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돈이 아니다. 노동자,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쌓아올린 돈이다. | |
ⓒ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
한국 자본주의가 3%대의 저성장구조에 접어든 상황에서도 독점재벌은 그들의 곳간에 수백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실업,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강도 강화 등을 기반으로 하는 혹독한 노동착취구조 때문이다.
수백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으면서 승승장구해 온 독점재벌은 역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9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월수입 200만 원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고, 청년실업자를 포함한 400만 명의 실질 실업자가 방치되고 있는 상황은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위기이지만, 자본가들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에게 실로 위기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재벌 사내유보금이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정치 세력들이 그 목적이 무엇이든 모두 재벌 사내유보금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재벌의 이해를 최선두에서 대변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도 '불경스럽게' 재벌 사내유보금을 슬쩍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집권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했던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도 재벌 사내유보금을 그대로 둬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존 정치세력들이 모두 대표적인 재벌독점 이윤인 사내유보금을 국가 세금으로 거두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즉 사내유보금을 사회화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이들 주장에 숨어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들은 한국 사회에서 재벌독점 이윤 사회화를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정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 사내유보금에 세금 메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로 노동자, 서민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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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기업소득환류세제나 야당이 제출하고 있는 법인세 인상 방안은 모두 재벌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식이다. 2014년 7월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하면서 만든 기업소득환류세제 또한 투자·임금증가·배당 등이 당기 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한 경우 미사용 금액의 10%를 추가적으로 과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임금이나 투자는 늘어나지 않았고, 사내유보금은 늘어났다.
야당의 방안은 어떤가. 2012년 추미애 의원은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사내유보금에 법인세 22%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리고 재벌이 스스로 '사회적 책임준비금'을 적립하면 그 부분은 면세한다는 안을 함께 제출했다.
2014년에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은 재벌의 소득금액에서 법인세액, 각종 부가세액, 법정적립금을 공제한 금액의 50%에 15%의 세금을 붙이는 방안을 제출했다. 이인영 의원의 방안대로 하면 연간 2조 원 정도를 세금으로 거둘 수 있다.
2015년 8월 은수미 의원도 재벌 사내유보금에 법인세를 높이자는 안을 제출했다. 이자소득·배당소득·주식소득·부동산 임대소득 등 기업 목적을 벗어난 대기업의 자산운용 소득에 대한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개인소득세와 형평에 맞춰 38%로 인상하자는 안이다. 은수미 의원은 이 안이 시행될 경우 연간 3조1950억 원의 세금을 걷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의 재벌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방안은 세금으로 거둔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이 있는 게 아니다. 연간 세금 2조~3조 원으로는 청년실업 문제든, 최저임금 문제든, 비정규직 문제든 어느 것 하나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실시하면서 의도를 명확히 한 바 있다.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메기면 재벌이 세금 내기 싫어서 투자나 배당을 늘일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추미애 의원도 마찬가지다. 재벌들이 스스로 '사회적 책임준비금'을 적립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은수미 의원은 '재벌 사내유보금의 10%(71조 원)만 투자돼도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듯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재벌 스스로의 투자확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재벌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금 그 자체로는 현재 노동자·서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에게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재벌의 투자를 압박하는 수단 정도다. 이는 결국 칼자루를 재벌에게 맡겨 두자는 것이다. 재벌이 세금 무서워 스스로 사내유보금을 저임금·실업·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사용할 리 없지 않은가? 때문에 기존 정치권이 제출하고 있는 방안은 문제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결국 야당의 방안은 재벌의 투자를 확대시켜 노동자·서민에게 떡고물이 떨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낙수효과'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난 마당에, 세금으로 투자를 유도한다고 낙수효과를 볼 수 있을까. 돈이 안되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 자본의 속성을 감안하면 참으로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그래, '환수'가 답이다
▲ 사내유보금을 민생문제 해결에 사내유보금을 환수하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원, 청년실업 해소, 공공의료 확충 등 가장 시급한 4대 민생문제 해결에 사용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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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재벌 사내유보금 710조 원은 IMF 외환위기 이후 십수 년간 누적된 문제다. 이 누적된 문제를 세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백조 원의 사내유보금이 야당 의원들이 말하는 '기업목적을 벗어난 자산'으로 존재하고 있다. 금융투기·부동산투기·총수지분 확보로 악용되는 자금 수백조 원의 돈을 노동자·서민의 생존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 자산을 야당 의원들 방식의 세금으로 거두려면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생존의 기로에 선 노동자·서민의 입에서 장난하자는 거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환수할 것이냐'다. 재벌을 옹호하는 박근혜 정부가 권력을 쥐고 있고, 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 요소요소를 재벌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가 가당키나 한 것일까.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법인세 인상도 어려운 마당에 말이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려운가, 덜 어려운가로 접근하면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생활임금 쟁취 등 지금 노동자·서민들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들 중 쉬운 것이 있을까? 때문에 가능성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우선 지금의 정세로 볼 때 중요한 것은 재벌 사내유보금으로 대표되는 재벌독점 이윤의 환수를 노동자·서민이 들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자본과 정권이 그것을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이미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비용을 앞세워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해고 확대를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문제인 최저임금, 비정규직은 비용문제를 앞세워 해결하지 못한다고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한국 사회
한국 사회는 이 절박한 문제들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오히려 자본과 정권이 노동자·서민에게 그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청년실업 해소 비용을 노동자들이 떠안고 임금삭감과 해고확대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인가?
그 비용은 지난 십수 년간 노동자·서민의 피땀을 빼앗아서 쌓아놓은 재벌독점 이윤이 돼야 한다.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재벌 곳간에 쌓인 재벌 사내유보금을 환수하는 방안 외에 다른 방안이 있는가? 이미 한국사회는 재벌독점 이윤의 사회화가 화두가 돼버렸고, 그 방안으로 환수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이런 정세 때문에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는 힘을 얻을 수 있고, 운동의 가능성도 열리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길이 없음에도, 사내유보금 환수가 지극히 정당한 방안임에도, 현재의 정치상황 때문에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운동'을 펼치자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일어난다면 방법이나 절차적으로는 얼마든지 환수를 실현할 수 있다. 법인세법을 개정해 사내유보금에 대한 법인세 인상을 할 수 있다면, 재벌사내유보금 환수특별법은 왜 만들지 못하겠는가?
청년실업·최저임금·정규직화 등 노동자·서민의 절박한 문제해결을 목적으로는 왜 기금을 설치하지 못하겠는가? 그 재벌사내유보금 환수로 만들어진 기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감시와 통제가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제 노동자·서민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대중적 환수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청년실업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공격에 맞서기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승패도 결국은 재벌독점 이윤의 환수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와 행동을 이끌어내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2015년 하반기에 사내유보금으로 대표되는 재벌독점 이윤의 환수운동이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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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태연님은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에서 정책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는 2012년 대선에서 무소속 김소연 선거운동본부와 함께했던 이들이 2016년 1월 정당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