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권님 반갑습니다
세상은 역시 좁네요
마산자유수출 지역에 관하여 세세히 잘 알고 계시네요.
밎습니다 , 전량 수출이고 국내 판매 거의 불가능 했었지요.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역외가공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세관부서가 관리소 1층에 들어서고 정문과 후문에는 일반 경비원 말고
별도로 세관원들이 지키고 있었지요.
일본서 수입되는 전자 부품들은 전부 1차 자유수출 지역내에 있는 보세창고에서 통관을 거친 후에 제조 라인에 투입되었구요
그당시 ,TC전자는 국산 부품개발을 위하여 일본서 금형(그당시만 하여도 금형 설계제작은 국내서 무리) 수입을 해 온 것들이
200개가 넘을 정도였지요 .그 금형을 국내 부품 제조업에 공급하여 부품 주문 제작을 했었구요.
국산 최초의 고급 튜너..한가지 제가 부연해서 설명 드리신다면 ...front pannel을 제외한 튜너의 부품들은 의외로 거의 국산 부품으로 만들어진 튜너 입니다
osc,ift coil은 자유 수출지역 안에 있었던 미쯔미 전자와 동광전자에서 생산 된 부품이였구요
제2 공단에 수미다 전자와 합한다면 그 당신 전셰계 튜너제조에 들어 간 각종 코일은 전부 Made in Korea 였으므로
지금 한국 오디오 맨들이 명기로 쳐서 소장하고 싶어하는 아나로그 튜너들 p.c.b에 삽입된 부품들 의외로 국산 부품이
많습니다.
저항과 콘데셔도 이미 국산 품질이 우수했구요.
직접회로와 에나멜 코일 역시 자유 수출 지역 안에서 제조 되고 있었구요.
p.c.b는 대덕전자에서 품질 높은 p.c.b를 제조했었습니다.
튜너의 wood case는 제 2공단 전자 케비넷, 구미 선우드
knob 종류는 부산 사상공단의 동아합성,태양사 등에서 부품제조를 하고
프레스 가공물은 지금은 이름을 잊어 먹었지만 부산 영도다리 건너에 있었던 작은 공장, 마산 공설 운동장 됫쪽에 있던 공장에서 제조 되었습니다.
도금물은 경북대학 교수로 게시던 분이 구미 전자 공단에 대명산업이라는 도금공장을 차리셔서 그곳에서 했구요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고급 튜너 제조로 ..국내 전자 부품 산업도 이렇게 동반발전을 이루게 된 일입니다.
그 당시 TC 전자는이미 미국으로 부터 주문생산 품, 워키토키,인터폰,전화기 자동 엔서링,CB무전기,핸디핼드, 작은 라디오들,
그리고 테스터기를 대량 생산하였기에 생산 1과,2과,3과,4과, 5과 까지 확장이 되었구요
튜너는 콤베어 길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설비 시스탬을 갖추었던 생산 4과에서 제조를 했었지요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그 당시 튜너 기술과장과 생산과장은 저와 동남전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 샤프 전자에서 금형을 갖고와서 제조하여 세운상가에서 폭발적인 판매 인기를 얻었던 야외전축 생산라인에서 같이 근무를 했던 분들이였습니다.
저는 동남전자에서 다시 대한 도시바 FM라디오 제조라인에서 일하다가 다시 마산으로 내려가서 TC전자 제조 생산4과 튜너 생산 담당 계장을 했었지요.
제조라인의 아가씨들은 함안,고성,군북 ,진주,김해..멀리는 전라도 광주 사레지오 여고생들 단체로 ..참 열심이들 제조 했었지요.
거의 매일 잔업이였구요,일요일 근무 서로 하려고 했었지요.
그 당시로서는 국내서는 아주 최고급 튜너였구요.제조당시 국내 전자공장 담담부서들이 줄지어 방문을 했었구요 .
자유수출지역 아침 출근하는 아가씨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보폭이 밀려서 양덕동 삼거리까지 줄을 이었구요.
그런 지역 경제 덕분에..오동동 입구,송학다방 근처에는 어께가 부디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구요
저가 처음 마산내려갔을 때 만해도 돝섬가는 배를 타면 바다 속 홍합이나 미역이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였지요.
남성미 넘치는 무학산
용마산 공원의 고향의 봄 ,그 유명한 가고파 노래비
가포 해수욕장,
돝섬,설지 포도밭,
선창가 아나고 꾸이.
오동동 선술집들.
거제로 가는 그림같은 괭이바다 풍경,
가을 꼬시락, 진동만 봄 도다리
마창고개를 넘어가는 마금산 온천.
신마산,구마산 연결하던 완행 열차.
공업화로 값진 아나로그들이 이제 많이 사라졌지만 참 아름다운 마산이였습니다.
저에게 잠시나마 아름다운 옛 추억을 끄집어 내게 해주신 점 감사드리며
행복한 가을 되시길 바랍니다.
어주자 인생 메모장에서...일부 발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