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을 추억한다

by 염준모 posted Sep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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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을 추억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제가 생각하는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br/>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진 그런 세상입니다” -1988년 7월 8일 국회 첫 대정부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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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열정으로 ‘5공 청문회’ 스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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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스타'된 노무현 민주 의원 "정주영씨가 가장 힘든 상대였다"
온 국민을 3일간 텔레비전의 포로가 되게 했던 국회 5공 비리조사특위의 일해재단 청문회. 이번 청문회는 5공 비리조사라는 본래 기능과 함께 특위소속 선량들에게는 하나의 시험장이기도 했다. 국민들은 어느덧 채점관이 됐고 의원들은 수험생의 처지에 있었다. 3일 낮밤에 걸쳐 치른 시험에서 채점관들은 낯선 얼굴의 노무현 의원(민주)에게 높은 점수를 매기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많은 의원들이 사실규명보다는 정치연설과 알맹이 없는 호통으로 일관한 데 비해 그는 치밀한 논리를 동원한, 간명하되 예리한 신문으로 노한 증인들을 압도했다는 것.
기사원문: 1988. 11. 1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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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 청문회 일문일답] 성금안내면 불안해서 냈다
△노의원=주식회사라면 채권자에 대한 책임, 1만여명 근로자에 대한 처우및 복지문제 등 대표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업정신이 있는것 아닌가. 풍산금속은 50위쯤 되는 기업인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냈는가.
△유씨=만용이었다. 공연히 잘난체하다 보니 그렇게됐다.
△노의원=권력자에게는 수십억원씩 바치면서 작업사고로 사망한 근로자의 보상금 몇천만원을 가지고 노사분규를 일으키는게 기업정신인가.
△유씨=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기업은 한쪽만 보고는 살 수가 없다.
기사원문: 1988. 11. 10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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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다시 뜬 '청문회 스타 노무현' 영상
격앙된 목소리와 예리한 논리, 전직 변호사답게 재벌 관계자들을 몰아붙이던 당시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노무현. 그 중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유찬우 풍산금속 회장을 매섭게 질타한 장면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기사원문: 2009. 5. 23 [연합뉴스]

신념의 정치가 ‘바보 노무현’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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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합당 반대] 35분만에 끝난 전격 합당 선언
노무현·김정길 의원 등 당 수호팀들이 "반대토론 하라" "투표로 결정하라"고아우성을 치는 사이 주류 측 다수 대의원이 박수와 환호. 이같은 소란 속에 정상구 의장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선포. 정 의장은 당 수호팀들이 "날치기다" "무효다"고 아우성치는 가운데 "만세삼창으로 전당대회를 끝내겠다"고 해 대의원들은 일제히 폭소. 이어 만세삼창으로 대회가 공식 종료된 것은 9시35분께. 그러나 김 부총재 노 의원 등은 "여당하기도 전에 날치기부터 실습이냐"며 대회무효를 외치고 항의했으나 김 총재 측 청년당원들이 회의장 밖으로 끌어냈다.
기사원문: 1990. 1. 30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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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장 선거 출마] 민주 노무현 후보
90년 3당합당을 거부,YS와 결별했다. YS도 독불장군식의 '단독플레이'로 골치를 썩인 그를 설득하기보다 외면했다. 91년 가을 신민당과 '꼬마' 민주당의 통합이 성사된뒤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이후 YS바람이 휘몰아친 14대 총선에서 지역감정과 정면대결해 낙선의 고배를 들었다. 지역구 관리를 철저히 등한시한 데도 원인이 있었다. 청문회스타라는 최상의 경험으로부터 낙선이라는 최악의 경험까지 두루 맛본 그는 원외의 불리함을 딛고 93년 민주당의 가장젊은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기사원문: 1995. 6. 1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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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의 '원칙주의'
"결코 굽히지 않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살아있는 영혼이,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이 정치판에서 살아 남는 증거를 여러분에게 보여줌으로 해서.."
기사원문: 2009. 5. 25 [MBC]

정치인이자 '인간 노무현'이 남긴 말들

파란의 전두환 청문회
전씨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퇴장한뒤 노무현 의원은 증언대를 향해 명패를 집어던졌다. 그는 이 같은 ‘품위 잃은 행동’을 사과했다. 그러나 그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이날의 청문회에 대한 야의원들의 고민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증언의 내용과 저의 행위중 어느 것이 더 비난받아야 하는지┉"
기사원문: 1990. 1. 3 [동아일보]

내가 쓰는 이력서
나의 정치적 출발이 자기반성과 부당한 것에 대한 저항 이라면, 이제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할 수 있는 시각을 성숙시켜 나가는데 노력할 뿐이다. 이를 위해 항상 새롭고 진보적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며 대중들로부터 신뢰받는 정치인이 됨과 동시에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사상과 비전(대안)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내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기사원문: 1991. 6. 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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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무현 민주 의원 “걱정하는 중산층이 더 걱정”
그는 지난 청문회에서 동료의원들이 "회장님 회장님"하고 쩔쩔매는 증인에게는 송곳같은 질문으로, 노사분규 현장의 노동자들에겐 선동으로, 심지어 자신이 주인의 한 사람인 국회에마저 사퇴서를 내던지며 깃발을 휘날렸다. 이 깃발이 꺾이지 않는다면 그는 최소한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우건 좌건 중도건 나름의 분명한 깃발을 들고 나설 것을 유혹하는 자극제가 될 건만은 분명하다."힘 가진자는 결코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투쟁노선에 서있고 "결단과 행동을 주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 집단적 힘을 모으기 위해 선동은 필요한 것"
기사원문: 1991. 6. 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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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으로 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과 정치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 위해 군사분계선 넘으며)
기사원문: 2009. 5. 2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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