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메가 전후의 한정된 공시디에 담을 곡들을 한정해서 고르자니 이것도 일인 것 같습니다.
찾아오실 분들께 뭔가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떤 기준을 삼을만한 곡들의 필요도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런 음악 저런 음악 다 들어보실 수 있고 LP도 가능합니다.
CD나 LP 등의 음반을 들고 오시면 얼마든지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애써 곡들을 정해 고르고, 비록 무손실 음원들이지만 CD를 파일화하고 다시 그것을 CD로 굽는 왠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은 과정을 통해 하나의 CD를 만들어 보려는 것은 공유와 나눔에 대한 갈망 때문입니다.
아래가, 하나의 상징처럼 남기를 바라는 한 장의 CD에 담을 곡들의 목록입니다.
01. Sonata No.1.1, in G Minor, BMV 1001
Bach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중 첫번째 곡으로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소리를 그 표현의 무한함에 더불어 신비함과 영적인 영역까지 헤아려보게 해줍니다.
바이올린 소리는 굳건하게 바닥을 딛고서 공간을 마음대로 울리고 날아다닙니다. 그렇다해도 바닥을 디딘 굳건한 바이올린의 중심은 흐트러지는 법이 없고 흐트러지지도 않습니다.
시게티(Joseph Szigeti)의 모노음반에서 발췌했습니다.
02. Arias for Soprano and Violin-Bete aber auch dabei
역시 Bach의 방대한 칸타타에 속한 숱한 아름다운 Aria 중 한 곡을 소프라노 여가수 캐슬린 배틀(kathleen battle)과 바이올린 연주의 일가를 이룬 이작 펄만(Itzhak Perlman)이 노래하고 연주합니다.
바로크 오케스트라인 수도원 창설자 루까의 이름을 딴 성루까악단(orchestra of st.luke's)이 함께 하는데, 소프라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조화를 들어볼만 합니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엔 바이올린이 선율을 이끌고 오케스트라가 뒤를 받치고 따르며, 노래가 시작되면 소프라노가 가장 앞서고
바이올린이 그 다음, 오케스트라가 뒤를 따릅니다. 그 반호흡의 시간차가 소프라노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제각각
더욱 살려주고 빛내주며, 음악을 더욱 음악답게 합니다.
03. The Art of Fugue - Contrapunctus I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또 Bach의 음악들 중 푸가의 기법을 에머슨 현악사중주단(Emerson String Quartet)이 현악사중주로 연주합니다.
푸가는 하나의 주제 곡조를 다른 소리들이 차례대로 이어가며 반복을 하면서 서로 어울리며 화성을 창출하는 기법인데, 초등학생들도 하는 노래 이어부르기 또한 푸가의 기법이라 하겠습니다. 대중적이 된지도 오래인 그 기법이 먼 옛날 Bach에 의해 진작 실험되었으니 음악적인 기법 면으로도 Bach의 위대함이 새삼스럽습니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의 4중푸가로 진행되는 조화와 어울림이 절묘합니다.
이때 어느 쪽도 홀로 튀어나오거나 뒤로 빠져선 안되며, 제각각 현을 긋는 시작과 마무리가 서로 호흡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연주에서부터 그게 되지 않았다면 음반으로 나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4대의 악기들이 서로 호흡이 어긋난다면 그것은 100% 오디오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04. Sonata no.3 in E flat major, op.12 no.3- Adagio con molt'espressione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작곡가가 누구인 것 같냐고 물어보면 베토벤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영롱한 곡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장대하고 웅장하며 열정적이며 강한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평생의 지기인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의 바이올린과 오보린(Lev Oborin)의 피아노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의 백미라 할만할 것입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나에서 무대이자 판을 까는 피아노는 때로는 선율을 이끌기도 하고 바이올린의 뒤에 물러서서 뒤를 받치기도 합니다. 피아노가 짠 판 위에서 노니는 바이올린은 주로 선율을 이끌다가 피아노가 선율을 이끄는 부분에선 숨고르기를 하듯 뒤를 따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오른손 건반음이 주거니 받거니 어울리고, 피아노의 묵직한 왼손 건반음은 시종일관 아래를 떠받칩니다.
그 절묘한 호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아름답고 영롱한 선율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05. Concerto for Piano, Violin, Cello and Orchestra in C major, Op. 56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의 삼중협주곡 또한 그 아름다움과 조화가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입니다.
쉐링(Henryk Szeryng)이 바이올린, 캠프(Wilhelm Kempff)가 피아노, 푸르니에(Pierre Fournier)가 첼로를 연주하는 곡입니다.
베토벤 삼중협주곡의 2악장은 오케스트라가 나직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시작을 열면 첼로가 먼저 나서고 이어 피아노가 뒤를 잇고, 바이올린이 가세하면서 비로소 세 개의 솔로악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그 자체로 뭔가 감동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가만히 뒤만 받치고 있기 보단 때로는 일어났다가 때로는 휩쓸듯이 하면서 전체적인 판을 짜고 이끕니다. 그 때문에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이 잘 안들리고 묻힐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순으로 가세해서 셋이 함께 오케스트라와 어울릴 때도 피아노와 첼로는 놀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연주에서 피아노와 첼로 소리가 잘 안들린다면 지휘자의 능력부족이며, 오디오에서 그렇다면 오디오의 함량미달이 될 것입니다.
06. Emmanuel Chabrier - Espagna
프랑스 근대음악의 시초라 할만한 샤브리에의 스페인 관현악곡은 경쾌하고 발랄한 현악기들도 좋지만, 딴따라 악기라고 천대받는 경향이 있는 관악기들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관악기와 현악기들은 물론 타악기들까지 한바탕 신나게 놀이판을 벌이는 듯해서인지 교향악단들의 공연에 자주 선곡에 오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관현악과 타악이 합창하듯 할 때는 자칫 소음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연주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전 세계 교향악단들 중 늘 첫손가락에 꼽히는 빈필(Vienna Philharmonic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07. Tannhauser- Begluckt darf nun dich (Pilgrims' Chorus)
남성합창단으로 이루어진 순례자 그룹이 무대의 왼편에서부터 천천히 걸어나오면서 노래합니다.무대 위엔 여성 솔로와 남성 솔로가 노래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천천히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나오는 남성합창단의 노래엔 테너 파트, 바리톤 파트, 베이스 파트가 제각각 제 영역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각 파트 개개인들의 목소리들도 하나하나 선명합니다. 그것들이 모두 어우러지면서 이루어지는 합창은 무대 한가운데에 서면서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일대 장관을 만들어냅니다. 거기엔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의 반주도 빛을 잃을 지경입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순례자들의 합창, 솔티(georg solti)의 지휘입니다.
08.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 Moderato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1악장은 장중한 오케스트라와 묵직한 피아노의 조화가 가히 피아노 협주곡의 제왕이라 할만큼 압도적인 곡일 것입니다. 남성미가 물씬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피아노를 잡아먹을 듯이 기세당당하고, 피아노는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그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파도를 때로는 힘차고 때로는 유연하고 때로는 영롱하게 타고 타닙니다.
피아노가 잠시도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고, 결코 오케스트라의 힘에 밀리지도 않으므로 어느 순간에도 피아노의 연주는 명료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특히 피아노의 저음부인 왼손 건반음은 오케스트라의 장중함에 묻혀서 안들리기 쉽상인데, 왼손 또한 오른손 못지 않게 바쁩니다.
오케스트라는 카라얀이 지휘하고, 피아노는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입니다.
09.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3. Allegro ma non tanto
바이올린 협주곡들 가장 극적이라 할만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오이스트라흐가 모국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연주한 곡입니다.
사람들은 오이스트라흐가 하이페츠를 비롯한 소련의 연주자들처럼 서방세계로 망명해서 부와 명성을 누리는 길을 마다하고 끝까지 소련인으로 남은 걸 안타까워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모국에서 연주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듣다 보면 과연 그런 시각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모국에서 모스크바 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마치 엄마를 만난 아이처럼 뭔가 기분이 좋아 들뜬 듯 하고, 흥에 겨운 듯 하며, 오히려 더욱 자유분방한 느낌을 줍니다.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서방세계를 돌면서 연주여행을 계속하고 서방세계의 엄청난 찬사와 열광적인 환호에도 불구하고 모국을 버리지 않고 죽어서도 모국에 묻힌 오이스트라흐를 보면 정치체제나 국경 같은 것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난 자리 그대로 제 위치에서 제 역할에 몰두한 거룩한 예술인의 영혼을 느낍니다.
그 느낌이 고스란히 그의 바이올린에서도 묻어 나옵니다.
10. Mahler - Symphony np.6-2.Scherzo
말러의 교향곡들 중 가장 요란하고 시끄럽다고 할만한 교향곡 6번의 2악장입니다.
게다가 왠지 락 중에서도 헤비메탈 스피릿이 충만한 것 같은 스베틀라노프(Evgeny Svetlanov)의 지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요란하고 시끄러워도 음악적인 질서를 잃지 않아야 음악이며, 말러의 교향곡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음악을 듣는 기기인 오디오는 거기까지 거뜬히 수행해내야 할 것입니다.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오디오로 표현되는 말러 교향곡의 컨디션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한 오십 장 장쯤 구워보려 합니다.
구운 것들이 3월 4일과 5일 양일간 동이 나길 바랍니다.
물론 오시는 분들께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
사양하셔도 당연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