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세상을 망친다

by 김명기 posted Dec 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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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이 세상을 망친다.

나는 승마를 지도한다. 보험도 들고, 안전교육을 하고, 헬멧도 쓰게 하고 최신형 에어백 자켓을 입힌다. 승마를 지도한다는 것은 말을 안전하게 잘 타게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 번도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누구나 말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것은 운전면허를 교부하고 자동차를 운전하게 만들지만, 자동차 사고가 평생 한 번도 나지 않게 보장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물론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잘 알고 있다. 말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과, 그러면서 승마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을. 교관들은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노심초사한다. 그래도 가끔은 떨어진다. 지난 십 여 년 간 내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승마를 지도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간 내가 찾아가서 승마를 지도했다.

두 상황 사이에 다른 것은 승마를 알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이고, 내가 찾아가서 승마를 지도하는 것은 전혀 승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승마를 지도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다른 것은 전자는 낙마 시에 먼지를 털고 쑥스러워 하면서 다시 도전하는 것이고, 후자는 뭔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잘 타고 열심히 탄다고 생각하기에 열의를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말을 타고 대기를 가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낙마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개는 가볍고 뻐근한 사고일 뿐이고, 하루 이틀 지나면 낫는 일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목숨을 잃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로 나는 학교에서 공을 차다가 119에 실려 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고, 자전거를 타다가, 스키를 타다가, 계단에 굴러서, 뜀틀을 넘다가 다치는 것을 보았다. 그 다양한 부상의 경우를 생각하면 승마는 기적처럼 사고가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공식적인 사망사고는 3번. 자동차와 비교하면 어떨까?

말을 타다가 한 번 낙마하면 대개의 분들은 그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웃고 만다. 그들의 자녀들은 새로 결심을 다지고 조심스럽게 도전하여 결국엔 자신이 목표한 승마 실력을 갖춘다. 나는 그들의 행복한 미소와 가슴 뻐근한 보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미 병원에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도,

보험도 내 돈 들어냈으니까, 보험료로 받은 치료비는 내 것이고, 승마교실에서 치료비와 위로비를 내놓아야 합니다. 아니면 인터넷에 방송에 학교에 정부기관에 떠들 겁니다.

이들은 푼돈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의사가 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는데도

잘 되었어요. 이번 기회에 온 몸의 종합 검진을 받아 볼 겁니다.

라며 덜 여문 어린이의 몸에 방사선을 쐬고, 힘든 검사를 받게 한다. 다들 참 똑똑한 사람들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똑똑한 사람들일까? 그들의 이기주의를 영리함으로 생각해줘야 하는 것일까?

이미 승마계엔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한다. 검은 벤츠를 탄 2인조가 나타나서 한 번만 태워달라고 한 뒤 고의로 낙마를 하고 거금을 뜯어낸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를 보면 이 사기 행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추후 누가 감히 그들에게 승마를 지도하려고 할 것인가? 가능하면 그 명단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승마계의 의욕을 확실하게 끊어 버리는 자들이다.

후자의 똑똑한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도 힘든 승마 관련 보험을 아예 말살하게 될 것이다. 보험사 같이 사기성 짙은 집단이 바보처럼 늘 손해만 보려 할 것인가? 그나마 돋보기를 들고 열심히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몇 안 되는 국내 승마관련 보험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누구도 손해를 보려 하지는 않는다. 그게 세상이다. 머지않아 국내 어느 보험사도 승마 관련 보험을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진짜로 스포츠 상해를 입은 선의의 피해자들은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똑똑한 사람들의 영웅적인(?) 활동 때문이다. 정말 승마 지도하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말에서 떨어져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도 다시 용감하게 말에 올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학생들. 모든 고된 훈련을 마치고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그 미소. 일부 똑똑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내게 나타난 사소한 불운일 뿐. 그들은 결코 쑥과 마늘을 먹는 고된 과정을 알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실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몫을 깎아 먹고도, 작은 이익으로 더 큰 기쁨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안도한다. 그런 이들과도 거뜬히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내 자신에 대하여. 사업하며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에 경험을 쌓아간다. 나는 점점 더 숙달되어 간다. 나는 점점 더 노련해 진다. 나는 점점 더 교활해 진다. 나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작은 이기심 따위에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못해 먹겠다고 말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제법 컸나보다, 이젠 협박도 다 받고. 이런 다양한 경우를 꿋꿋하게 대처하며 사업을 영위하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모두 참 대단하다. 나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 열심히 하자. 도전이 있으면 그보다 두 배 더 열심히 하자. 아니 열 배는 못하겠는가? 나는 이 일에 명을 걸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