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표지 | |
ⓒ 푸른역사 |
1963년 12월 14일 오전, 인천의 한 군부대에서 몇 발의 캘빈 총성이 울렸다. 총소리와 함께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한 남자가 확 고꾸라지듯이 무릎을 꿇는다.
몇 발의 총성이 퍼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총소리는 일생을 외세의 압제와 침탈에 저항해 투쟁했던 한 남자의 최후이자 1950년 한국전쟁에 이은 6, 70년대 극단의 증오와 불신으로 점철된 남북관계를 여는 서막이었다. …
그 남자의 이름은 황태성(黃泰成1906~1963)이다.
-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프롤로그' 17쪽
나는 이 책을 어제(10월 28일) 출판기념회에서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뒤 숨을 죽이다시피 오늘 오전까지 읽었다.
마치 어린 시절 선친이나 집안어른들로부터 몰래 들었던 그때의 해방공간 이야기처럼…. 이 책에서는 내게 낯익은 지명과 인물들이 자주 여러 번 등장했다. 나의 출생지는 구미이고, 외가는 금릉군이었다. 이 책 주인공이 활약한 무대가 바로 어린 시절 내가 자란 고장이었다.
사상논쟁
▲ 공동 저자 김학민(오른쪽), 이창훈(왼쪽) 씨가 내빈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
ⓒ 이승철 |
"이곳은 여순반란사건이란 핏자국이 묻은 곳이다. 그 사건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은 죽었느냐 살았느냐, 살았다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모른다면 저 종고산은 알 것이다." - 위의 책 339쪽
이 발언으로 대통령 선거 정책대결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윤보선 - 박정희 두 호보 간의 전력 폭로와 그에 대한 고발 으름장으로 얼룩졌다. 그해 9월 25일, 윤 후보 측은 서울 종로 교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박정희 씨에게 묻는다'라는 유인물을 대량으로 뿌렸다.
- 세칭 북괴간첩 황태성 사건의 전모를 국민 앞에 밝혀라.
- 황태성은 대구 10·1 폭동 당시 박정희의 실형과 같이 활약했다는데, 그에 대한 진상을 밝혀라.
- 황을 박정희 형수가 수차례에 걸쳐 면회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이 유인물에서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도 있었고, 그렇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 위의 책 341쪽
이런 공방전이 연일 신문지면을 덮었는데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던 때라 이런 보도는 신문이 거의 도맡았다. 나는 그 당시 중동고교생으로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 누하동 배달원이었다. 당시 야당지지 성향의 동아일보는 선거 막바지에는 거의 날마다 호외를 발행하여 매일 밤 지역구로 배달했다. 그래서 그때 동아일보 배달원들은 독자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시상논쟁의 시말을 어제 일처럼 잘 기억하고 있다.
누가 황태성을 죽였나?
▲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출판기념회장 | |
ⓒ 이승철 |
그해 10월 15일은 제5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개표 결과 박정희가 470만 2,642표를 얻었고, 윤보선은 454만 6,614 표를 득표했다. 윤보선은 총력을 다해 황태성 사건을 이용해 박정희에게 일대 사상공세를 펼쳤지만, 그 결과는 초박빙 15만 표 차 패배. 박정희가 휘파람을 불며 대통령 직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그 사상논쟁으로 야당은 군정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음과 동시에, 결과적으로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북의 밀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는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위의 책 351~2쪽
박정희를 곤경에 빠뜨렸던 황태성 사건은 박정희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형으로 살아 움직였다. 상황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여기에 미국도 개입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박정희로서는 어떻게든 황태성 문제를 매듭짓고 가야했다. 죽이든 살리든 황태성을 비밀리에 다시 북으로 돌려보내는 패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 위의 책 352쪽
대통령 선거 후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에게 황태성 사형을 즉각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제 6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박정희의 공화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그해 연말 김형욱은 다시 박정희를 찾아가 황태성 사형 집행승인서를 내밀었다.
"아까운 사람인데 꼭 사형시켜야 하나?"
"각하, 우리가 미국과 야당에 몰리지 않으려면 사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 위의 책 352쪽
어색한 만남
▲ 황태성의 손녀 황유경 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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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 유승희 국회의원과 임재경, 김종철, 문국주 등 재야인사와 현기영 소설가, 홍일선 시인, 이승철 시인, 윤일균 시인 등, 100여 분이 참석한 이날의 출판기념회는 대단히 차분하고 진지했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인 황태성 조카 권상능씨와 미국에서 이날을 위해 귀국한 손녀 황유경(65)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비명에 가신 황태성 할아버지를 현양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돕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우열 시인이 진행한 '황천 강을 건너 극락으로 보내는 진혼 굿 한마당'에 그는 눈시울을 적시며 해원의 광목천을 움켜잡았다.
이 책에는 황태성의 손녀 황유경 씨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어색한 만남 장면도 나온다.
"고2 때 가을이었을 겁니다. 그때 제가 '꽃씨회'라는 청년봉사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요즘의 '사랑의 열매'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달아주고 성금을 받아 그 돈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단체였어요. … 회원 10여 명이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그 중 제가 대통령 앞으로 가 열매를 달아주면서 돌연 '제가 황태성씨 손녀입니다'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박 대통령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고, 그러면서 허둥지둥 행사는 끝이 났지요. …."
- 위의 책 364~5쪽 요약
진혼굿
▲ 오우열 시인이 황태성 영가를 극락세상으로 보내고 있다. | |
ⓒ 이승철 |
국악인 박종순씨의 '고혼'이라는 제목의 애달픈 진혼 시조창과 시인 오우열의 천도 진혼굿 한마당이 관심을 끄는 가운데 이날 출판기념회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한국현대사 미스터리"의 하나인 '황태성 사건'의 전모를 발굴, 추적한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라는 이 책은 이즈음 역사교과서 국정화 현안에 맞물려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모을 듯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원조 빨갱이'에서 '통일운동의 사도'로 황태성의 행적이 재조명되리라. 늦깎이로 현대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이 책은 역사 행간에 숨겨진 판도라 상자를 여는 듯한 짜릿함이었다.
그날 밤 행사를 모두 마치고 늦은 시간 원주로 돌아오는데 그새 흐린 날씨는 맑게 개어 텅 빈 가을 하늘에는 보름을 갓 넘긴 달이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열차를 타고 오면서 달님을 향해 지상의 평화와 이 겨레 소망인 조국의 평화통일을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조국의 수호신이시여! 부디 이 나라, 이 겨레를 굽어 살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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