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by 염준모 posted Nov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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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정의홍 / 희년함께 운영위원


얼마 전부터 저희 회사는 같이 창업했던 형제회사와 함께 골목 상인들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골목에서 창업을 꿈꾸는 분들을 위한 교육입니다. 골목은 단순히 ‘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삶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 곳을 아름답게 꾸며줄 다양한 시도들이 기대가 됩니다.

 


서울과 같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들은 대부분 비정형의 골목길이 매력적인 공간경험을 주곤 합니다. 특히나 유럽여행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좁다란 길과 크고 작은 광장들 사이로 펼쳐지는 삶의 무대가 얼마나 매력적인 경험으로 다가오는지 잘 아실 것 같습니다. 파리 샹들리제 거리의 즐비한 명품점들이 그 거리를 누구나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주지만 이면의 작은 골목에 있는 골동품점과 기념품 가게, 오래된 책방과 작은 선술집이 있어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가 됩니다.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도 유명한 브랜드들의 본점과 값비싼 보석 매장이 있어 화려함을 뽐내지만 런던을 매력적인 장소로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어느 골목에선가 맛볼 수 있었던 피쉬 앤 칩스의 맛일 것입니다. 로마의 매력도 즐비하게 들어선 명품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좁다란 골목길을 헤매다가 발견하는 크고 작은 분수와 광장, 그곳에서 파는 맛있는 젤라토 아이스크림에 있다고 믿습니다. 서울의 종로는 ‘피맛골’이라 불리는 오래된 골목길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피마(避馬)하는 길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역사 깊은 명소입니다.

 


오래된 맛 집들이 옹기종지 모여있는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새겨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2003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규모 오피스 빌딩 건축 허가를 내주면서 반토막이 났습니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겠다던 건축주는 건물 1층에 기존 상인들 몇몇을 입주 시키면서 생색을 냈지만 서울다운 멋은 지켜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많은 골목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사라져 가거나 대형 프랜차이즈에 자리를 내어 줍니다. 대중없이 푹푹 퍼주시던 할매들의 떡볶이 가게가 사라졌고, 항상 덤으로 귤이라도 하나 쥐어 주시던 과일가게 아저씨들도 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방배동의 카페골목은 더 이상 카페골목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카페들이 다 사라졌고,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던 홍대주변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클럽으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변해가는 거리가 한 두 곳이 아닙니다. 골목이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 자본의 관심을 받게 되는 순간 골목은 삶의 현장이 아닌 부동산 시장이 됩니다.

 


최근에는 이야기가 있는 골목이나 장소가 부동산 업자들의 새로운 투자처로 관심을 받는다고 합니다. 골목에 있는 점포들이 상당수 주인이 따로 있으니 권리금도 못 받고 자리를 잃는 가게들이 많이 생기겠지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사람들에게나 빛을 잃게 될 골목에게나 자신을 지켜낼 방법이 필요합니다.

 


골목가게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비즈니스 모델(협동조합과 같은)을 만들고 점포의 브랜드화를 통해 자리를 잃더라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골목은 지자체 차원의 업종제한이나 상인들의 협의체 등을 통해 외래 자본의 유입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외국의 어떤 시장에는 50년 넘게 올리브만 파는 할아버지의 자리가 있는데 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 곳에서는 올리브만 팔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야든지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제도로 잘 정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맛골을 지키기 위해 상인들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피맛골을 사랑하고 즐겨찾는 이들이 발벗고 나서고, 서울시의 제도적인 지원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