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이스키 또래의 늙은 노신사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찾아왔다. 육중하고 거대한 몸매, 둥글둥글
원만구족한 인상이 평생을 부족함 모르고 모든 면에서 넉넉히 살아온 분위기를 풍겼다.
가이스키는 노신사를 기술자에게 소개했다.
"이 인간은 보리스스베틀라니쓰바로프라는 인간인데 지인들 사이에선 간단하게 쓰바라고 줄여서 부르지.
내가 지인이라고 할만한 자가 거의 없는데 그 중 하나지. 내 친구, 쓰바라네."
노신사, 쓰바는 둥글고 커다란 눈망울로 기술자를 훑더니 대뜸 말했다.
"자네가 내 친구 개스키를 오디오에 푹 빠지게 만든 그 친구로군."
가이스키기 틈없이 끼어들었다.
"아직까지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는 자네가 과연 내 친구가 맞긴 맞는가?"
"내가 뭐? 개스키를 개스키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따라해 봐. 가."
"그래 가."
"이."
"이."
"스."
"스."
관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않아 보이는 두 노인이 한 자씩 주고받는 건 일종의 진풍경이었다.
"키."
"키."
"가이스키."
"개스키."
노인들이 잠시 토닥토닥 했다.
쓰바는 음악을 청했다.
"이 친구는 음악을 들을만한 친구가 아니니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거나 틀어주면 돼."
가이스키가 기술자에게 말했다. 쓰바가 느물거렸다.
"개스키 자넨 아직 나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군. 내가 왔으면 뭔가 무시무시한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마땅한 게 아닌가?"
"자네는 평생 무시무시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어."
쓰바의 얼굴에 자신있는 미소가 어렸다.
"일단 자네의 소리를 들어보기나 하자구."
가이스키는 쓰바의 자신감을 비웃을 생각조차 없는 듯 했다.
낮은 첼로 소리가 천천히 기어나왔다. 피콜로와 클라리넷이 노래부르듯 뒤를 따랐다. 그러더니 이내 장중한 관현악이
일어났다.
가이스키가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관현악곡으로 지휘했던 음반이었다.
음반을 재생시킨 건 기술자였다. 고른 건지 손에 걸린대로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가이스키는 낮게 혼자 중얼거렸다.
"개샠..."
가이스키는 흔들의자에 깊이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쓰바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기색이었지만 자주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뭐 대단한 소리라도 얻은 줄 알았더니 겨우 이거였군. 이거야말로 그냥 오디오소리일 뿐이지 않은가."
결국 쓰바의 입이 열렸고 가이스키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이런 소린 지구촌 십만팔천리 방방곡곡 어딜 가나 들을 수 있는 소리 아냐."
"오, 말 잘했네. 그게 좋은 소리인 거야, 이 친구야."
"내 말은 그저그런 오디오 소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야. 진정한 오디오를 만났느니 어쨌느니 설레발칠 게
없는 소리란 거지."
가이스키가 흐흥, 소리내어 웃었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니가 소리를 아냐, 쓰바?"
쓰바가 지지 않고 흐흥 느물거렸다.
"최소한 이것 보다 더 좋은 소린 알지."
"네가?"
"그래, 내가."
"들려 줘."
쓰바가 씨익 웃었다.
"그럴 줄 알고 함께 데리고 왔지."
쓰바가 밖을 향해 박수를 쨕쨕, 두 번 쳤다. 쓰바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거대한 나무나팔 모양,
큼지막한 판때기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저것들이 다 뭐야?"
"개스키 자네 혹시 이스턴일렉트릭이라고 들어봤나?"
"들어봤지. 내 애들이 그걸 구해오고 싶어했는데 일부분밖에 안된다고 포기했던 것 같은데...제대로된 물건도 드물다며?"
"돈을 덜 쓴 거지. 이스턴일렉트릭이던 웨스턴일렉트릭이든 돈만 쓰면 다 구해."
"자네가 다 구했나?"
쓰바가 히죽 웃었다.
"나 돈 많잖아. 따지고 들면 내가 자네 보다 한 천 배는 많을걸."
"알아. 자네가 돈돼지인거."
"하지만 노력했어. 자네가 오디오에 집착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부터 나도 오디오공부를 했거든. 결국 끝이자 궁극은
이스턴일렉트릭 풀 셋트더라구. 바로 직행했지. 궁극이자 끝으로. 어렵더군. 아마 내게 가장 어려웠던 일로 기억에 남을 거야."
가이스키는 무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자랑하러 왔나?"
"아니, 사랑스런 내 친구를 깨우쳐주러 왔지. 소리를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말하게. 내가 선물하지."
"그토록 어렵게 구한 궁극과 끝을?"
"난 또 구하면 되니까. 나 돈 많잖아."
가이스키는 눈을 움직여 쓰바의 사람들이 이스턴일렉트릭이란 시스템을 설치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기술자도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서 흥미로운 기색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가이스키가 기술자에게 물었다.
"그것들 좋은 거 맞나?"
기술자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오디오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꾸고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이지요."
"자네 생각을 묻는 거야."
"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오디오 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꿈꾸고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라고."
"그게 뭐야?"
"그렇다고요. 사람들이 다 그런다고 저도 그래야 합니까? 그런게 제겐 오히려 쳐다보지 않는 충분한 이유가 될 뿐입니다."
쓰바의 눈이 비우호적인 빛을 담고 기술자를 향했다.
"위험한 친구로군."
가이스키가 보탰다.
"처음엔 재수없어 보여. 하지만 그럴만한 근거를 항상 갖고 있는 친구지. 자네도 곧 알게 될 거야."
설치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쓰바의 사람들은 설치에 익숙해 보였지만 이스턴일렉트릭의 물건들은 거대하고 대단했으며
워낙 조심조심 다루고 있었다.
"저 놈의 것은 언제 소리를 내는 건가? 이러다가 늙어 죽겠군."
가이스키는 지루해 했다. 쓰바가 중요한 걸 강조해 말하듯 검지를 세워보였다.
"곧 날 거야. 그 사이 늙어죽진 않을 테니 그런 걱정말라구. 단, 소리가 날 때 조심해. 충격받아 죽을 수 있으니까."
쓰바가 기술자에게 말했다.
"준비가 다 되면 지금 나오는 이 음악을 다시 들어보자구. 그래야 비교가 되지. 적나라하게 말이야."
기술자는 쓰바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도 한참만에 이스턴일렉트릭 시스템으로 다시 보리스 고두노프가 연주되었다.
가이스키가 움찔했다. 잔뜩 가이스키를 의식하던 쓰바가 만면에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죽이지?"
가이스키는 대꾸하지 않고 이스턴일렉트릭 시스템을 노려보았다. 거기서 나는 소리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디오가 우리들 젊었을 때, 그러니까 193,40년대에 이미 끝을 보았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나? 그게 바로 저 이스턴일렉트릭
시스템의 전성기 시절이며, 그 뒤에 나온 소리들은 죄다 저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생긴 거야. 자넨 지금 내 덕분에
궁극과 천상의 소릴 듣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안하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말이야, 복도 지지리도 많은 친구 같으니라구."
쓰바는 신이 난 것 같았다.
"원음이 따로 있나? 저게 원음이지. 아니, 원음 보다 나아. 세상에, 평생 실연을 지휘해온 자네가 실연을 뛰어넘은 오디오
소리를 만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후회되지 않아? 골 아프게 오케스트라 조율하고 가르치고 지휘하고 그게 다 허송세월이었던
것 같지 않아? 이렇게 이스턴일렉트릭 시스템 한 방이면 다 끝나는 건데 말이야, 핫핫핫..."
가이스키가 묵묵히 늙은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만."
소리가 중단되었다.
"그만 듣지. 자넨 어서 저걸 거두어서 돌아가게."
쓰바가 펄쩍 뛰었다.
"지금 뭐라고 그런겨? 말 다한겨?"
"고향 사투리 쓰지말고."
가이스키의 늙은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
"과연 대단한...정말 특별한 소리야. 마치 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저 거대한 아가리들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마력과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듣기 힘들군."
가이스키는 눈을 빛냈다.
"오디오는 결코 실제 소리를 낼 수 없어. 실제의 소리를 기준에 두면 왜곡에 변형에 지나지 않는 거야. 자네가 원음이니 뭐니
했다가 원음을 뛰어넘었다고 했는데, 그 또한 왜곡과 변형의 다른 말에 불과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소린 정말 지독하군.
가장 완벽한 변형에 왜곡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오히려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소리 보다 더 듣기 싫어지는 소리야."
"우와, 이 친구 억지 보소."
"소리는 파문과 같은 거야. 소리의 시작이 있고 그 뒤에 공간을 타면서 만들어지는 2차 3차의 소리가 뒤따르지. 그런데
저 소린 시작에 너무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어. 그 소리의 시작만을 놓고 보면 자네 말대로 더 이상의 소리가 있을 수 없을 거야.
질박하고 두툼하고 마치 바로 앞에서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듯 할 정도니까. 그런데 그 덕에 2차 3차의 소리엔 여유가 부족해.
뭐 1차 소리가 워낙 대단한 덕에 그걸 눈치챌만한 사람은 많지 않겠군. 쓰바 자네의 말은 과장이 아니야. 어서 가져가서 궁극과
끝의 소릴 마음껏 즐기게."
쓰바는 말을 잃어버린 듯 넋나간 얼굴로 가이스키를 바라보기만 했다.
기술자가 끼어들었다.
"영감의 말씀에 좀 보태겠습니다."
기술자의 눈길이 쓰바의 얼굴로 옮겨졌다.
"대개의 오디오는 소리의 색깔을 표현하기에 급급하지요. 비하면 이스턴일렉트릭의 소리는 색을 넘어 빛의 경지에 이른 엄청난
성과라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의 유일하다고 해야 하나. 빛과 광채가 나는 그 소린 진정 압도적이고 황홀하지요. 그러나
압도적이고 황홀한 걸 길게 견뎌낼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이 가장 황홀하고 그 황홀함에 압도당하는 순간은 오직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한 몸이 되는 순간 뿐인데, 그게 잠깐인 뿐인 것도 아마 인간의 그런 특성 때문일 겁니다. 24시간 그 순간과 같은 상태라면
인간의 수명은 하루가 안될 겁니다. 저도 가이스키 영감의 지적처럼 이스턴일렉트릭의 소린 어느 한 부분에서 도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리와 음악을 듣는 데에 방해를 느낍니다. 하지만 잠깐 즐기기엔 어르신의 말씀처럼 궁극과 끝에
이른 소리라고 해도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이것들이 무슨 궤변을 지껄이는 거야...내가 저걸 모으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을 들였는데..."
쓰바가 넋나간 듯 중얼거렸다.
"이봐, 친구. 자네가 뭘 오해한 것 같은데 말이야...."
가이스키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오랜 친구를 위로하는 듯한 말투였다.
"오디오로는 결코 실제 소릴 낼 수 없어. 생각해보게, 저 진공관과 트랜스들을 통해, 저 커다란 우퍼와 드라이버 등의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가 어찌 바이올린, 피아노, 여러 타악기들은 물론 사람의 성대와 목에서 나오는 소릴 그대로 낼 수 있겠는가.
단지 비슷하게 흉내를 낼 뿐인 거야. 저기서 원음이니 뭐니 하는 타령을 하는 건 곤란해."
가이스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저기서 실제 소릴 원했겠는가. 다만 옛 영상을 돌려보듯 지난 날의 나를 내가 지휘했던
소리들을 통해 돌이켜볼 수 있을 정도면 되어도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지. 눈이 아닌 귀로 말이야."
가이스키는 기술자와 자기의 오디오들을 가리켰다.
"저 친구와 저 친구를 닮은 저 오디오들을 보게. 양쪽 다 참 보잘 것 없지. 그러나 저기선 지휘를 하는 내가 보이고
내 연주자들이 보이고 그때의 내 감정과 생각이 살아나고 연주자들의 표정과 몸짓, 그들의 연주가 기억난다니까."
가이스키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처음엔 안 그랬지. 그 가능성만 느꼈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거야. 그러면서 나도 깨닫는 바가
있었네."
가이스키는 오랜 친구 쓰바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바탕이 되어 있었다는 것. 저 친구가 이미 그런 바탕을 갖고 있었고 그렇게 준비를 차곡차곡 했으며 그렇게 진행시킨 거야.
그 바탕은 저 친구가 만든 저 오디오에도 그대로 깃들었어. 나는 옆에서 의견을 내고 거들기만 했지. 결국 바탕에서 이미
결정된 거야."
잠시 헛기침.
"이스턴일렉트릭에 대한 건 사실 나도 책자로 접한 적이 있지. 그들은 최고를 추구했고 오직 자기들만이 최고라고
확신했던 모양이더군. 그게 아까같은 소리로 나타났으니 그들은 목적을 이뤘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지나친 독점욕으로 더
나아가진 못했던가 보더군. 결국 유일무이한 최고를 추구하던 그 바탕이 그런 결과를 부른 거겠지. 최고의 소리, 그게
너무 잘 드러나, 너무 노골적으로 말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난 그런 게 마음에 들지않아."
쓰바의 둥글넙적 원만구족한 얼굴이 여러차례 변했다. 그러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가이스키의 눈에 따뜻한 빛이 어렸다.
"오늘 들은 보리스 고두노프엔 공교롭게도 자네와 내 이름이 모두 나오지. 보리스는 새 황제가 되었으나 전임 황제의 아들
드미트리를 살해한 업보 때문에 늘 편치 않지. 그 사실을 안 한 수도사가 드미트리 행세를 해서 보리스를 괴롭혀 결국 황제의
자리를 빼앗잖는가. 권력이란 그런 거지. 바탕이 이미 글러 먹은 데서 시작하거든. 우리의 무소르그스키는 그런 권력 싸움과'
자리 이동엔 관심이 없지. 원래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어떻게 해도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다만 민중의 편에 서서 권력 싸움이 종지부를 찍자 마지막엔 이렇게 노래하지 않는가.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게 마련이지. 러시아의 민중이여! 기아에 허덕이고 가난에 찌들은 민중이여!
그런 걸세. 권력이 바뀌든 어떻게 되든 민중의 삶은 변함이 없지. 민중에겐 이 권력이나 저 권력이나 그저 권력일 뿐이야.
그러나 민중의 피와 살과 땀으로 제 살을 찌우는 권력은 끊임없이 민중을 이용하고 현혹하고 압박하지. 민중은 권력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꿰뚫고 있는데 권력은 언제나 민중을 권력유지의 도구로만 보고 그렇게 취급하거든. 어느 쪽이 눈과 귀가 멀었는지
알겠는가."
가이스키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이치를 잘 생각해보게. 모든 것은 서로 연관을 갖고 함께 돌아가는 법이네. 자넨 권력자의 오디오를 갖춘 거야. 그에 비하자면
나는 민중의 오디오를 갖고 싶은 거지.
특정한 것에 눈멀고 귀머는 권력자의 속성과 온갖 신산함과 간난을 견디며 삶을 헤쳐나가는 민중의 속성을 그대로 오디오에
적용해 보게. 그 속성이 곧 그대로 바탕을 만들고 모든 것은 반드시 그 바탕대로 가거든. 오디오든 뭐든."
쓰바가 끄응, 신음소릴 냈다. 가이스키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디오 또한 나를 알고 남을 알고 사람을 알고 삶을 알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러나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도구인가 말일세."
가이스키는 흔들의자를 가만히 흔들었다.
"뒈질 날이 가까워질수록 내가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지. 이 늙은 육신에 들어있는 내 영혼이란 놈...
그것 뿐이지. 그것말고 싸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겠는가. 결국 우린 그 영혼의 성장을 위해 태어났고 살았고 죽는 거야.
가장 긴 순간은 물론 삶이지."
가이스키의 목소리는 점차 낮아지고 잦아들었다.
"그럼 잘 보자고. 삶의 까닭이 거기에 있다면 나는 기꺼이 권력자 보단 민중의 삶을 택하겠지.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 해도 그들의 눈과 귀를 가져야 마땅하겠지. 내 성장에 도움이 되고 배울 게 거기 훨씬 많은 것만은 분명하니까."
쓰바도 기술자도 침묵을 지켰다.
가이스키는 흩어지는 바람소리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만년에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어. 내 삶은 잘 정리되고 있어."
박선생님 역작을 읽고나니 소리전자 빈티지동호회에만 남겨 놓을 글이아니라 잘정리해서 한편의 단편소설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권합니다. 잘 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