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자료삭제, 왜? '자살' 국정원 직원 의문점들//[분석] 국정원은 '사악한 감시자'로 남을 것인가????
15.07.19 17:23
최종 업데이트 15.07.19 18:10▲ 19일 오전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서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된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45)씨의 유서가 공개되고 있다. 임씨는 유서에서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며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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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북한에 관해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 낼 수 있을까 매일 연구하고 고뇌합니다. 이들의 노력을 함부로 폄하해서도 안 됩니다. 더구나 국정원이 지켜야 하는 국민을 감시하는 '사악한 감시자'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정보원은 자신만만했다. 지난 17일 국정원이 최근 벌어진 의혹을 해명하면서 밝힌 입장의 한 부분이다. 또 국정원은 안보를 위해 연구용으로 해킹 프로그램(RCS, 리모트컨트롤시스템)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국회 정보위원회 의원들을 국정원에 불러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런데 발표 하루 만에, '최고 기술자'라던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45)씨가 돌연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연말 정국을 강타했던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사건에서 청와대 문건을 언론에 유출했던 최아무개(46) 경위의 자살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최 경위의 자살은 청와대의 회유와 외압에 못 이긴 선택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최근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밝혀져 국민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이 프로그램은 PC를 비롯해 스마트폰에도 해킹이 가능해, 일거수일투족 사찰이 가능하다. 국정원은 20개의 프로그램을 구입해 연구용으로 사용했으며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한바 있다(관련기사: 국정원, '천안함 의혹' 전문가 해킹 시도 정황 드러났다, 메르스·떡볶이 URL, 국정원이 던진 '피싱' 미끼?).
'정말', '전혀' 등 강한 부사로 의혹 부인한 국정원 직원
▲ 19일 오전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전날 경기도 용인시 야산에서 자살한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의 유서가 공개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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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자신만만' 발표 하루 만에 숨진 임씨. 그는 18일 정오께 자신의 집에서 13km 떨어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한 야산,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번개탄이 놓여있었고, 조수석에서는 세 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가족과 부모, 국정원에 각각 한 장씩의 유서를 남겼다.
경찰이 19일 공개한 유서에서 임씨는 최근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정말', '전혀'라는 부사를 쓰며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밝혔다. 오로지 안보 연구용으로 사용했다며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전면 부인하던 국정원의 지난 17일 입장 발표와 동일했다.
임씨는 이어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다"면서 "그러나 이를 포함해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다. 동료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자살한 이가 남긴 유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억울함의 토로였다. 이 같은 유서로 보면, 임씨는 해킹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심리적 압박을 느껴 자살한 것으로 이해된다.
경찰과 새누리당에 따르면, 임씨는 전북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의 한 대학교 전산과를 졸업했다. 국정원 20년 경력의 임씨는 사이버 안보 분야에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전해졌다. 또 임씨는 큰딸(20)과 둘째 딸(19) 등 두 명의 자식을 두고 있다. 임씨 빈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평온의숲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공개 예정 자료'는 왜 삭제했을까?
▲ 18일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 관련 내용이 포함된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45)씨가 발견된 승용차. 임씨는 자신 소유 이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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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은 임씨가 해킹 프로그램 자료를 삭제했다고 스스로 밝힌 부분이다. 그는 유서에서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하겠다고 한 자료를 임씨가 미리 삭제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사용 기록 공개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갈등이나 책임론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책임론 과정에서 임씨가 억울한 점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가 유서에 남긴 문장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는 유서에서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주시기 바란다, 국정원 직원이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궁금증은 꼬리를 문다. '오해를 일으킨 자료'의 내용도 궁금하다.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 관련 자료'라고 밝히고 있지만 어떤 오해이기에 삭제를 했고 이를 유서에 남겼을까. 이 오해가 임씨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줬을지도 물음표로 남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자료 공개 결정 과정에서 국정원 간부와 실무 직원인 임씨와 내부 갈등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임씨가 자료를 삭제했을 수 있다"면서 "자료 삭제는 곧 국정원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임씨가 삭제한 자료가 100% 복원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임씨가) 삭제한 내용은 현재 확인 중"이라며 "나중에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국정원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까지는 확인이 될 것이며 공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임씨가 복원이 전혀 불가능한 '디가우저(저장 장치에 자기장을 쏘여 데이터를 완전 삭제 방식)'로 했다면 복원 여부는 불투명해질 수 있다.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전산 전문가가인 임씨가 복원 가능한 삭제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만약 국정원이 삭제 자료를 복원했다면 그 자료는 원본 자료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신만만했던 국정원이 임씨의 자살로 다시 궁지에 몰렸다. 자살로 불거진 의혹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다면 '국정원발 민간인 사찰' 논란은 거세질 전망이다. 국정원이 부정했던 '사악한 감시자'라는 이름을 계속 달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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