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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녹음 CD의 주제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느릿느릿 느려터진 음악들로 고르다 보니 단 세 곡으로 CD 한 장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 유장하고 장중한 대하드라마가 있고 여운이 그만큼 깊고 묵직합니다.
1. BRUCKNER: Symphony No. 7 in E major - II. 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
예전에 브루크너의 음악을 접했을 땐, 세상에 이 따위로 심심하고 밋밋함과 동시에 지루함을 견딜 수 없게 하는 음악이 또 있을 수 있나,였습니다. 그래도 브루크너 정도는 들어줘야 음악감상을 취미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이를 지그시 물어 있지도 않은 인내심을 끌어올리면서까지 들어보려 해봤지만, 죄없는 브루크너만 지겹고 끈질긴 인간으로 매도할 지경에 이를 뻔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적인 소양과 이해력의 부족 탓도 있었겠지만, 지금이라고 그게 나아진 것도 없지만, 굳이 그걸 들출 것도 없이,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을 때, 음악과 가까워지기 어려운 데엔 음악을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오디오 탓도 크다는 걸 확신하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오디오가 별로면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특히 관악기, 그 중에서도 목관악기들의 소리가 절제를 잃은 현 소리에 가려져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른 소리를 가리는 현 소리가 제대로일 리도 없지요.
오디오 소리가 잡혀가는 대로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다채롭게 살아나고 보여지게 됩니다. 그땐 굳이 음악적 소양 같은 것 없어도 이게 음악이구나, 싶어집니다.
그렇게 듣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주워들을 게 너무나도 많아 지루할 틈이 없는 음악 중 하나가 됩니다.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 2악장은 호른도 아니고 튜바도 아닌 그 중간의 관악기가 주 선율을 열고 어떤 장대한 예시와 암시처럼 현이 펼쳐지면서 길고 긴 곡의 시작을 알립니다. 관악기 파트와 현악기 파트가 주거니받거니 선율을 이끌어 가는데 목관악기들의 아름다움이 특히 빛납니다.
브루크너는 오버하는 법이 없고 어디에도 강렬한 임팩트를 주지 않으려는 자세가 있는 것 같은데, 이 곡 역시 내내 느릿느릿 천천히 나아가고 펼쳐집니다.
소리가 보여주는 화면은 시각적인 화면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 곡은 한 편의 서정적이면서도 장대한 대하드라마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Karl Bohm의 지휘에 Wiener Philharmoniker의 1976년 9월판입니다.
2. BEETHOVEN: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op. 55 "Eroica" - II. Marcia funebre. Adagio assai
베토벤이 원래 교향곡 3번을 프랑스는 물론 그 주변국들에게도 일대 뒤집기판의 바람을 일으킨 나폴레옹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데, 도중에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자 몹시 실망하고 분노하여 어떤 특정한 개인이 아닌, 영웅적인 기개와 정신에 헌정하는 걸로 바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작자도 한마리 뻔하고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구나.
결국은 권력욕으로 가는 나폴레옹을 향한 실망과 분노로 엿볼 수 있는 베토벤의 정신세계와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는 그가 만들어낸 숱한 아름답고 위대한 곡들과 그대로 연결됩니다.
느릿느릿 전개되는 영웅의 2악장은 오히려 크게 대지와 산천을 굽어보면서 인간 위엔 군림하지 않는 영웅의 기개와 정신을 가장 장중하게 펼쳐내는 것 같습니다.
심장의 박동과 사내의 자존을 자극하는 푸르트뱅글러의 지휘곡에 버금갈만한 Rudolf Kempe의 지휘에 Berliner Philharmoniker의 1959년 11월판입니다.
3. MAHLER: Symphony No. 3 in D minor - VI. Langsam. Ruhevoll. Empfunden
말러의 3번 교향곡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거창합니다.
그 중 6번은 사랑에 관한, 영원불멸의 절대적인 사랑이란 것이 내게 보여주고 말해주는 것에 관한 음악적인 언어들로 짜여져 있습니다.
말러가 표현하는 절대적인 사랑의 음악을, 그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게 뭔지 몰라도, 알려 해도 알 수도 없겠지만, 뭐 그런 게 있긴 있겠지, 하면서 느껴지는대로 느껴보는 것만 해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후반부에 가공하게 몰아치고는 장중하게 끝맺음을 하는 기법은 구태의연하기 보단, 들어도 들어도 새롭고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말러를 세상으로 드러내는 데에 크게 공헌한 Leonard Bernstein의 지휘, New York Philharmonic의 1961년 4월판입니다.
시원한 여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