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殺與奪 생살여탈

by 염준모 posted Aug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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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殺與奪 생살여탈

부제1

[날 생(生/0) 죽일 살(殳/7) 줄 여(臼/7) 빼앗을 탈(大/11)]



殺生簿(살생부)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떠돈다. 죽이고 살릴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부를 말하니까 閻羅大王(염라대왕)만이 갖고 있을 법한데 실제 주변에서 흔히 접한다. 어떤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할 때, 또는 조직원을 제명시키거나 벌할 사람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말할 때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사용된 역사는 더 오래 됐겠지만 조선 초기 칠삭둥이 韓明澮(한명회, 澮는 봇도랑 회)가 首陽大君(수양대군)을 도와 1453년 癸酉靖難(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자신들을 반대하는 조정 대신들의 명단을 적어 처치했다는 사극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다.

사람을 목숨을 살리거나 죽이고(生殺) 거기에 재물까지 자기 기분대로 주고 뺏는다(與奪)는 이 말은 無所不爲(무소불위)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마음대로 쥐고 흔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절대군주제를 주장한 韓非(한비)의 역저 ‘韓非子(한비자)’에 실려 있다. 군주가 지켜야 할 세 기지 정치원칙을 말한 三守(삼수)편에 나오는 내용을 간단히 보자. 첫째 군주는 신하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는 자들의 행동을 간언했을 때 그 말을 누설하지 말아야 하고, 둘째 신하들을 좋아하고 미워할 경우 측근들의 의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가 군주가 할 일을 신하들에게 일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신하가 정권을 잡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기틀이나, 벼슬을 주고 빼앗는 힘이 대신에게로 넘어갈 것(因傳柄移藉 使殺生之機 奪予之要在大臣/ 인전병이자 사살생지기 탈여지요재대신)’이라 권고한다. 한비자는 秦始皇(진시황)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法家(법가)의 사상가로 꼽히지만 무자비한 법치는 냉혹한 술책이란 비난도 동시에 받았다. 후일 재상 李斯(이사)의 시기를 받아 옥에 갇혔다가 자살하게 된다. 生之殺之(생지살지)도 같은 말이다.

선거철만 되면 공천 탈락자 예상 명단이 적힌 이른바 '살생부 괴문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새누리당을 발칵 뒤집어놓은 40여명의 명단은 처음 정두언 의원의 발설 이후 김무성 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 간의 진실공방으로 번져 눈덩이처럼 커졌다. 대표의 해명과 사과로 가라앉았지만 의정활동 중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 돕지 않은 부산 의원들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또 재선 이상 50%, 초재선 이하는 30% 물갈이를 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도 대상자가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지지고 볶으니 의원을 뽑고 안 뽑고는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는 이야기는 헛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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