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by 김선호 posted Jun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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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잡지 <퀸>에서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하여 쓴 글입니다.

6월호에 게재되었네요.

 

 

“기억해 ! 내가 네 안에 살고 있음을”

 

어느 유월 하루 새삼스럽지도 않은 아침 남실바람에

 너의 엷은 체크무늬 블라우스 깃이 뽀송한 얼굴의 아이들 마음처럼 흔들렸어.

요란한 경운기 소리 따라 강물 위 흩뿌려져

일렁이는 햇빛 조각은 끝도 없이 깨진 유리가 되고.

다다르는 능선 따라 산과 들과 길,

 연두색과 푸르름의 사랑 섞으며

또 여기저기 붉고 뜨거운 꽃 피워내 온통 들뜬 마음이었지.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 나도 그랬어.

너와 초록 들풀 밟을 때 다가서 서로 속삭이는 멧새들 귓속말이 있었어.

주고받는 눈망울 그리고 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는

 길 위에 머물어 어깨 너머 꿈처럼 생각도 너울거렸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너와 헤어질 때,

촌부의 손마디에서부터 길고 긴 밭이랑 갈아졌고

섬강에 부는 한줄기 바람은 잡을 수 없는 시간으로 지나갔지.

아무렇게나 웃자란 풀 사이 달빛 들어와 쏘가리도 숨고

너와 내가 강둑 따라 휘돌아오는 어둑한 아쉬움을 산자락에 남기면

또 다른 어둑한 산자락 두꺼비처럼 다가섰었어.

그리고 이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

얼핏 보아도 제법 보이는 우리의 새치는 지나간 세월을 묻지 않아도

 쌓인 나이를 세지 않아도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와 내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때는 서로 포옹하고 있을 때였고,

너와 내가 가장 멀리 있다고 느낄 때는 너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였던 것 같아.

또 너와 내가 아무런 거리감 느껴지지 않을 때는 서로 아끼고 포용할 때였던 듯하고,

너와 내가 가장 두려운 거리감 느껴질 때는 서로 다투고 외면할 때가 아니었나 싶어.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는데 정작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간 것 같기도 해.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Chanson Simple의 마지막 가사를 너에게 꼭 전하고 싶어.

 

Souviens-toi que je vis en toi

Souviens-toi que je lis en toi

기억해 내가 네 안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 내가 네 안에 쉬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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