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데” “음질은 사람을 얽어매어 조인다”
나는 1964년도 초등학교 5학년때 흑석동 중앙대학교 입구에 살때,
그때 데모 엄청나게 할때인데 우리집 장독대에서 데모하는것을 많이 구경을 했는데 그때도 최류탄을 쏘면 우리집까지 최류가스가 많이 날라와 많이 맡아왔을때 부터,
우리집에는 그귀한 전축이 있었고 침대도 킹사이즈로 있었고 손에 쥐고 다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녹음기도 있고 가정부누나도 있는 조금있는 집안이었다
혼자있을때 아버님이 사오신 LP판을 종종들었다
"그~대와 단둘이~서 가~보~았으면~" 하는 아직도 그노래의 곡명을 모르지만 가사만 조금안다.
그초등학교 5학년생이 막연하게 노래가사에 그대가 누군지 누가될지 모르는 미래에 내연인에 대한 동경으로 감성이 풍부하게 작용을 하게되어 "내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는때가 있었다.
그때를 깃점으로 음악을 듣다가 가세가 기울어 못듣다가 신림동에서 중학교 2학년때 형과 그친구들이 전축을 조립하고 스피커도 알맹이를 사다가 스피커 괴짝을 만들어 벽에 다가 걸어서 들었는데 돈만 생기면 맨날 LP판을 사오고 들었다, 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톰존스의 딜라일라, 채리핑트맘보,아기코끼리 걸음마등을 듣다가~
또 가세가 기울어 그마저도 못듣다가 군대제대후 직장다니면서 인켈 단품을 거금들여서 사와서 카셋트테이프로 들으니 LP판이 필요없을 것 같아 그귀하디 귀한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카셋테잎으로 들었는데-
결혼후 집장만후 인켈7단 콤포넌트를 들었다 참으로 음악이 좋았다 음악을 멋도 모르고 진정으로 사랑하여 들었는데 1998년 직장을 용산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가 문제였다.
용산에는 전자상가란게 있어서 놀러갔는데 샾에서 으리으리한 외제오디오기기를 접하고 들어본 순간 이러한 세상도 있다는걸 알고부터 월급쟁이가 맨날 샾에서 구경하다가 하나씩 하나씩 바꾸기 시작하여 이제는 국산은 2002년전에 없어졌고 우리집을 거쳐간 기기들을 보면 적지않은 분량은 되리라 사료됨.
멀리는 대전까지 날밤을 새어서 지방까지 가서 사온걸보면 맘에 안들어 몇일있다가 내놓고 hi-fi와 av를 겸해서 들을때는 정말로 바빳는데 팔고나면 아하 그게 명기였구나 하는게 있고 스피커만 40여개, 리시버 8개, dvdp 4개, 앰프20여개, cdp6개, 스피커케이블, 인터선, 파워선, 멀티탭 수없는 바꿈질로 내가 찾는 음질을 찾아서란게 정해져 있는것도 아닌 것을 찾아서 헤맨다는 것에~
얼마나 어렵고 유혹의 굴레에서 내게 맞는 경제력에서 혼란의 극치를 경험하며 못찾을시 마음의 공허함이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좋은사람이 많지만 그중에 각박한 사람도 있다, 뭐 사러 갔다가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아주 냉랭하고 차갑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유순할 것 같은데 처음에 멋모르고 조금만 네고 해달라했더니 현장 네고한다고 기분나빠서 안판다고 그냥 내쫒는 사람도 봤다
그런 사람들은 없는 경제력에 운용하려니 그만큼 각박한 것이다.
음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끈기, 지혜, 음악성, 경제력이 받쳐줘야만 하는 거지 거기서 1가지만 모자라도 힘드는 것라고 개인적 견해라고 사료되는데,
음악을 사랑한게 아니라 음질을 사랑하여 온걸 생각하니
너무나 내자신이 거시기하여 이제 어르신이 된나이에 또바꿈질의 유혹에 넘어가니 너무나 피곤하고 내자신이 가여운 마음에 이글을 쓰니-
여러분은 부디 나 같은 전철을 밟지마시고 음악만 사랑해야지, 음질까지 사랑하면, 평~생 고생하니 현명하게 사시길 소망하는것으로 갈음합니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 합니다.
1964년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1952년 용띠들...
어쩌면 집안 형편조차 그리도 비슷한지..
맞습니다.
음악을 사랑해야지요.
그런데도 음질을 자꾸 찾습니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