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생각 자주 들고 많이 나는 겨울입니다.
오래 전부터 해온 것들 중에서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게 뭐가 있나 보면,
중,고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어오고 있는 음악과 노래들이 가장 앞에 섭니다.
어쩌면 그것 뿐인 것 같기도 합니다.
까까머리 시절엔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통로는 FM방송이었고,
마음에 드는 노래와 음악을 남겨두고 듣고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카셋트 데크에 공테잎을 넣고 녹음하는 것이었습니다.
황인용씨의 진행을 좋아했고, 거기 초대되어 흔치 않은 음악을 소개해주는 초대손님들의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고필이가 되면서 청계천을 놀러가게 되고, 거기서 천 원이면 몇 장까지 살 수 있는 빽판을 구하는 길이 열리면서 음악을 구하고 듣는 길은 조금 더 풍족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노래와 음악들 중 아직까지 남아있고, 듣고 있는 것들을 골랐습니다.
삼사십년 가량 친해 온 노래와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저런 기억과 감상에 겨워지기도 하지만,
과연은 과연 과연이고,
역시는 역시 역시군.
하는 느낌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1. Jethro Tull - Bouree
중2때 FM을 통해 처음 들었던 Jethro Tull의 Bouree를 듣고 쇼크를 제대로 먹었습니다. 정확히는 Ian Anderson의 플루트 연주에 가슴 서늘해지는 충격을 먹은 것이었습니다.
플루트는 계집애들이나 예쁜 척 고결한 척 하면서 연주하는 빌어먹을 더러운 악기 아닌가 했는데, 무슨 이런 플루트 연주가 다 있지, 였습니다.
당시는 인터넷은 커녕 하이텔이나 천리안도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언뜻 들은 연주자와 노래 제목을 분명히 듣지 못해 더 이상 정보를 얻지 못하는 통에 한동안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 연주가 보통 클래식 기타로 연주되곤 하는 J.S. Bach의 Bouree in E minor BWV 996번이 원곡인 건 아예 몰랐습니다.
나중에 청계천에서 손바닥이 시꺼매지도록 빽판을 뒤지다가 저 곡을 발견했을 때 기쁨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멀쩡한 몰골인데도 상거지 행색을 하고 외발로 뛰면서 미친 놈처럼 플루트를 불어대는 Ian Anderson의 행색과 그의 연주, 조소하고 비아냥대고 풍자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음악들은 고필이 시절의 주요 동반자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2. Deep Purple - Anthem
Deep Purple의 초창기 연주들은 클래시컬한 분위기가 물씬한데 이 양반들 음악도 스피커 알맹이들처럼 맨 앞엣것들이 가장 나은가 싶습니다.
Ritchie Blackmore의 기타는 동화적이고 Jon Lord의 키보드는 단아하고 영롱합니다. 무엇보다 당시 보컬이었던 Rod Evans의 부드럽고 따뜻하며 묵직한 목소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정겹게 들립니다.
3. Wishbone Ash - Everybody Needs A Friend
이 노래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중역대에서 노닐면서 서로 주고받듯 노래(연주)하는 트윈기타의 선율일 것입니다. 친구에 관한 고전적이면서도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않을 가치를 말하는 가사내용도 좋지만, 거기에 어울리게 연주되는 기타소리는 이 보다 아름다운 기타연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흠뻑 젖어드는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4. Jeff Beck - Greensleeves
나는 기타 치면 안되겠다, 는 핑계를 준 장본인입니다. 듣는 것과 직접 연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며, 내겐 직접 연주하는 재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에 Jeff Beck의 기타 연주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타로 끊임없이 새로운 음의 세계를 창조해온 이 천재 기타리스트의 거의 유일한 어쿠스틱 기타 솔로곡입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여운은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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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in Lizzy - Still In Love With You
영국 옆에 붙은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의 절대적인 두 음악영웅 Phil Lynott와 Gary Moore의 협연 라이브입니다. 둘 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이 두 친구는 함께 할 때 더욱 빛이 났던 것 같습니다.
신빙성에 여전히 의심이 남아있는 어느 이상한 여자가 제 전생이 아일랜드의 무슨 학자였다고 한 말을 듣고 공연히 아일랜드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과 Phil Lynott의 Thin Lizzy의 음악들과 Gary Moore의 음악들을 듣기 시작한 것은 거의 비슷한 시점이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아일랜드에 살아봤던 이력이 있는지 두 친구의 음악들은 처음부터 정다웠고, 흑인인지 뭔지 분간이 어려운 Phil Lynott의 외모와 험상궂은 Gary Moore의 얼굴도 잘 생겨보였습니다.
두 친구가 함께 한 음악들이 특히 오래 남는데 역시 그 중 맨앞은 이 곡인 것 같습니다.
6. Allman Brothers Band - Whipping Post
개인적으로 감정이입이 가장 잘되는 기타 연주를 꼽자면 아마 Allman Brothers Band의 초창기를 이끌다가 한창이 되기도 전에 오토바이와 함께 저 세상으로 가 버린 Duan Allman의 연주가 아닐까 합니다.
1971년 필모어 이스트 공연을 담고 있는 Allman Brothers Band의 앨범은 락음악 역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명반인데, 그 중 대표곡은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23분짜리 노래와 연주일 것입니다.
악녀에게 희롱 당한 사나이의 고통과 울분을 형벌을 받는 것에 비유한 노래가사는 좀 우습기도 하지만, 슬라이드 기타를 담당한 Duan Allman의 연주는 그 고통과 울분을 체감케 하며, 앨범을 명반의 반열로 끌어올리고, 이 곡을 락음악의 역사에 남게 하는, 대단히 대단하고 엄청나게 엄청난 feel을 보여줍니다.
고교시절부터 시작되었던 상습적인 음주행위의 가장 훌륭한 술안주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7. Blind Faith - Do What You Like
1960년대 후반, 당대의 음악계 고수 중 고수들이었던 Eric Clapton, Steve Winwood, Ginger Baker, Rick Grech 네 사람이 모여 육개월 정도 함께 했다가 다시 찢어지면서 남긴 유일한 음반에 담긴 곡들 중 하나입니다. 네 사람의 악보 없는 즉흥연주가 순서대로 나열되는 구조인데, Steve Winwood의 올갠은 몽환적이고, Eric Clapton의 기타는 블루지하며, Rick Grech의 베이스는 점잖고, Ginger Baker의 드럼은 무당의 한판 굿을 연상시킵니다. 그 연주를 꿰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뭔가 심령적이며 정체 모를 영적인 느낌마저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가 문득 들어보게 되는 곡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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