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유서, 소름 돋는 마지막 한 문장

by 염준모 posted Jul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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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도 제기한 유서 미스터리 <조선일보> 7월 20일자
ⓒ 조선일보PDF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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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내국인에 대한 사찰 전혀 없었다'며 자살. 그런 얘기는 살아서 입증해야 더 설득력 있는데 - <조선일보> 7월 20일

지난 18일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임아무개 요원의 유서가 지난 19일 공개됐다. 총 3장의 유서 가운데 가족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진 2장을 제외한 1장이 공개됐다.

유서가 공개된 뒤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보수 언론을 자임하는 <조선일보>가 20일 자 1면 머리기사로 '국정원 직원 유서 미스터리'를 제기할 정도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심지어는 지난 19일 국정원 직원 일동이 낸 공동성명에서조차 "(죽음을 선택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왜 그랬는지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정도다. 그는 도대체 왜,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인가. 

그의 선택은 그만이 알 뿐이다. 최근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관련해 담당자로서 업무 스트레스가 컸다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이다. 동료도, 유가족도, 수사 기관도 토요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선 20년 차 베테랑 전산 요원이 왜 7시간 후인 낮 12시에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공개된 그의 1장짜리 유서를 가지고 몇 가지 의혹을 역추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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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전날 경기도 용인시 야산에서 자살한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의 유서가 공개되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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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1] 지우면 안 되는 '대북 자료' 그는 왜 지웠나

지난 17일(금) 국가정보원이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이 <해킹 프로그램 논란 관련 국정원 입장>이다. 2장짜리 보도자료로 내용을 요약하면 '국정원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국민을 사찰하겠습니까?'이다.

국정원은 35개국 97개 기관이 해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나라가 없습니다"며 "어떤 정보 기관도 이런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하지 않습니다"고 주장했다. '믿어달라'는 내용 외 별다른 사항이 없는데도 보도자료를 스스로 내놓고 어느 나라도 이런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하지 않는다고 하니, 국정원의 대응 태도는 매우 특이하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보도자료 뒷부분에 나온다. '믿어달라'는 호소조에서 갑자기 "우리의 안보 현실은 엄혹하기 그지 없습니다"라고 톤을 바뀐 국정원은 "어떻게 하면 북한에 관해 하나라도 더 얻어 낼 수 있을까 매일처럼 연구하고 고뇌합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노력을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며 각계각층의 협조를 당부했다.

국정원의 보도자료가 언론에 전달된 이튿날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전산 담당 요원 임아무개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유서는 하루 뒤인 지난 19일 공개됐다. 1장짜리 유서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등장한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하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 임 요원 유서 중"

지난 17일 국정원 보도자료의 핵심은 '국정원을 믿어달라' 그리고 '북한에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얻어낼지 노력하고 있다'로 요약된다. 지난 19일 공개된 임아무개 요원의 유서는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라면서 '대테러, 대북 공작 활동'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고 밝히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는 왜 '대테러, 대북 공작관련 지원 활동' 자료를 삭제했을까. 국정원에서 보도자료에서 공개한 것처럼 해당 지원 활동은 오히려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사용을 정당화해주는, 존재한다면 결코 삭제해서는 안 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2] 국정원 전산 요원, 무엇을 했고 무슨 책임을 지려 했나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과 정보위 소속 박민식 의원이 지난 19일 임씨 자살과 관련해 국정원으로부터 파악한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철우 의원은 "임씨가 어떤 (해킹) 대상을 선정하는 역할을 한 게 아니다. 대상을 선정해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에 심는다든지 그런 작업을 하는 기술자"라며 "(해킹) 결과물이 들어오면 그 내용을 그대로 대테러 담당자라든지, 이런 사람에게 이관해 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설명을 듣노라면 의문이 뒤따른다. 실무 기술을 지원하는 그는 왜 극단의 선택을 했나. 임씨에게 '해킹 대상'을 정해서 알려준 '요원'은 누구이며, 임씨가 해킹 결과물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준 '대테러 담당자'는 누구인가. 단순히 기술 요원으로 역할이 격하된 듯 소개된 임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라면 업무 지시자에 대한 보호 혹은 관찰이 시급한 상황이 아닌가. 

여당 정보위 간사는 '임씨는 전달자'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임씨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아 사용한 '요원'에게 확인하면 임씨 자살과 관련된 의혹은 사후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유서에 남긴 임씨의 주장도 뒷받침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보안 전문가인 임씨가 삭제한 자료를 국정원은 "아무리 늦어도 이번 달 안에 삭제된 파일이 100% 복구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국정원이 일부 정보위원에게 보고한 내용이라고 언론에서 보도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가. 설명을 듣다 보면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내용이 보인다. 20년 동안 국가 기관에서 사이버 요원으로 활동한 임씨가 죽으면서 삭제했다고 고백한 내용이 '이달 중 100% 복구'되는 내용이었다면 그는 왜 삶의 마지막 순간에 굳이 삭제 내용을 보고했으며, 이를 "자신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라고 설명했을까.

[미스터리3]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국정원 직원 일동의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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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혹'만 키운 자살 국정원 직원 자살이 오히려 '사찰의혹'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겨레> 7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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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의 유서가 공개된 후 매우 이례적인 성명서가 언론에 공개됐다. '국정원 직원 일동 동료 자살 관련 공동성명'이 나온 것이다. 제목은 '동료 직원을 보내며'다.

상식의 범주에서 판단한다면 발표 시기나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임씨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지난 18일은 토요일, 그의 유서가 공개된 것은 일요일인 지난 19일 오전이었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서가 19일 오후에 공개됐다. 해당 성명서를 작성한 주체는 누구며, 다른 국정원 직원들은 휴일에 어떤 방식으로 성명서에 참여했는가.

위의 지엽적인 놀라움을 뒤로 하고 해당 성명서 내용을 보면 더욱 놀랍다. 지금 국정원 직원들은 동료의 죽음에 정치적 해석을 유도하는 느낌까지 받기 때문이다.

국정원 직원 일동은 이 성명서를 통해서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거 없는 의혹을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이 더 이상 정보 기관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습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 직원은 유서에서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고인의 죽음으로 증언한 이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고 주장했다.

일국의 정보 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왜 이토록 조바심을 내며,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가. 현재까지는 아무 것도 밝혀진 사실이 없지 않은가.
국정원 직원 일동이 어떻게 유서가 공개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임씨의 말을 확신하며 성명을 발표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스터리4] 국정원이 이미 밝힌 내용, 유서에 왜 또 썼나

임씨의 유서 내용은 짧다. 그 내용은 그의 직장 상사인 국정원장, 차장 그리고 국장을 대상으로 쓰인 글이다. 앞서 언급한 지난 17일 국정원에서 공식 발표한 '보도자료'에 국정원은 "국정원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국민을 사찰하겠습니까?"라며 내국인 사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

18일 자살 직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임씨의 유서 내용에 등장하는 문구다. 이미 하루 전에 국가정보원에서는 '결코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국민에게 밝혔다.

그런데 임씨는 왜,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사실을 이미 국민에게 밝힌, (그렇기 때문에 내용을 훤히 알고 있을) 자신의 상사들에게 '사찰은 없었다'는 해명을 하며 마지막 길을 떠나야 했는가.

'내국인 사찰 없었다'는 임씨의 주장을 믿지 않는 국정원 내 라인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찰이 없었더라면, 그는 대내외에 입증할 내용이 없었을 것이다. 언론의 의혹 제기처럼 그런 내용은 살아서 밝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국정원에서 '사찰은 없었다'고 밝힌 사안에 대해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에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해석이 불가한 대목이다. 어느 경우든 '내국인 사찰' 여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규명돼야 할 대상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