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사기

by 조정래 posted Nov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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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오래된 삼베 밥부재에 보리밥 두 덩어리를 싸들고

늙으신 할배하고 영베이 산자락에 올라서  순  곡갱이와 삽으로만  돌나덜 땅을 힘들게 파서 산전을 일구는데

나는 이틀을 못 넘기고  손마디에 물집이 생겨서 더이상 땅을 팔 수가 없었다.

봄이라지만 땅 파는 일이라 땀은 솥아지고, 한창 나이에 배도 고프고, 손은 퉁퉁 물집이 솟고..산전 일구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쓰라린  손바닥을 개울  물에 담그고 있으니 저만치 할배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니 손에 물집났나? ..니는 고마해라\"

할배는 비록 늙으셨지만 이미 70년 가까이 땅만 파시던 분이라 이만한 산전 일구는 일로 손바닥이 갈라지거나 물집이 생기지 아니하셨다.

다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시고 살이 빠지어 팔에 핏줄만 덩그러니 표출되셨다.

그렇게 할배하고 일군 산자락 땅에 벼를 심고 그해 첫 수학으로 벼를 두지게 지고 내려오던 기억은 내 인생에 가장 위대한 살아 숨쉬는 학문 덩어리였다.

첫해  농사로  통일벼를 심고 가을 추수로 통일벼를 지고 신이나서 헉헉 내려오는데

산 아래 솥절마실에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분이네 개가 컹컹거리며

\"올해 이밥 많이 드시겠네요!

하듯이 울었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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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지나서 ....낡은 삼베 밥부재를 지게에 달고 오르던 영베이골을   어슬렁 어슬렁 걸어 올랐다.

고향집에서 거반 오리 길이다.

초가집 6채가 있던 영베이골은 이제 달랑 두집만 남아 있었다.

그런대 달랑 두집만 있는 그 마을에 자가용이 대추나무 아래 혹은 콩밭 입구에 이리저리
무려 14대나 마을 입구에 와 있었다.

산골 마을에 자가용이 많이 몰려 있으면 누군가 초상이 난 경우다.

밭둑 콩을 뽑는 고향 분에게 반갑게 수인사를 건네고 여차저차  이야기를 하다가.....

 

\"이마실에 누가 돌아가셨닛껴?\"
\"아무도 안돌아가싯니더\"

\"그마 저 자가용들이 왜 저꾸 와 있닛껴?\"

 

 고향분은 산아래 자가용 군상들을 보면서 씨-익 헛웃음을 게면쩍하게 웃으면서

 

\"그너-무 도청인가 뭔가하는거 때문아잇껴!\"

\"..............대구서 이리로 오는 경북도청하고 저  도시 자가용차들하고 무슨 관계잇껴?\"

\"....ㅎㅎ..글키말있씨더...  산골 못쓰는 땅이 천지개벽 안했닛껴!\"

아하!.......그제야 떠 올랐다.

 

경북도청이 들어서면서 수용지 땅 값 보상이 지난 달에 이루어졌고....

 

곧 바로 추석이라서 저렇게 도시 자식들이 몰려온 모양이다

평소 잘 아니오던 먼데 사는 사위들도 차를 몰고 찾아오는 바람에 저렇게 산골에 자가용이 많이 모인것이란다.

 

\"영베이 골에 이래저래 효자낫니더!\"

 

어주자가 감탄하자...

 

\"요 재너머 00 마실에는 마을에 차 될 곳이 없을 정도로 객지 자식들 자가용이 여기보다 더 왔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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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도청이 들어 설  그 자리는 현 청와대 뒷산 줄기보다 더 좋은 명당지라는 것은 이미 신문에 나 온것을 보아 왔으니

금계자락이니 학익공 자리이니, 금곡줄기이니,좌청룡 우백호 자리인니 ..그런 풍수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500년 동안 문과 급제를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많이 낸 안동 권씨
그리고 안동김씨 ,임란난국을 헤쳐나간 서애대감,오미 허백당 어르신 정탁대감..우수한 씨족마을이 모두 검문산 자락이니 단필로 일획을 그어 본다면 당연히

鳳鳴大吉 지형이다.


아무튼

곧 사라질 내 고향 산골 마을을 더 둘러 볼 겸 아는 농부와 작별을 하고 다시 어슬렁 어슬렁 심베미 산고개를 넘었다.

옛날 적은 삼촌집에 곡기가 떨어져서 조석으로 죽을 쑤어서 먹을 때 숙모님 친정 모친이 그 소식을   중리 장마당에서 들의시고 우리 마을 사람에게

 

\"초이래날  우리 딸 보고 심베미 산고개마루까지만 오라카소!\"

 

말미를 뛰우셨고

숙모님이 초 이래날 이 고개마루까지 마중을 나와 겉보리  그 먼길 겉보리 두말을 머리에 이고 오신 친정 어머니를 만나서 

춘궁기에 자식들에게 먹을 양식를 눈물로 받아 오셨던 산고개이다.

 

고개 마루에 앉아서 이런저런 옛 생각을 하는데 곧 도청이 들어 설 검문산 아랫 마을에서 저만치 읍에서 오는  버스가 들어서고 있었다.

웅골마실에 들어갔다가 한 이십여분 후에 버스가 다시 돌아서 나올 것이다

 

서둘러 산고개를 내려갔다.

오랜만에 내친 김에 시골 버스를 타보고 읍까지 나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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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이미 텅텅 비어가고 있었고 여기저기 고향 잃는 사람들의 애끓는 하소연 현수막도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 웅골서 돌아오는 버스 에 오르자 버스 안은 젊은 이는 없고 ...하나같이 늙으신 어르신들 뿐이다.

버스가 여자지 못을 돌아서 나가는데 허리굽은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정류장이 아니지만 버스는 섰다.

할매는 건고추를 마다리 포대에 이고 차에 올랐고 이를 본 다른 할아버지가 이

 

\"질부님은 어데가닛껴?\"

 

하면서 보따리를 받아 올렸고 어주자도 거들었다.

 

읍 장날이라서 시골 버스에 탄 노인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어주자는 숨죽이고 그분들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할매는 도장 찍었닛껴?\"

\"내사 벌써 찍었니더\"

\"보상타마 우짜닛껴!\"

\"우집은 땅도 권씨들 문중 땅이라서 집값만 쪼매춤 나오기 때문에 얼마 되지도 안니더\"

\"그카마 우짜닛껴!\"

\"서울 며느리가 보상받으마 절꾸오라카니더\"

\"맏며느리 오라카닛껴?\"

\"아이 둘째며느리가 오라카니더\"

\"하이고 둘째며느리 언가이 효부네!\"

도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신다고 한다하자 그 말에 웅골서 오신다는 키작고 이가 없으신지 오물입을 하신 할매가 부러운듯 할했다.

그러자 조금전 보따리 받아 올리던 할아버지가 대뜸

\"뭘 며느리가 효부잇껴..다 지욕심채릴랏꼬 카지!\"

\"그기 무슨 말잇껴?\"

\"옛날에는 딸이 도둑년이라캣지만 요새는 객지에서 포시람게 사는 며느리가 더 도둑년이라 카디더!\"

\"설마..그럴씨껴?\"

\"맥지 그카지 누가 돌삼넘 집안도 아닌데 시어마이 보상비 뺏을실껴?\"

\"갓뒤 혀자래기 할마이 이야기도 못들었닛껴?\"

\"무슨말잇껴?..그 할마이 보상비 받아가 서울 아들 집에 갔잖닛껴!\"

\"그 마을 국가 공단 들어오고 여러 할마이들이 마카 도시 며느리한데 속았다카디더!\"

\"우째서 속긴닛껴?\"

\"마구 평소 저끼리 산다꼬 싼다구도 안보이던 며느리들이 골물케 농사 짓는 시어마이가 공단이나 도청 이다 그딴거 때문에 몇 억씩 보상받는다카이 그때무터 뻔질나게 들락거리면서 늘그막에 이제 고상스럽게 농사 짓지말고 따슨물 나오는 서울와서 사라꼬 글키그래싸서 돈보따리들고 아들집에갔다가 두달 못 버티고 옷보따리도 없이 다부 갓뒤골에 내려왔다카디더!

\"저런 마하놈의 일이있나!..그 할마이 앉았다카마 서울 아들 자랑하던데..설마 도로 내리왔을랏꼬!\"

차안에 여기저기 할매들이 한숨이 솥아졌다.

 

\"그마 보상받은 돈도 며느리한데 다빼낏다카딧껴?\"

\"그거까정은 몰라도 아무튼 옷보따리 가방도 없이 다부 시골로 왔다카디더\"

\"나무모타릿다! 시어마이를 우째 그래노 어이?..시상이 돌상넘 시상있다-아!\"

 

버스 안이 다시 저마다 한마디씩 하시니 소란스러워졌다.

 

\"그카이 보상받으마 주그나사나 내겟주메이 차고 있어야지 그까짓거 객지 사는 아들이 무슨 소용있고 며느리가 무슨 대수있껴..\"

\"그마 인자는 며느리도 못 믿는 시상잇껴?\"

\"시골 할마이들 보상받은 돈 들고 객지 며느리한데 가는 그날부터 사기당하니더! ..시상이 옛날 시상이 아이잖닛껴!\"

\"설마 며느리가 시어마이한데 사기를 칠랏꼬!\"

\"사기가 어디 유세통처럼 생깃닛껴?..모신다카이 믿고 며느리한데 돈보따리 주고나이 그 뒤부터는 눈치주제..밥도 제되로 안챙기주제....딸집으로 가서 하소연 해봐야 이미 보상비 받은 돈은 나눠주지 않고 며느리한데 다 주고나이 나머지 자식들도 다 삐져서 오도가도 못하고 ..결국 다부 내려오는 신세됫다카디더!\"

\"암만 그케도 우리 며느리들은 안그래..얼마나 내한데 잘 한다꼬..늙어서 새삼 보상비로 땅사서 농사 짓기도 그렇고 ..나는 서울 아들 집으로 갈끼씨더\"

\"에이고 할매요 그카지 마이소 요즈음 지아들 끼고 산다꼬 다 지메느리잇껴?..돈 앞에는 다 마카 소용없니더,모신다카고 우선 서울 올라카지만 돈 며느리한데 넘어가는 그 순간 ..쪽박차는 날잇시더!\"

\"저런..그캐도 설마 늘그막에ㅡ 갈곳도 없는 시어마이 쫏가낼랐꼬..말도 안되니더 사기는 무슨 사기..말이 그렇치!\"


보상비 받아서 아침 저녁으로 따뜻한 물  콸콸 솥아지는 도시 아들 집 아파트로 가는 것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노인들이 다소 겁먹은 표정들이되었고 ..내심 며느리가 사기꾼이다 라고 말을 뺃아 낸 노인은..설마 그렇게까지 시어머니에게 모질게 할까..못 미더워하는 할매들에게 더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 하셨다.

 

\"돈 보따리 며느리 한데 넘어가는 순간 쫏기나니더..내말은 100프로도 아이고 110프로 사기당하니더..마카 보상 돈 타거던 고마 이웃 마을에 빈 방이라도 하나씩 차지하고 살던 고향서 살다가 죽는기 기중 좋은 생각있시더!..만약 아들집에 가서 살면 나중에 죽어도 영감 옆에도 못 오는 세월있씨더!\"

\"그기 무슨 소리있껴..난 죽어서 맹앵 영감 누운 곳으로 올끼씨더..\"

서울서 죽으면 ..어쩌면 고향 선산에 누워있는 영감 묘 옆에도 못 올 수도 있다는 말에 내심 걱정이 앞서시는 가보다.

\"까칠게 마을에 한 할마이가 서울 아들집에 가서 살다가죽었는데..장례 고향까지 와서 치루면 복잡하다꼬 서울서 훌 태워서 시립 납골당에 모싯다카디더..질부도 그꼴 날 줄 우째 아닛껴!\"

\"저런...나무모타릿따!\"

버스 안이 갑자기 무거운 침묵으로 빠졌다.

버스는 어느 덧 효부각을 지나고 해마다 주자가례를 기리는 가일을 지나고 설못을 휘돌아  새젓골 앞을 지나고 있었다.

저만치 또 허리굽은 할머니가 무슨 보따리를 들고 읍으로 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힘겹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