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고 심심하며 자꾸 심심할 때,
자연에 나아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어느 순간 문득
귀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의 너머에
이를데없이 고요하고 이를데없이 깊으며 이를데없이 거대한 침묵을 느끼게 됩니다.
한 번 느끼게 되면
그 침묵은 언제든지 감지할 수가 있게 됩니다.
늘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것인 까닭입니다.
드디어
자연의 모든 소리들은
그 소리가 저음역대 위주의 것이든 중음역대 위주의 것이든 고음역대 위주의 것이든
고중저음역대를 넘나드는 것이든
모조리 그 거대한 침묵의 위에서 노니는 하나의 소리들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그러나 귀로 인지할 수 있는
그 거대하고 고요한 침묵이야말로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의 바탕이자 어미였던 것입니다.
그 침묵이 없다면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소리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 침묵은 지구가 살아있는 증거이자 지구의 호흡소리입니다.
살아있는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내는 지구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소리, 생명의 소리입니다.
5Hz 근방으로 알려진 그 초저주파는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습니다. 그저 모든 소리들의 여백, 침묵으로 인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구의 침묵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그 소리는
태양이 보내주는 빛과
전 우주를 관통하는 파장과 더불어
지구가 살아있고 더불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살리는 생명의 바탕과 본질이 됩니다.
광光+음音+파波 = 살아있네 살아있어
자연의 소리는 지구의 표면을 따라 낮게 깔리는 침묵의 초저주파를 따라 늘 수평으로 펼쳐집니다.
그 위에서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 한편에서 물 흐르는 소리, 저 멀리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산너머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들이 노닙니다.
3차원의 공간은 수평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자연은 소리로써 알려줍니다.
한숨같은 의문이 절로 듭니다.
오디오 소리도 저렇게 눕힐 수 없는 것일까.
저 밑바닥에 무대가 수평으로 놓이고 그 위에서 이런저런 악기들이 위아래가 아닌 앞뒤로 제 자리 제 위치에서
제각각 제 소리들을 내게 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인간의 오디오는 위쪽에서 고역이 나오고 중간에서 중역이 나오고 아래에서 저역이 나올까.
어찌 그리 수직적이고 평면적이고 2차원적이며 뻔하고도 뻔할까.
물음에 이미 답이 나온 것과 같으니 모종의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뭐나 되는 것처럼.
내 대가리를 쳐들고 잘났다고 설치는 저 놈의 소리들을 눕히고 말 테야.
여자는 오히려 눕히기 쉬운데...
물론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는 눕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눕힐 기회조차 잡기 어렵지만.
지구의 호흡은, 그 거대한 침묵은 깃들지 않는 곳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인간의 오디오엔 생명이 없으며 당연히 거기엔 깃들지 않습니다.
오디오는 지구의 침묵에 해당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 위에서 모든 소리들이 수평으로 뛰어놀게 해야 합니다.
자연을 관통하는 흐름은 순리입니다. 자연의 일은 거꾸로 가는 것조차 순리입니다.
자연이 보여주고 알려주는 모든 것이 순리입니다.
오디오에도 그 순리를 따르는 길은 열려 있습니다.
순리대로 이해하고 순리대로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나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리는 자연에서 오는 것이며 오디오란 소리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인간의 오디오에도 대자연의 거대한 침묵 비슷한 것이 깃드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디오에 거대한 침묵이 깃드는 것은 저음역대의 배음 현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아랫공간이 열리면 저음역대가 배음현상을 일으키며 아래로 펼쳐질 것이며 모든 소리들이 그 저배음을 타고
수평으로 펼쳐지며 노니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때 모든 소리들은 귀를 거스르지 않으며 제각각 제 위치와 제 자리를 지키며 온전히 제 소리를 낼 수 있게 됩니다.
바이올린은 고역 악기가 아닙니다. 그냥 바이올린입니다.
첼로는 중역 악기가 아닙니다. 그냥 첼로입니다.
더블베이스 또한 더블베이스일 뿐이며 모든 악기와 목소리들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제 소리들일 뿐입니다.
그 소리들은 저마다 고유의 음색과 소리 속도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소리를 섞는 법이 없습니다.
같은 박자를 이루나 반드시 이런소리 저런소리들은 서로서로 고유의 시간차를 가지며 따로따로 제 소리들을 냅니다.
그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비로소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선 어떤 소리들도 가려지거나 들리지 않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디오를, 소리를 눕힘으로써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자연이, 지구가 알려준 것입니다.
소리는 수평으로 눕혀야 합니다.
눕지 않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며 누울 줄 모르는 소리는 소리가 아닙니다.
* 이 글을 빈티지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까닭은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은 시대의 빈티지 부품이 소리를 눕히는 길을 갈 수 있는 가장 필수적인 준비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갑고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