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의 바람 / 김선호
까만 연밥 구멍에 사는 늪의 정령
복찻다리 건널 때 엎고 가라한다
까만 눈 쇠백로 꼼짝 않는데
한달음에 도망치는 서늘한 바람
간신히 꽃 내민 부레옥잠
민물농어 사이로 엷은 보라색 잔물진다
여기저기 물풀 뒤지는 청둥오리
물 밑에 잠자는 영원의 정령 깨우고
계절이 연못 앞에서 머뭇거릴 때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 숨는다
띠살창 그림자 길게 늘어뜨리는 해거름
귀 닳은 문지방 기웃거리는 찬바람
벌겋게 녹 오른 함석지붕 아래
붉은 고추 말리는 노모의 주름진 손
그리운 영혼 엎고 가는 하늘 아래
경안천은 꿈꾸는 듯 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