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naver.com/oldygoody
뭘 하든 말이 되고 이야기가 있고 스토리가 깔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월의 선물용 cd는 독주곡과 실내악들로 엮어보았습니다.
아는 게 없어서 가장 고생스러운 때입니다.
1. PAGANINI: 24 Caprices op. 1 - 13
파가니니의 24개의 바이올린 솔로곡 중 13번째는 악마의 웃음에 비유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서양쪽은 4자에 관한 우리쪽 관념만큼 13에 대한 관념이 견고한 까닭도 있지 싶습니다. 그런데 Michael Rabin이 1958년에 연주한 바이올린은 특유의 개성 때문인지 녹음상태 때문인지 소리 끝이 갈라지고 가래가 낀 듯한 음색인데, 그래서 악마의 웃음이 더욱 잘 연상되긴 합니다.
파가니니의 음악과 연주가 기교에 치우치고 깊이가 없다는 평들이 많은데 막상 깊이를 따지자면 다른 깊은 음악들이 무엇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 MOZART: Piano Sonata No. 8 in A minor KV 310 - 1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엔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입니다. 모짜르트 특유의 발랄함과 명랑함이 가장 먼저 다가오지만 그에 뒤따르는 왠지 모를 우수와 우울한 분위기는 모짜르트를 경박하게 까부는 단계 훨씬 위에 놓여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인걸, 식의 자세가 잘 엿보이는 모짜르트식 당당하고 거침없는 곡조와 음률이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Alfred Brendel의 피아노 연주입니다.
3~4. BACH: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토카타는 바흐의 음악이 아니다 맞다로 설왕설래 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다음 얘길 못 들어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토카타가 바흐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쪽은 가장 바흐답지 않은 곡이라는 게 그 이유인데, 웅장함과 암시가 자못 노골적이어서인 것 같습니다. 그러든말든 오르간 소리를 즐기기에 이보다 더 멋진 곡이 있을까 싶습니다.
Helmut Walcha의 오르간입니다.
5~6. LOCATELLI: Violin Sonata in F minor op. 6-7 "At the Tomb" - 1, 2
바흐 보다 10년 늦게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이 이탈리아 양반은 바이올린 연주실력이 꽤나 엄청났던가 봅니다. 크레모나 지역이 바이올린의 생산지로 이름이 높고, 바흐 보다 7살 형인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의 대가 비발디에 훗날 바이올린 하나로 세상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파가니니까지 태어나는 걸 보면 이탈리아와 바이올린은 뭔가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로카델리의 무덤 앞에서는 누구의 무덤 앞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가장 가까웠던 이의 무덤인 듯, 비통함과 애절함이 하늘까지 닿을 듯한 1악장에, 결국 죽음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분위기인 2악장,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고 지울 수 없는 회한과 아련한 그리움이 흐르는 3,4악장까지 멋진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1악장과 2악장이 연결됩니다. 로카텔리의 무덤 앞에서를 더 잘 연주하는 연주자가 없을 것 같은 Leonid Kogan의 바이올린에 Andrei Mytnik의 피아노가 곁에서 도우미를 합니다.
7~9. VIVALDI: Sonata for Cello and Continuo No. 5 in E minor RV 40 - 2, 3, 4
바이올린 작곡 지천인 비발디의 곡들 중 첼로와 저음통주를 위한 소나타 다섯번째곡 2,3,4악장입니다. 앞선 로카텔리의 무덤 앞에서와 이어도 별 위화감이 없는 걸 보면 당시 동시대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작곡방식의 틀도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Janos Starker의 첼로, Gyorgy Sebok의 피아노입니다.
10. SCHUBERT: Piano Trio No. 2 in E flat major D. 929 - 2
감성을 자극하는 음률을 잘 빚어내기로는 슈베르트만한 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Isaac Stern의 바이올린, Leonard Rose의 첼로, Eugene Istomin의 피아노, 트리오가 슈베르트식 애수와 감성을 우아하고 품위있게 연주합니다.
11. BEETHOVEN: String Quartet No. 13 in B flat major op. 130 - 5
베토벤 현악사중주의 꽃이라 할만한 15번 3악장 Adagio molto의 전신과도 같은 13번 Cavatina입니다. Adagio molto espressivo란 부제가 따로 붙어있기도 합니다. 지난 날들 보다 다가올 날들을 바라보는 듯한 현시의 예감을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느낌입니다.
1961년판 Budapest String Quartet의 연주입니다.
12. BRAHMS: Piano Quintet in F minor op. 34 - 1
브람스는 뭔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거 좀 어떻게 해보고 싶긴 한데 잘 안되는 그런 안타까움이 절절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굳건히 나아가는 사나이의 기세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왠지 공감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깊은 매력이 느껴지는 브람스라고나 할까.
Artur Rubinstein의 피아노와 Guarneri Quartet의 협연입니다.
13. BACH: Die Kunst der Fuge (Art of Fugue) BWV 1080
미완성으로 끝맺음하는 바흐의 푸가의 기법 맨 마지막 악장입니다. 어떤 깊은 암시를 숨기고서 끊임없고 끝모르게 이어지는 듯한 선율은 인간의 선율이라기 보단 우주적 선율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선율은 홀린 것처럼 이끌려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면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래서 미완성인가. 그러나 귀에서는 사라졌으되 무한한 침묵과 함께 영원히 남은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어쩌면 미완성이 아니라 바흐가 바로 그걸 노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바흐니까.ㅎㅎ.
Juilliard String Quartet의 연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