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정상(正常)’이다. 일본 제국군대의 충직한 소위였던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를 사실상 신격화하고, 그 테두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듯한, 그의 사고와 행동 체계 안에서만 정상으로 보인다.
박근혜는 정상이 아니다. 선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5천만 국민과 전 세계 앞에 선언한 대통령으로서 그는 정상이 아니다. 지난 월요일 광복 71주년 기념식의 박근혜 연설은 헌법 전문(前文) 부정(否定)과 위반 정도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만천하에 생생히 보여주었다. 그는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문장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 짧은 문구 자체가 ‘모순’이고, 앞뒤가 바뀌어 있다. 어떻게 ‘건국’은 1948년에 일어났는데, 3년 전에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는 말인가? 만약, 박근혜의 말대로, 올해가 ‘건국 68주년’이라면, 이 보다 3년 앞서 발생한 71년 전의 광복은 ‘무엇’을 되찾은 광복이란 말인가? 박근혜 주장대로 1948년 정부(공화국) 수립이 ‘건국’이라면, 일제 35년 식민통치도 허공에 날아간다. 일제가 ‘(독립)국가’가 아닌 ‘지리적 한반도’를 지배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연설을 들은 일본 사람들, 특히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 지도자들은 웃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왜? 일본의 악랄한 식민통치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라고 요구해 온, 피해자 이웃 국가의 대통령이란 사람의 역사인식이 바로 일본 가해자의 것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요한 관련 기념일을 우리 정부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자. 10월 3일 개천절은 ‘National Foundation Day’이고, 광복절은 ‘National Liberation Day’이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절은 ‘Constitution Day’다. ‘민족’은 ‘nation’이고, ‘국가’는 ‘state’라 할 수 있다. 민족국가는 ‘nation-state’라 부른다.
1919년 3월1일 기미독립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 해 4월 11일 임시정부 법령 제1호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 발표했다. 명실상부한 ‘민족국가(nation-state)’가 탄생한 것이다. 이 헌장의 반포일은 ‘대한민국 원년’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에 따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은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으로 기산하였던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1년’으로 보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으로 표기한 것이다. 헌법전문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박근혜의 헌법 부인(否認)과 부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는 취임 후 맞은 첫 광복절인 2013년 8월15일 기념사에서도 “65년 전 오늘은 외세의 도전과 안팎의 혼란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라고 선언해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부정했다.
박근혜는 탄핵돼야 한다. 아니, 이제는 박근혜를 탄핵해야 한다. 국민들도 참을 만큼 참았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법 제69조에 따라 박근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맹세했다.
그는 헌법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정도가 아니라, 헌법과 헌법전문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헌법 69조의 선서 내용 중 다른 부분의 준수 (노력) 여부에 대한 판단과 평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 전문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부인하고 도전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 미국의 대통령이나 일본의 총리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총칼로 권력을 잡은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는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기 위해, 헌법을 세 번이나 바꿨다. 총칼과 모진 고문을 무기로 공포정치로 일관한 아버지 박정희의 ‘평생독재 시대’에는 헌법을 우습게 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박근혜가 이번 광복절 기념사에서 밝힌대로 ‘경제규모 세계 11위, 수출규모 6위’의 OECD 회원국에서 헌법 부인과 부정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독재자의 딸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셀 수 없는 ‘고통스런 시간’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