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않은 이야기, ‘두 개의 문2’ 촬영기
2009년 1월20일 용산 남일당 건물이 불에 탔다.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국가는 철거민 8명에게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이들은 감옥에 갔다. 삶의 터전과 동료를 잃은 사람들은 대구, 순천 등 각지의 교도소로 흩어져 차가운 감옥 바닥에 몸을 뉘였다.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일당 건물이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 주차장으로 덮였다.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형을 채우고 나왔을 때는 사람들의 기억도 콘크리트로 모두 덮인 듯했다. 많은 이들이 그날의 용산을 잊었다. 하지만 그날 그 불타 무너진 망루에 올랐던 이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의왕의 서울구치소. 파란 조끼를 입은 남자 두 명이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구치소 언덕을 올랐다. ‘파란집 용산참사동지회’라는 글씨가 쓰인 조끼를 입은 이들은 천주석씨(52)와 김창수씨(41)다. 두 사람은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있다가 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돼 4년 동안 복역한 후 2013년 출소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 <두 개의 문> 한 장면
이날 이들은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불법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을 면회하러 왔다. 천씨는 “그때는 박 집장님(집행위원장)이 우리를 면회 왔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밖에 나와서 집장님을 보러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라고 말하며 면회 순번을 알리는 전광판을 쳐다봤다.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김씨와 천씨를 포함해 총 5명의 사람이 1평 남짓의 면회실로 들어갔다. 후텁지근한 면회실의 유리벽 너머로 수의를 입은 박 소장이 나타났다. 박 소장은 “용산 가족들 잘 있어?”라며 면회객들의 안부를 챙겼다.
총 10분의 면회 시간 중 절반이 지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김씨가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자리를 바꿔서 앉아 보니까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좀 되네요. 저한테 가족들 있는데 왜 그랬냐고 하시더니 (소장님도) 가족들 있는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가족들 때문에 힘드시죠? 저도 그랬어요.” 박 소장이 웃으며 “애들 많이 컸겠다”고 답했다. 짧은 10분의 면회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유리벽 안과 밖만 바뀐 채로 서로를 면회해야만 하는 이들의 착잡한 마음은 모두 카메라에 담겼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일란(43)·이혁상(41) 감독은 지난해 1월부터 용산참사 이후 출소자들과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두 개의 문2>(가제)를 촬영하고 있다. 이날 구치소에 들어가고 나오는 천씨와 김씨의 모습이 모두 카메라에 담겼다. 김 감독은 “예전에 자신들을 면회 왔던 박 소장이 안에 있는 걸 보는 두 분의 심정은 말로 굳이 표현 안 해도 정말 착잡할 거다”라며 “그냥 오늘은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다룬 영화 <두개의 문2>의 김일란, 이혁상 감독이 21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촬영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2012년 <두 개의 문>에서는 용산참사 당시 현장 영상과 법정에서 오고 간 경찰 측의 증언을 보여주며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짚어보려 했다. 2편에서는 출소한 철거민 5명의 일상을 통해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왜 지금 말하려 하는 것일까. 김 감독은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과 비슷한 사건들이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며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용산에 대해 다시 환기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어쨌든 용산참사는 끝나지 않았고 진상규명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이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용산참사 같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같은 일들이 왜 계속 일어나는지도요. 국가에 의해 사람들이 내몰리거나 버려지는 일들은 용산참사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