. 1만 2천 헤르쯔 이상은 안 나옵니다. 탄노이 이후로 많은 스피커 제조 회사들이 탄노이의 기술을 모방했습니다만 탄노이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음악성 있는 소리”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여기에서 탄노이는 특유의 품위와 호방함으로 여타 스피커와는 차원을 달리했습니다. 탄노이는 단순하고 순수하고 소박합니다. 그리고 어떤 치장이나 소란스러움이 없습니다. 허심탄회하고 시원스럽지요.
저는 일군의 오디오 애호가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 특히 성악 재생에 있어-어떤 고급 스피커를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내보냈습니다. 매우 훌륭한 기기였지만 탄노이의 호방함이 없었습니다. 소리가 너무 복잡하다보니까 어린애가 칭얼거리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마누라가 바가지 긁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제 취향은 복잡한 것 못 참는 것이니까요. ‘간결이 지혜의 요체’이고 ‘존재는 이유 없이 증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이 진공관에도 적용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캐소드나 그리드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소리가 더 조잡해지고 거칠어지고 왜곡됩니다. 사실 저는 이 사실을 말하기를 여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취향일 뿐입니다. 저는 어쩌면 단순히 제 취향과 어긋난다고 해서 방열관이나 다극관에 대해 부정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게 치부해 주십시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초단과 드라이브관으로 3극 직렬관을 사용하게 되면 많은 분이 제 견해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Aa를 초단으로 Ca를 드라이브 관으로 출력관 Ed를 드라이브 했습니다. 이 앰프는 원래 텔레풍켄의 Ad1 SE 였습니다만 제 호기심이 오리지날 빈티지 앰프를 날려 버린 것입니다. 제게 오리지낼리티는 부차적인 의미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소리니까요.
그런데 이 앰프를 처음 듣고는 실망 했습니다. 좀 심심했습니다. 소리가 풍부한 맛이 없었습니다. 약간은 초라하고 삭막했습니다. 오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연주회장에 가면 어딘가 실황이 더 초라하고 삭막하고 힘이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지요. 저는 씁쓸한 헛웃음을 날렸습니다. “또 기백만 원이 날아갔구나. 이 따위 짓은 그만 해야겠다. 실험정신이 왕성한 것은 좋지만 집안 거덜 나겠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제 Ed앰프는 여전히 그 초라한 소리를 계속내고 있었고.
이상한 노릇입니다. 그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한 겁니다. 사실 엔지니어도 이러한 구성에 반대 했었습니다. 직렬관 드라이브는 댐핑 팩터가 너무 작아서 힘이 없고 저역이 안 나온다는 이유였지요. 저는 제 고집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의 말도 좀 듣고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이 초라한 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초라함이 소박함으로 바뀌고 약한 소리는 진실한 소리가 되고 삭막함은 간소함이 된 것입니다. 제가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직렬관 드라이브가 원래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일까요? 괜찮은 여자는 첫 눈에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 한가락 했었는데, 첫 눈에 들어올 정도로 화려한 여자는 곧 싫증납니다. 첫 눈에는 마치 안개에 쌓인 듯이 애매하고 초라한 듯한 여자가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적인 여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 여자가 지성적이라면 이 매력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해 갑니다. 소박하고 순결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니 이제 성적 매력까지도 생겨나는 것이지요. 사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두세 번째 눈에는 싫증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3박4일이 아닙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여자를 골라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부디 이 왕년의 바람꾼의 충고를 새기기 바랍니다.
저는 홀린 듯이 이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듣고 있었습니다. 들을수록 소리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LCR 포노단을 사용하는데 증폭관이 모두 3극 직렬관 (101F, HL2)입니다. 그리고 제 라인단은 WE49B인데 역시 264A라는 3극 직렬관을 증폭관으로 채용한 기기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3극 직렬관으로 된 시스템인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앰프를 클랑필름의 RE604 SE로 바꿔들었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실망 했습니다. 이 앰프는 REN904로 드라이브 한 것인데 그 사납고 왜곡되고 거칠고 해상력이 떨어지는 소리에 저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3극 직렬관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해상력과 소리의 직접성에 있습니다. 저는 어떤 얼치기 오디오 애호가가 “지나치게 해상도가 높으면 소리가 사나워진다”고 주장하는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웃음조차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상도가 높으면 소리는 부드러워집니다. 이것은 마치 펜싱과 도끼의 차이와 같습니다. 펜싱은 정교하고 날카롭고 빠른 운동입니다만 오히려 그 동작은 우아하고 부드럽고 선명합니다. 도끼를 휘둘러 대면 그 동작은 거칠고 사납습니다. 본래 정확하고 정교한 언어는 글을 부드럽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언어는 글을 거칠고 우악스럽게 만듭니다. 정교한 사격은 총알 하나로 토끼를 잡을 수 있지만 정교하지 않을 경우 토끼를 잡으려면 마구잡이로 대포를 쏘아대야 합니다.
정교함은 부드러움을 부릅니다. 우리는 보통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차갑고 냉정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가까스로 학교 공부를 잘한 겉똑똑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지적인 사람들은 겸허하고 부드럽습니다. 날카로운 지성이 오히려 심정적 온유함을 부르는 것이지요. 머리가 좋고 사유가 선명한 사람들은 인간의 운명적 결함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한 스스로도 그러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자기 인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온유하고 관용적입니다. 우리는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 사람들은 사실 영어, 수학이나 잘한 사람들이지 지성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초일류 대학을 나온 어떤 사람들이 천하에 둘도 없는 멍청이 들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확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3극 직렬관은 해상도가 높기 때문에 그리고 소리에 직접 닿기 때문에 오히려 부드럽습니다. 제가 제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와 RE604 방렬관 드라이브 앰프와의 비교에서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방렬관 드라이브는 어딘가 우악스럽고 사납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박진감과 선명함을 느끼는가 본데 이것은 경험부족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경험이나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서 종종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근세의 인식론적 연구는 “우리 경험을 벗어나는 문제에 대하여는 어떤 추론이나 언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쉽게 말합니다. 그리고 우겨댑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이깁니다.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마치 들어본 것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보는 것이 믿는 것”이상으로“듣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듣다가 RE604앰프를 들으니 마치 딴 집 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해상도가 떨어지니 커튼 뒤에서 나오는 것처럼 멍청한 소리가 나옵니다. 저는 이번에는 방렬과 (12AX7)으로 만든 다른 LCR 포노단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식자우환”입니다. 이제 도저히 들어주지 못할 소리가 나옵니다. 마치 도끼로 주방 접시들을 부수는 소리라고나 할까요. 오디오와 관련한 제 운명이 또 다른 전기를 맞은 것입니다. 직렬관 드라이브가 제 운명이 된 것이지요.
직렬관 드라이브에는 저음이 안 나온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레 짐작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방렬관 드라이브 앰프에서 나오는 그 과장되고 부푼 솜사탕 저음(cotton sugar bass)을 진짜 저음으로 착각하고 있거나요. 직렬관 드라이브의 저음은 오히려 선명하고 잘 분화된 저음입니다. 좀 더 연주회장에 가까운 소리라고나 할까요. 실연과 상관없는 그 과장된 저음에서 오히려 오디오적 쾌감을 느낀다면 계속 그것을 즐기면 됩니다. 단지 소박하고 진실한 저음을 “없는 저음”이라고만 말하지 않으면 됩니다.
저는 사실 이 직렬관 드라이브 앰프를 많은 반대와 회의를 무릅쓰고 주문했습니다. 우선 모든 엔지니어들이 회의적입니다. 저음이 안 나올 것이다, 허밍 사운드가 심할 것이다, 플러터 노이즈가 심할 것이다 등등. 그들은 말합니다. “AF7이나 310A 한방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냐”고. 그러나 “되는 것”은 오디오에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디오는 단지 기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로망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희망하는 바의 좋은 소리를 향한 나름의 노력을 35년간 경주해 왔습니다. 제게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럴 듯한”소리가 난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 꿈이니까요. 물론 저는 제작자의 고충을 이해합니다. 또 이해해야 합니다. 저 자신 오랜 세월의 오도팔 생활 중에 온갖 풍상을 다 겪었는데 왜 그들을 이해 못하겠습니까? 3극 직렬의 드라이브 관은 우선 고전압을 요구합니다. 스윙시키기가 어렵지요. 그리고 히터와 캐소드가 하나이기 때문에 플러터 노이즈가 나기 쉽고, 증폭률이 낮고, 화이트 노이즈나 외부 유입 험에도 몹시 취약합니다. 이 모든 사항이 엔지니어들의 제작 능력의 극단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기피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전원부를 신호부와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히터 트랜스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외부 유입 험에 대한 모든 대비를 해야 합니다.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기 때문에 시도해 볼 만하다고 말하겠습니다. 누구나 하는 것을 가까스로 하면서 스스로가 탁월한 엔지니어라고 자부하는 것은 가소로운 자기도취입니다. 저는 이러한 자기 망상에 빠진 엔지니어 몇 명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실력 있는 오디오 엔지니어라고 자랑하고 싶다면 그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만약 험 없고 말끔한 3극 직렬관 드라이브의 파워 앰프를 어떤 엔지니어가 만든다면 저는 기꺼이 그 사람을 존중하고 칭찬하겠습니다. 그러나 안일한 세계에 잠겨있을 양이라면 자부심은 강아지에게나 양도해야 합니다. 강아지는 그 애교와 충성으로 돈 들이는 주인님을 만족스럽게 하니까요.
어떤 분들은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많은 돈이 드는 것 아니냐. 나도 돈만 있다면 시도하겠다.” 그러나 직렬관 드라이브관이 절대 비싸지 않습니다. 310A나 ML4나 REN904보다 비싸지 않습니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없으니까요. Valvo Aa의 경우 신품이라고 해도 한 조에 20만원이고 philips Ca 관은 30만원, ML4신품은 한 조에 30만원 REN904는 4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용의 문제는 크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 탄노이 애호가들에게는 이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탄노이 스피커의 구동에 있어서는 저역을 얼마큼 다스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탄노이는 확실히 저역에 있어 약점을 보입니다. 아차하면 벙벙거리며 멍청한 소리를 내니까요. 그러나 3극 직렬관 드라이브는 저역의 분해도가 높습니다. 그러니 드라이브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는 금방 드러납니다. 제가 알기로 어떤 사람들은 탄노이를 울리기에는 Decca의 PX4나 PX25의 앰프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천 만원 정도 되는 앰프일 겁니다. 저 같으면 그 반의 돈을 들여 PX4나 PX25 싱글을 101F와 102D로 드라이브 하겠습니다. 장전축에 붙어 있는 그 부품스러운 앰프가 그 가격이라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 트랜스는 Kenyon사의 것입니다. 좀 그렇지요. 저도 한 조 가지고 있습니다만 고민입니다. 그 거칠고 수선스러운 소리를 듣자면 한 숨이 다 나옵니다.
오늘은 이만 지껄이겠습니다. 다음에 마음 내키면 제 Ed 앰프 사진 올려 드리겠습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