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선사의 힘그리고 고려강의 슬픈 추억

by 조정래 posted Sep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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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갈 때 마다 나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간다.

 

그 자부심은 바로 인천공황과 나리다 공황의 지리적 ,시설적 차이다.

 

한마디로 나리다 공항이 소나타 구형이라면  우린 최고급 에쿠스차로  자랑해도 될 정도다.

 일본인들도 나리다 공항은  1970년도 가장 큰 실패작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근자에 와서는

화장실도 우리가 더 깔끔하다.

청소만큼은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처럼 죽기살기로 쓸고 딱는 민족이 없다고 본다.

 

과거 일본인들이 김포공항에 내리면 마늘 냄새로 숨쉬기 힘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습도가 높아선지 몰라도

일본 공항이나 지화철 냄새는 한마디로 지독한 냄새가  난다.

쌀과 간장을 먹은 인간이  땀으로  토해내는 고약한 냄새인데 굳이 우리 언어로 풀자면 갱상도 말로

 

"쿤네"

 

에 가깝다.

 

접근성은 더더욱 우리가 더 좋다.

 

인청공항 가는 길은 공항전용 고속도로라서 365일 막히는 법이 없고 아름다운 서해안의 부드러움도 함께 즐길 수 있지만   나리다 공항은 주말 혹은 비가 내리는 날은 막히면...3시간 넘게 출발 비행기표를 확인해야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답답하다.

 

(그게 싫은 분들은 신쥬꾸에서 닛뽀리역에서 갈아타는 전철노선을 택하면 된다)

 

우린 누군가 나서서 무엇을 만들려고 하면 우선 반대 데모부터 하는 나라이고 설사 잘 만들어 놓아도  당체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만든 사람이 죽고 없어도 욕을 하는 습성이 있지만  아무튼   인청공항 하나만큼은 아주 잘 만들었다.

 그 당시 국내에 없었으니 모르는데 그 이후 도대체 인천공항을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하여 물었더니 박철언씨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만든 것이란다. 참 잘만들어서 나는 늘 감사한다.

 

자부심은 여기까지다.

 

무려 20년 넘게 공항까지 매번 마중 나오는 아오끼씨 (일본의 아오끼라는 이름은 사실 백제 유민성씨 중 하나다) 차에 짐을 가득싣고 동경시내로 가는데...무전기에서 아오끼씨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두사람의 교신 내용을 들어보니 아오끼씨 무선 친구 중 한명이  나가노 온천을 갔는데...온천 뜨거운 물에 삶아서 먹는 계란 집에서 나리다 -동경 시내를 달리는 아오끼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가노겐은 산악지방이라서 우리나라 정선지방처럼 아리리 곡조 비스무리한 민요가 있는 지방인데

그래서 3년전에 나도 나가노겐 온천에가서 하룻밤 유숙하고 돌아 왔었다.

 

이제 글의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리다 고속도로와 나가노 온천장은 엄청 멀다.

그런대 차안에서 작은 무전기 하나로 무료통화가 이루어 진다.

 

출력은 겨우 2.5w....아마추어 무선사들이 흔히 말하는 qrp다.

 

정부가 단 1원도 지원하지 않았는데..순수 시민의 힘으로 이제 일본은 5w 소출력 무전기로 일본 전국을 넷트워크화여 통신이 가능한 나라다.

소출력 통신이다보니 자연 높은 산에 중계기를 설치하고 그 중계기와  교신자들을 연결하여 전국 통신망이 구축 된 것이다.

전쟁이 나서 핸드폰 통화가 두절되어도 이젠 일본은 크게 시민통신은 걱정 할 일도 없는 나라가 된셈이다.

 

조금전 달리는 차 안에서 멀리 떨어진 나가노 온천여행하는 사람과  한시간을  이야기해도 단 1원도  돈 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전기 에너지가 조금 들어가는 것 뿐이다.

 

이런 통신혁명을 위하여 일본에 개인이 세운 무선 중계기는 무려 220 곳이 넘는다.


나라 세금은 들어가지 안아도 개개인 시민 무선사들의 구축한 것이 전국 어디라도 무선통신이 가능하게된 획기적인

큰 힘으로 발전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미미하나마  무선중계기들이 몇 곳 있다.

그도 늘 싸우고하더니...일부는 결국 패쇄되었다는 이야기를 일본 무선사로부터 들었다.

 

무선사들만 본다면 일본인은 늘 조용하다.

우린 늘 서로 헐뜯는 분쟁이 자주 일어 나고 공금횡령 사건은 20년째 들어 온 부끄러운 이야기들이다.

 

아무튼 일본은 무선 중계기가 무려 220개가 넘어도 전국 네트워크를 창출한 일본 무선시민들은 단한번도 싸움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자기가 설치했다고  유세를 하거나 자랑하는 자도 없고 ..나같은 한국인이 일본에 머무를 때 항상 무료로 사용하여도 탓하는 이도 없고 반대로 엄청 친절하다.

 

이런 일본 시민정신이 러시아 함대도 침몰시키고,대중국을  난도질하고  , 동남아를  다 삼키고 미국 본토를 공격한 힘이 아닐까 한다.

 

엄청난 파괴력을 갖춘 원자탄이 없었다면   미국인도 쉽게 일본을 항복 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전쟁에는 졌지만 그래서 일본인들은 미국인에 대한 분노가 그리 깊지 아니하다.

조용히  뭉치는 일본인  특유의  자신감이라고 본다.

 

사진1.

 

동경 서북부에가면

 

"고려강"

 

이 흐른다.

 

고려패망시  강원도 산골로 도망친 분도 있고 아예 일본으로 도망친이들이 무려 1천여명 가깝다.

우리 역사가  분쟁,동족간 살육 , 심지어  타민족을  끌여들여서까지  동족에게  칼을  휘두른 일이 자주 일어났다보니 자연  안전한 일본으로 엄청 도망을 쳤다고 보면  일본의  고려왕국은   당연히  일어날수 있는  타당한 피난 역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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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려강이 흐르는 곳에 산 800 고지에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에 숨어살던 산촌이 있다.

지붕에 학그림은 마치 안동 구담 김씨 고택의 그림과도 너무 흡사하다.

내 개인 사견이지만 ..그 마을은 고려패망후 목함타고  화급히 도망친 우리 선조들이 만든 마을이 아닐까하여 이번에 한번 둘러 보았다.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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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서 국가 전화국이 불통되어도 소출력으로 일본 전국 어디라도 통신이 가능하도록하는 개인이 세운

무선 중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