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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모임을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by 항아리 posted Apr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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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12일, 시청모임 사흘 전, 그러니까 4월9일 수요일이었습니다.
 시청모임에 사용할 스튜더 CDP가 오랜 기기답게 소리가 좀 뭉툭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의 제 DAC를 들고 가 몰려 보았습니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 듣던 그대로 들어보자고 해도 그 정도 노력은 해야 자리를 만든 자의 책임이자
오실 분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아서였습니다.


 제 DAC를 물리자 스튜더의 아날로그 아웃 보다 소리의 표현력이 더 폭넓고 섬세하긴 했으나,
귀에 거슬리는 싸구려 소리가 났습니다.
 프리앰프의 볼륨을 한 시 방향까지 올렸었으니, 집에서는 그렇게 크게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디지털 쪽은 뭐가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진의 DAC는 증폭부가 빠진 DAC 기판을 디지털 자작계에서 잘 알려진 분께 따로 부탁해서 주문하고,
진공관 증폭부는 제가 만들어 붙인 것입니다.
 케이스는 오래 전부터 써오던 걸 그대로 썼고, 안에다가 억지로 집어넣었습니다.
 어차피 DAC기판 쪽은 제가 어쩔 수 없으니, 제가 만들어 붙인 진공관 증폭부를 손을 봐야했습니다.
 
 PCM1704란 칩에 의해 최종적으로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변환된 소리 신호는 OP AMP 등의 증폭을 거치기 전엔
턴테이블 카드리지 신호처럼 미약합니다.
 그 신호를 트랜스로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진공관 증폭을 거쳐 다시 트랜스로 출력하게 했습니다.
 DAC 증폭부를 트랜스 입출력 방식으로 한 건 디지털의 거칠고 건조하고 차가운 소리를 트랜스가 아날로그틱하게
변환해 주길 기대한 까닭이었습니다.
 
 문제는 거기 쓰인 트랜스인데, 오래된 옛것이긴 해도 다른 사람에겐 써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몹쓸
트랜스였습니다.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워 저기에 집어넣고 억지로 맞춰 써왔습니다.

 

 이런 걸로 좋은 소릴 만들어야 진정한 고수지...정신나간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제법 들을만하게 잘 꿰맞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집 보다 훨씬 넓은 환경에서, 훨씬 큰 볼륨으로 들어보니 그 억지와 무리가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시작이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집으로 되가지고 와서 결국 나중에 쓸 때가 오면 쓰자고 아껴두었던 트랜스들로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소리는 제가 안되는 트랜스들로 억지로 짜맞추고 꿰맞췄던 소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 정도 소리가 날 줄은 당연히 저도 몰랐습니다.


12일 시청회 당일, 

왠지 저 썩은 DAC에 쓰기엔 아깝기만 한 트랜스를 채용한 걸 조금 일찍 가져가서 물려보니

됐다, 싶었습니다. 그걸로 제가 한 시청회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그리고 제겐 참 좋은 시청회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끝까지 갔습니다.

 .................................


 시청회 다음날, 선명하게 남게 된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 수 없는 소리는 제가 짜맞추고 꿰맞춰가며 만들어낸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나중 소리는 거기 적용된 부품들의 경로에 어디선가에서 깃들어 온 소리입니다.
 그 정도 소리를 저는 들어보기 전엔 예상을 못했으므로, 분명히 제가 이렇게 저렇게 소리가 나게 하겠다고 미리 계획을 세워

만들어낸  소리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소관은 언제나 틀려먹은 소리, 글러먹은 소리 뿐입니다.
 뭔가 된 것 같은 소리는 할만큼 했고 더 할 게 없다는 한계와 부족의 뜻이지 제가 미리 알고 만들어낸 소리는 아닙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전 보다 더 나아진 소리는 그 이전까진 제가 모르던 소리였습니다.
 지금 보다 나은 소리는 항상 제가 모르는 소리입니다.

 

 저는 그게 어디 있으며, 어디서 오는지 모릅니다.
 다만 제가 개별의 부품들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에 제 무지와 착각과 잘못을 줄여갈 때마다 이전 보다 나은 소리,

지금 보다 나아진 소리는 어디선가에서 깃듭니다.
 분명히 그것은 제가 모르는 어디선가에서 깃들어 오는 것입니다.
 
 저는 늘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소리를 얻어왔습니다.
 제가 한 것은 제 아집과 무지와 착각과 실수와 잘못을 줄이고 바로잡으려고 한 것 뿐입니다.
 바로 그것,

 내가 아집과 무지와 착각과 실수 덩어리라는 것, 그것을 좀 더 분명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고 스스로 인정할 때마다,
그것들은 조금씩 나아져왔고, 미처 몰랐던 더 나아진 소리가 어디선가에서 선물처럼 왔던 것입니다.

 

 저는 좋은 것, 바른 것이 뭔지 모르고 그래서 제가 그런 것들을 행할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저는 그런 것들이 제게 깃들어오지 못하게 스스로 만들어서 방해하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 약간 밝은 것 뿐이며,
그런 이치를 반복해서 학습할 때마다 방해요소들이 조금씩 조금씩 약해지고, 딱 약해지는 그만큼씩 밝아져 온 것 뿐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이 보다 더 정확한 거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내게 좋은 것만 보내주는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제가 아는 가장 확실한 거래처입니다.
 다만 저는 거기서 보내주는 것을 받을 수 있게 반드시 제 똥을 찾아내고 치워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은 그것 뿐입니다. 
 
 이번 시청모임은 그 거래처에서 지금까지 제가 한만큼 보내준 소리를 들어보자는 자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저도 이렇다저렇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소리를 다른 분들이 어떻게 들었든 그 또한 제 소관이 아닙니다. 
 단지 제겐 제가 몰랐던, 제가 들어왔던 이전의 소리들 보다 나아진 소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 자리, 두 번 만들 자리는 아닙니다.


 음, 어서 와. 이런 소린 처음이지?


 알게모르게 그런 마음을 품게 되는 것처럼, 똥을 치우기는 커녕 더 많이 양산하고 굳건히 하는 위험이 큰 까닭이고, 

 그게 반복되면 제 똥이 뭔지도 모르고, 뭔지를 모르니 치우는 방법조차 잃어버릴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똥을 주체 못하면 아예 그런 거래처와 거래선엔 관심도 안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보다 더 나은 뭔가를 체험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똥을 치우는만큼 새롭고 더 강력한 똥도 잘 만들어내는 인간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거기에 쓰기에도 제 에너지는 많이 모자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