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의 진화/김선호
1.
누군가 길을 잃고 산다
누군가 삶의 지루한 일부를 잊기 위해 길들여지지 않은 생활을 한다
누군가 지독한 사랑을 버리기 위해 삶보다 현실을 더 가난하게 살아간다
누군가 버리고 싶은 남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사용설명서 없는 인생을 산다
잃어버린 것인지 빼앗긴 것인지 자신에 대한 본질적 존재를 찾기는 어렵다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 그러면 무의미하다고 인식한 존재가 규정하는 의식은 무엇?
2.
초라한 모습 속에서 사상에 깊은 상처가 나도 처방전을 받을 수 없다
시간이 치료해주기를 기다리거나 자궁의 땅으로 소환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사고를 하도록 진화된 댓가이다
자신이 고독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동물은 단 한 종류 밖에 없다
진화가 남겨준 주홍글씨
빈부의 격차가 지독히도 심한 동물
그것은 진화가 매일 매일 주는 역설적 급여
사유는 결론을 얻으려는 관념의 과정이다.
그 결론이 절대적 고독이나 빈곤의 종말로 나타난다면 진화적 사유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3.
먼지 낀 창을 통해 지난 시간의 궤적을 볼 수 있지만 다가올 시간은 볼 수 없다
볼 수 없는 것은 다가오고, 볼 수 있는 것은 다가갈 수 없는 불가역성이 검은 모자를 쓰고 등 뒤에 늘 서있다
하지만 서리를 밟으면 곧 얼음이 언다는 것을 안다
시간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느끼는 것
신을 만든 유일한 동물이, 간신히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버리고 자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도 단 한 종이다
욕망이 과하거나 무욕에 빠져 자살한다
신을 만들지 않은 동물은 훨씬 직감이 뛰어나며 자살하지 않는다
사유의 진화 결과는 동물적 직감을 대신해서 무엇을 가져다 준 것이며, 그 의미는 또 무엇?
4.
그리고 묻는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를.
오늘을 묻지 않고 내일을 묻고자 하는 것, 그 다음이 무엇인가를 묻고자 하는 것은 욕망과 본성에 관한 질문.
본성과 욕망은 사상의 가옥에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며, 잉크를 빨아들이는 백지처럼 영혼을 빨아들인다
결국 거울 속에서 지구의 멸망보다 더 무서운 자신과, 또 다른 낮선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이 엄청난 어떤 모습일줄 알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묻는 것, 어쩌겠다는 것을 묻는 것은 아니다
몸은 진부한 과거의 DNA에 억울하게 갇혀있다
진화는 미래의 빗장을 여는 열쇠인줄 알지만
뒤엉키는 본성과 욕망의 시점에서 미래는 주소가 없다
5.
차가운 방
손끝까지 시린 공기가 흐르는 정글
존재는 의식을 규정하고 형태는 내실을 지배한다
유한한 존재자가 무한한 존재자가 되려는 데서 오는 괴리.
살아있는 동안
진화는 진화의 틀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느 세대이든 시점만 다를 뿐 동일한 조건
진화의 형이상학적 주체
불가능의 이념을 사유하여
형이하학적 불행한 의식을 만든다
어려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