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시작된 국회의 조선ㆍ해운산업 구조조정 청문회가 예상대로 허술하다. 조선ㆍ해운업 부실의 원인과 경과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자리인데도 첫날부터 ‘깃털’ ‘맹탕’ ‘먹통’ ‘허탕’등의 비난을 낳았다. 4조2,000억원의 대우조선해양 추가지원을 결정한 청와대 서별관회의 핵심 3인방이 모두 빠진 것은 물론이고, 정부와 관련기관 상당수가 자료 제출을 지연시킨 데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추가지원 결정 과정과 분식회계 실상을 밝힐 핵심 자료를 청문위원들에게 주지 않은 탓이다. 청문회 무력화나 부실화 의도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관련기관의 태만이자 국회 무시다.
청문회 미제출 자료 가운데는 산업은행 이사회의 대우조선 지원결정 회의록과 대우조선 회계실사보고서, 감사원 감사자료 등 대우조선 분식회계와 4조2,000억원의 추가지원 결정 과정에 대한 핵심자료가 몽땅 빠져 있다고 한다. 서별관회의는 회의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정부 측 답변에 대한 반증이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나머지 핵심자료의 미제출 사유로 영업비밀이나 통상마찰 우려 등을 들었다는데 해당기관의 자의적 판단일 따름이다. 더욱이 청문회법이나 국회 증언ㆍ감정법에는 국가 안위에 위해가 우려되지 않는 이상 직무상 비밀에 속하더라도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어, 핑계가 될 수 없다.
정부와 관련기관의 비협조적 자세는 애초에 핵심 증인 3인방의 청문회 기피에서 이미 시작됐다. 당시 경제부총리로 서별관회의 주역이었던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뚜렷한 이유 없이 야당이 제기한 청문회 증인채택에 일찌감치 거부적 자세를 보였고, 그나마 증인으로 채택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행방이 묘연하다. ‘망신주기’라는 엉뚱한 논리로 권력실세인 최 의원과 안 수석의 증인채택을 막아 국회권능을 스스로 무너뜨린 새누리당의 책임도 크다.
특히 최 의원은 청문회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진해운 사태의 혼란상과 관련, “정책 당국이 막무가내식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언급은 아니지만, 자신이 관련된 청문회 개최 자체를 비판한 듯하다. 소신껏 정책결정에 임했다면, 청문회 증인석에서 정책결정 과정에 대해 책임 있게 답하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책 책임자의 당당한 태도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소신만 강조한다면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9일에라도 국민의 궁금증과 의문에 답하고 자신의 소신을 밝힐 적절한 방안을 찾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