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통'이 시작된 '임시정부 파수꾼' 차리석 선생 70주기 추모식

by 염준모 posted Sep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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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통'이 시작된 '임시정부 파수꾼' 차리석 선생 70주기 추모식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5/09/10 [00:14]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 70주기 추모식이 9일 오전 11시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 임시정부요인 묘소에서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회장 차영조)와 '독립유공자유족회'(회장 김삼열)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과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등 독립운동단체 관계자 70여명이 추모식에 참여했다.   © 오마이 뉴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이날 추모식에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과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선생 등을 비롯해 독립운동단체 관계자 70여명이 참석했다.

 

지금 친일 반민족자 후손 박근혜,김무성 등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독립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역사의 벼랑 끝 시점에서 대한민국 법통인 임시정부의 파수꾼이자 재상으로 불리는 동암 차리석. 그의 약력을 통해 평생 독립운동가의 삶이 어떠했는지 가슴에 새겨보자.

▲ 동암 차리석 7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동암을 추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평남 출신으로 숭실중학교 1회 졸업생인 동암은 1908년 도산이 설립한 대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민족교육에 힘쓰다 1911년 일제가 신민회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3년여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19년 평양에서 3.1운동 참가 후 일경에 쫓기다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1921년 <독립신문>이 속간되자 편집국장을 맡은 동암은 사장 김승학, 주필 김은식 등과 함께 언론활동을 통해 항일투쟁 결집에 힘썼다.

▲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이 분향하고 있다.   © 오마이 뉴스

 

1923년 임시정부의정원 의원(현재의 국회의원)이 된 동암은 도산 안창호와 함께 임시정부 재건에 힘썼고, 1924년 남경에 동명학원을 설립하면서 조선 청년들을 독립운동의 일꾼으로 키워냈다. 1922년~1931년까지 10년은 임시정부의 침체기였다. 임시정부는 일제에 쫓겨 14년 동안 머물던 상해를 떠나 항주로 옮긴다.

 

1932년 동암은 김구, 이동녕, 조성환, 신익희 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임명된다. 1933년 임시정부 내무장 겸 비서장에 선임되면서 임시정부 살림을 도맡았다. 임시정부는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조선민족혁명당 등이 조직돼 임정 요인들마저 임정을 떠나면서 와해 위기까지 겪는다.

▲  추모사를 낭독하는 효창원을사랑하는사람들 박기서 회장    © 오마이 뉴스

 

1939년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등 3당이 한국독립당을 결성하면서 동암은 집행위원에 선임돼 정당 활동에 참여한다. 1939년 임시정부 연립내각이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동암은 비서장에 다시 선출된다. 1940년 중경으로 옮긴 임시정부는 직할부대인 한국독립군을 창설해 각종 군사작전을 전개하면서 한국독립운동의 최고 통수기관으로 자리 잡는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차리석은 임시정부 환국을 준비하던 9월 5일 임시정부 청사에서 과로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9월 9일 평생 독립운동가의 생을 마쳤다. 그리고 1948년 8월 백범 김구의 특별지시에 의해 석오 이동녕 주석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지금의 서울 용산구 효창원 임정묘역에 안장됐다.

 

그해 9월 22일 서울 휘문중학교에서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등 정부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석오와 동암의 사회장에서 김구와 이시영은 동암을 이렇게 추모했다.

▲     © 오마이 뉴스

 

"차리석 선생은 해외혁명운동가 가운데 강력한 정신력을 소유하시기로 유명하시었다. 탁월한 사무처리의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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