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서 100억 빚이 사라집니다

by 염준모 posted Aug 28,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부실 채권을 소각해 장기 연체자를 구제하는 '한국판 롤링 주빌리' 운동이 '주빌리 은행'으로 거듭납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8월 사단법인 희망살림과 함께 진행한 '부채 탕감' 기획으로 부실 채권 '땡처리' 실태와 약탈적 대출을 고발했습니다. 그 사이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로 792명의 빚, 51억 3400만 원이 사라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주빌리 은행 출범을 앞두고 다시 '부채탕감 기획 시즌2'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은행장 된 이재명-유종일 "주빌리은행 기부하세요"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주빌리은행 출범식에서 공동은행장을 맡은 이재명 성남시장(왼쪽)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돈보다 사람이 중요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빌리은행 기부에 동참해 달라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빌리은행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악성채무자, 장기연체자로 전락한 시민들을 구제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주빌리은행은 시민의 기금으로 연체된 부실채권들을 사 모아 채무자의 형편에 맞게 갚아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날 이재명 성남시장은 "개인의 채무를 없애주는 것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개인의 노동 가능한 인구를 늘리는 효과이다. 결코 사회적으로 손해가 아닌 이익이 되는 사업이다"며 "시민의 모금으로 시작하는 주빌리은행이 국가 정책으로 되길 바라며 모두가 함께 고통없이 사는 세상에 첫 출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힘으로 100억 원의 빚이 사라집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장기 연체 채권'을 상징하는 종이에 불을 붙이자마자 활활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마술사도 아닌 국회의원과 시장,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 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독한 추심'만 판치던 부실 채권 시장에 진짜 '마술사'가 등장했다. 시민에게 모금한 돈으로 부실 채권을 값싸게 사들여 채무자들이 형편껏 갚게 하는 '주빌리 은행'이 그 주인공이다. 27일 오전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주빌리 은행 출범식 대미를 장식한 이 '마술 퍼포먼스'는, 채무자가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무서운 빚도 시민의 힘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독한 추심'에서 '형편껏 7%만', 주빌리 은행의 '마술'

기사 관련 사진
▲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주빌리은행 출범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주빌리은행 출범식 현장. 공동은행장을 맡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홍종학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 등 관계자들이 악성채무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채권소각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채무독촉 받지 않아 살 것 같아요"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주빌리은행 출범식에 참석한 한 시민이 연체한 빚으로 고통을 받다가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 도움을 받은 사연을 발표하며 눈물을 흔리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날 출범식에선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한 평범한 채무자의 사례 발표였다. 지난 2011년 8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과 두 자녀를 홀로 부양해온 송아무개(45)씨는 이날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 재무상담사의 도움으로 어렵게 마이크를 잡았다.

송씨는 지난 2012년부터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도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으로 온전치 못하다보니 카드 돌려막기로 빚만 잔뜩 늘었다고 한다. 결국 연체한 빚을 감당하지 못한 송씨는 지난 5월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 도움으로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송씨는 "빚으로 음주 가무를 즐긴 적도, 사치한 적도 없지만 남의 돈을 쓴 건 큰 잘못이었다. 앞으로 더 능률적으로 일하고 재무 상담을 통해 꼭 써야할 곳에 돈 쓰고 나머지 줄이겠다"면서 "언제까지 누워있을지 모르는 남편, 아들, 곧 아직 초등 5학년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다"며 시종 울먹였다.

송씨는 "개인회생 서류를 제출하고 더는 채무독촉을 받지 않아 살 것 같다,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는 내 편인 것 같다, 내가 비빌 언덕인 것 같다"면서 "아울러 나처럼 혼자 감당하기 힘든 채무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상담센터가 전국 방방곡곡에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끝으로 송씨는 주빌리은행 공동은행장인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에게 자신이 추천하는 보험에 가입해 달라며, 강한 '삶의 의지'까지 보여줘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서울시, 성남시 이어 경기도까지... 중앙 정부는?

서울시, 경기도, 성남시 등에서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주빌리 은행' 출범을 주도한 사단법인 희망살림의 제윤경 상임이사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 세 자치단체장이 채무자를 위한 금융복지상담센터를 개설해, 많은 채무자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다, 함께 길을 찾아주는 상담사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 상임이사는 "금융회사들이 부실 채권을 헐값에 대부업체에 내다파는 걸 보고 우리가 직접 채권을 매입해 추심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대신 빚에 허덕이는 채무자들에게 새 출발할 기회를 주고자 주빌리 은행을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채권 매입 과정에서 시민들의 십시일반 모금 등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비영리 단체인 주빌리 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장기 채무자 792명의 빚 51억 원어치를 탕감한 '한국판 롤링 주빌리 운동' 빚 탕감 프로젝트의 연장이다. 주빌리 은행은 부채 원금 3~5% 정도에 '땡처리'되는 장기 연체 부실채권을 매입한 뒤 채무자에게 원금 7% 정도까지 형편껏 갚게 하고 그 차익으로 다시 채권을 매입해 다른 채무자를 구제하는 데 쓸 예정이다.(관련기사: 박원순-이재명 양 날개, '주빌리 은행' 뜬다)

공동은행장인 유종일 교수는 빚 탕감이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에  "우리가 구제하려는 채무자들은 이미 고통을 받을 대로 받은 이들"이라면서 "이들에게 세상을 찾아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의무"라고 밝혔다.

유 교수는 오히려 "걸핏하면 세금으로 구제 금융을 받는 금융회사야말로 도덕적 해이"라면서 "채무자 권리를 보호하면 금융회사들이 더 신중하게 대출하도록 해 금융이 선진화를 도와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1조 투자하면 50조 탕감... 채무자 살리기가 경제 살리기"

기사 관련 사진
▲ 주빌리은행 출범, '채무자들의 새 출발을 위해'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주빌리은행 출범식에서 공동은행장을 맡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등 관계자들이 채무자들의 새 출발을 기원하며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재명 시장도 "IMF 이후 기업 공적자금 168조 7천억 원 가운데 110조 원 정도를 회수해 58조 원 정도가 사라졌다"면서 "정부가 기업을 위해선 200조 원 가까운 돈을 투자하면서 서민들을 위해선 제대로 투자한 적이 없는데 1조 원을 투자하면 50조 원의 장기 연체된 악성 채권을 탕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지금은 주빌리 은행에서 민간 모금으로 출발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예산으로 서민의 빚을 탕감해주는 사업을 해야 한다"면서 "개인을 살리는 효과도 있지만 노동 가능한 인구가 느는 효과도 있어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지난 2013년 12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공정채권추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채무자가 대리인의 도움을 받도록 한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미국도 100년 동안 연구해 채무자를 회생시키는 게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도 당시 주택담보대출 받은 사람들이 (회생 제도로) 빚 독촉 안 받고 돈을 벌어 소비하니까 미국 경제가 살아난 것"이라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홍 의원은 "빚을 안 갚게 하는 제도가 나오면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는 주장하는 건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모르고 탐욕적인 마음가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금융시장이 발전하려면 이런(채무자 보호) 제도들이 있어 채권자가 돈을 빌려줄 때 한 번 더 따져보는 게 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채무자들이 채무의 늪에서 탈출해 다시 경제 활동을 하게 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건강한 경제 살리기는 없다"면서 "주빌리 은행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의 부채 정책, 채무자 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