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소리의 좌우 밸런스가 한편으로 쏠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편하게 듣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서 가운데 위치에 앉아서 듣는 것조차 피하는 편인데
듣고 싶은 음악을 선택해 들을 땐 저도 모르게 가운데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 날도 그랬는데 문득 소리가 오른쪽으로 많이 치우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러지?
관을 좌우로 바꿔 꽂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앰프 내부의 전압도 체크하고 콘덴서 상태도 체크했습니다.
어떤 이상이나 좌우의 상태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쏠린 소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슬슬 머리 위로 열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스피커와 네트워크를 살폈습니다.
오른쪽 왼쪽 스피커를 왔다갔다 하면서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는데,
스피커 바로 앞에서는 좌우의 음량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진의 통나무 거실 탁자를 돌아보았습니다.
바퀴가 달린 녀석은 가만히 있질 않고 제가 건드리면 건드리는대로 밀면 미는대로 움직여 다닙니다.
가운데로 옮겼습니다.
소리의 밸런스가 가운데로 옮겨오고 좌우는 균형을 되찾았습니다.
단 몇 초면 해결될 일을 몇 십분 동안 쓸데없는 짓만 한 저는
바보가 된 것처럼 멍해져서 소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니가 나를 아느냐?
낄낄낄낄....
따라서 웃었습니다.
이 까다롭고 까탈스러우며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소리란 놈을 어떻게 만져주고 어떻게 쓰다듬어줘야
잘 만지고 잘 쓰다듬는다고 소문이 날까,
혼자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리고 인두를 달궜습니다.
새로운 자각과 함께 새로운 부족, 혹은 과잉, 혹은 밸런스의 결여를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한껏 달군 인두로 지지고 싶은 부분을 마음껏 지졌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입가엔 변태스런 미소를 머금고서.
소리를 지진 것이 아닙니다. 소리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까다롭고 까탈스러우며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소리님은 어느 무엇으로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위대하신 소리님께서 지나시는 길목을 건드려주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길을 좀 더 멋지게 닦아볼 모양이니 부디 높고도 귀하신 소리님께서 제게 좀 더 큰
카타르시스와 오르가즘을 내려 주십시오, 그런 마음....낄낄...
소리님께서 뭔가 제게 불편함을 주시면,
저는 소리님이 지나시는 길목 어딘가를 제가 잘못 닦아 놓았다는 걸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 것입니다.
직열삼극관, 방열오극관, 빔관....등등의 진공관은 소리님과 같은 영역에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모실 수 있느냐는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드라이버나 스피커 유닛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네트워크나 앰프의 회로 등을 포함한 나머지 모든 경로는 얼마든지 지지고 볶고 바꿔댈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소리님께서 마음에 드는 표정을 짓지 않으신다면,
그 지지고 볶고 바꿔댈 수 있는 부분 어딘가에, 아니면 그 부분들 전부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오로지 사용자의 잘못입니다.
알텍은 쏜다 - 알텍이 쏘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쏘는 소리를 내게 쓰는 것입니다.
방열5극관이나 빔관은 너무 세거나 멍청하다 - 걔네들이 그런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그렇게 쓰는 것입니다.
네트워크는 안쓸수록 좋다 - 나는 네트워크를 모른다는 말이 더 합당합니다.
그것은 못 쓰는 물건이다 - 내겐 그것을 다룰 능력이 없다.
등등...이쪽 계통에선 바르게 고쳐써야 할 표현들이 너무 많습니다.
깨닫지 못한, 아예 모르는 영역은 깨달았거나 알아낸 것들의 나머지 전부입니다.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합니다.
알아갈수록 알지 못하는 무한의 세계를 실체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겸손의 미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필연의 수순입니다.
인간은 무한을 아우를 수 없습니다.
내가 최고야, 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곧 나는 병ㅅ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공관과 빈티지로 상징되는 분야를 통하는 소리의 길목들을 아는대로, 경험한대로 짚어보면
그 길목들에서도 무지와 혼돈과 착각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지금 이순간, 같거나 비슷한 시스템들과는 근본이 다른 소리를 얻고,
다른 여러 사람들이 거기에 감탄하고 동의했다고 해도
그게 끝이니, 완성이니, 천상의 소리를 얻었다느니 설레발을 친다면,
그 또한 그 순간부터 곧장 병ㅅ되는 건 분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음악을 즐기는 데엔 어떤 지장이나 방해가 없다는 것이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위로, 위안, 휴식이자 만만치 않은 기쁨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참,
저는 소리를 모릅니다.
다만 소리가 지나가는 길목을 어떻게 하면 소리가 어떤 표정을 짓더라, 하는 것은
제법 알고 또 더 알아가는 중입니다. 나름대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