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폭염은 참으로 별스러웠다.
폭염이 어찌나 지속되는지 立秋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지경인데 ..그래도 節候는 옛부터 변함이
없을 일이라서 그런지 處暑가 지나니 갑자기 天空에 하늘이 높아지고
구름이
한삼 모시적삼처럼 엷어졌다.
드디어 조석으로 온도가 낮아 지고 갑자기 뀌뚜라미 소리가 寂謠하다.
이제 새벽 강은
안개를 토하고 오곡들은 저마다 지난 봄 내린 穀雨를 기억 속으로 지우고 작평 들판은 흰 이슬이 내리는 白露 전에 풍성하게 익은 낱알을 토해 낼
것이다.
충주에 KBS 클래식 음악을 즐기시려는 어느 오디오 동호인 집을 방문했다가 일을 마치고
내친 김에
선산에 풀도 베어야하고 하니 삼강주막을 거쳐서 내린천변을 따라 은모래 내리는 고향 집에 내려 갔다.
땡감 떨어지는 평상 마루에
앉아서 오랜만에 보리밥을 찬우물로 만든 백미탕에 말아서 한숟가락 입에 넣고 붉은 빛이 드는 터서리 고추를 막 된장에 찍어서 으적거리면서 먹으니
..문득 그 옛날이 떠오른다.
먹을 것이 없어서...그저 한여름에는 찬 우물 한그릇에 시커먼 보리밥을 말아서 찬은 달랑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을 정도였지만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지만 사실 너무 잘 먹어 너도나도 당뇨병이 걸려 야단이지만 옛날 가난한
선비가 즐겨 먹었던 백미탕 시절엔 당뇨병 없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어디에 있겧는가? .
중식후 어디 라디오 노래가락이도 듣고
싶어도 그건 포시랍은 꿈이던 시절이다.
없이 살던 시절인지라..이미자씨 노래가 듣고 싶어서
배먹이소 부자집인 친구 집에
가서 라디오를 동양해서 듣던 기억도 엊그제 같다.
그 시절 핵교서 선생님이 가정사를 조사할 때
"집에 라디오
있는 사람 손들어봐!"
이야기하면 우리 반 64명 중에 딱 한명이 손을 들었섰다.
허긴 초등 3학년
까지는 책상이나 걸상없이 그냥 마루바닥에 엎드려서 공부를 했었는데...라디오를 생각이나 하겠는가?
산골에서 그만큼
라디오는 귀한 물건이 였었다.
라디오 소리가 귀하던 시절 읍내서 삐삐선을 깔아서 산골자기에도 공동? 라디오 시스탬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라디오 살 돈은 없지만 그래도 논마지기나 있었던 봉달이네, 춘자네..그리고 주막집.. 이렇게 셋집이 읍내서 보내져오는 라디오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도 옆집에서도 들으라고 자랑스럽게 쾅쾅 울리곤 했었다.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나는
요즈음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였다.
그러니 학교에서 선생님이 1년에 한번 씩 가정 조사하는 과정에서
"집에 라디오 있는 사람 손들어!"
"집에 삼천리 자전거 있는 사람도
손들어봐!"
조사를 할 때 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아이들은 없었고 검은 눈망울만 땅부자집 아들
이규철만 처다 보았다.
왜야하면 규철이 아부지가 읍내서 처음으로 삼천리 자전거 새것을 타고 다니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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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하룻 밤 자고 나니 ...에구..서울이 실기힘드니 그냥 돈 안드는 고향에서 살까?..하다가도 그래도 일 안하면 이번 여름 전기세 폭탄은
우째하노....
할수없이 문경 새제를 넘고, 미백이 익어가는 장호원 복숭아 벌판을 지나고 서울로 올라와서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가는데...햄버거 가게에서 고등학생들이 우루루 솥아 져 나오면서 저마다 햄버거 후식으로 프랜치 후라이 한봉지와 빅사이즈의 코카콜라를 들고
나왔다.
성북동으로 가는 길 신호등에서 붉은 신호가 걸려 기다리는데..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핼멧 없이 횅하니 지나가고 횡단보도
건너가던 아이가 무슨 불만인지 입을 당나발처럼 내밀고 엄마 손을 잡아 당기면서 씩씩 되더니 급기야 먹던 아이스 크림을
"난 안먹어!"
하면서 아스팔트 위에 팽게쳤다.
혜화 파출소 쪽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고급 자전거를 타고 장난치면서 획획 지나갔고 하늘에선 비 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 사이 다소 신호가 길어지자..옆에 있던 아우디
스포츠 카를 몰던 젊은이가 ..신호 무시하고 그냥 성균관 대학 쪽으로 제임스 딘 영혼처럼 당당하게 올라갔다.
집에
도착하여 차를 차고에 넣고는 나는 조금전 지나 온 동네 골목길을 다시 내려갔다.
조금 전에 골목 길에 무언가 보였기
때문이다.
가서 보니...cd 기기와 오디오 기기가 택배 종이 박스와 함께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지난해 이미 거지 근성으로 부자집 앞에서 주운 스피커가 jbl 40 시리즈?였고, 턴테이불 또한 60만원를 간다는 오리지날
미제 였었기에 이제 지나다가 대문 앞에 버려진 오디오 기기는 내 마음에서 거지근성을 발동하기 충분한 품목이 되어 버렸다.
늙은
남편이나 시아버지가 애지중지 하던 오디오 기기들은 젊은 며느리들에겐 명품가방급 품목이 ?아닌 시절인지라 자연 죽고나면 당장 골목길에 버려지는
품목들이다.
그렇케
거지처럼 주워와서 두껑 열어서 찬찬히 보니 아직 말짱하다.
전기를 넣고 아끼던 아리랑 cd를 넣어서 틀어보니 ...거참 소리한번
시원하게 터진다...
내친김에 이미자씨의 섬마을 선생님 , 문주란씨 동숙이 노래를 걸어보니 그 맛 또한 폭염끝에 처서 바람보다
한참은 웃질이라서 오디오 거지도 대만족이다.
물자가 풍부한 세월이고 나야 부자가 아니지만 사는 일대가 부자 동네다보니 이젠 이런
오디오는 대문 앞에 버려지는 것을 자주도 본다.
아아...갑자기 어릴적 도시락도 못 싸오던 초등학교 시절에
...
"집에 라디오 있는 사람 손들어!"
꿈에서도 이루질 못할 그런 질문을 하시던 김원현 선생님의
목소리가 거실 스피커에서 문주란씨 노래와 어울려 혼변조 음처럼 들렸다.
60 만원대 외제
턴테이불은 막 버리는 나라....
말짱한 앰프와 CD 기기를 그냥 친인척에게도 주지 아니하고 그냥 대문 앞에 막 버리는
나라..
그런거 주워서 들고 다니면 거지 취급이나 무시? 시선을 주는나라
누가뭐래도....한마디로 천지개벽을 한 나라여서 나처럼 거지근성으로 사는 늙은 오빠들이 오디오 생활하기에 별 돈도
안들어가는 세월이다.
오디오 다락방에 제법 오디오들이 많치만 직접 만든 진공관 앰프 종류 빼고는 별 돈도 안들어 간
셈이다
요즈음 한창 듣는 B&W 스피커도 한남동에서 리어카에 포장박스 싣고가시는 분에게 5만원 주고 산 것이니
그 또한
한마디로 공짜나 다름없이 소장하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