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해강 유근형 선생의 청자 상감 송학문 홍시형합

by 신정원 posted Aug 12,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예가 故 해강 유근형 선생의 청자 상감 송학문 홍시형합입니다. 보존상태 완벽합니다.

 

해강 유근형 선생은 일제강점기로 인해 국내 도자기의 맥이 끊어져 갈때, 온 생애를 바쳐 고려청자 기술을 복원한 분입니다.

 

[해강 유근형]

유근형(柳根瀅, 1894년 4월 5일 ~ 1993년 1월 20일)은 대한민국의 도예가이다. 호는 해강(海剛)으로 '유해강'으로도 불린다. 고요지(古窯址)를 찾아 옛 청자의 파편을 발굴, 직접 그 성분을 연구함으로써 고려청자의 비색(秘色)을 비교적 잘 살린 청자도공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출신으로, 서울 보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8세 때 일본인이 경영하던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 입사, 처음으로 상감(象嵌) 기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후 주로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전국 각지의 도자기공장, 즉 진남포(鎭南浦), 회령(會寧), 금교(金郊), 금화(金華), 풍기(豊基) 등지의 기사로 전전하면서 기술을 연마하였다.[1] 1960년대 경기도 이천에 가마를 짓고 잃어버린 고려청자 기술을 되살리는데 평생을 바쳤다. 1990년 5월에는 이천 수광리에 해강도자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아들 유광열 관장이 뒤를 잇고 있다.

 

본 제품 판매가격은 35만원입니다. 가급적 직거래 희망합니다.

 

직거래 가능 장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리현동입니다.

 

문의 및 주문 : 010-2733-1076 으로 문자 또는 카톡

 

입금계좌 : 국민은행 517102-01-343293 신정원

 

[해강 유근형 海剛 柳根瀅 Yoo KunHyong(1894 ~ 1993) 약력]

 

1894~1993. 일제강점기부터 서울과 이천을 중심으로 고려청자의 재현을 위해 활동했던 도예가(陶藝家). 

 

기관 경력 

1960년 이천 해강 고려청자 연구소 설립, 연구소장 역임 

1990년 해강 도자기 미술관 설립, 대표 역임 

고려청자 명장 

해강 도예 박물관 관장 

 

전시 

1928년, 일본 벳부 박람회, 벳부 

1971년, 개인전, 동경, 오사카 

1972년, 전시회, 동경, 오사카 

1973년, 개인전, 신세계 화랑 

1973년, 전시회, 동경 미쯔코시 백화점 

1980년, 개인전, 일본 

1982년-1983년, 한국 전승도예협회전 

1999년, 근대를 보는 눈: 공예, 국립현대미술관 

백수기념전 

 

수상 

1928년, 일본 벳부시 박람회 금상 

1950년, 제1회 대한민국 수출 공예품전 우수상 

1954년, 제3회 전국 국산품전 문교부 장관상 

1955년, 해방 10주년 생산품 박람회 최우수상 

1956년, 캘리포니아국제박람회 금상 

1973년, 문화 공보부 장관 표창장 

1981년, 제6회 전승공예전 국무총리상

 

[작가소개]

 

1894년(고종 31) 4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나 1909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11년 서울 묵정동에 일본인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가 세운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서 일하면서, 도자기 제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의 옛 가마터를 조사하고 재료에 대해 연구하였다. 1955년 한국조형문화연구소(韓國造形文化硏究所)의 성북동가마[城北洞窯, 澗松窯, Kiln of Korean Art Society]와 1956년 한국미술품연구소(韓國美術品硏究所)의 대방동가마[大方洞窯]에서 조각장(彫刻匠)으로 일하다가, 1958년 경기도 이천시 수광리에 내려가 자리 잡았다. 1967년에 해강고려청자연구소(海剛高麗靑磁硏究所)를 설립하였고, 1990년에는 장남 유광열과 함께 해강도자미술관(海剛陶磁美術館)을 세웠다. 1993년 1월 20일 백 세로 사망하였다.

일본인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가 1911년 8월에 설립한 청자공방인 한양고려소에서 조각장(彫刻匠)으로 일하게 되면서, 고려청자 재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옛 청자 가마터를 조사하면서 고려청자의 재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1955년 10월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의 성북동가마에서 조선시대 백자를 현대화시킨 백자 제작에 참여하였고, 구황실 재산을 임대하여 1956년 가을에 설립된 한국미술품연구소의 대방동가마에서는 조각부에 소속되어 청자연구 및 조각장으로 일하였다. 1958년 대방동 가마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이듬해부터 경기도 이천시 수광리의 광주요로 자리를 옮겨 제작에 참여하였다.

1967년 해강고려청자연구소를 세우면서부터 매병(梅甁), 다완(茶碗) 등의 청자 모조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판매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천시가 도자전문 도시로 발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81년 이천 도예가들이 전통도자문화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한국전승도예협회에 노석경, 안동오, 조소수, 지순탁 등 원로 전승도예가와 함께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일본 별부박람회(別付博覽會) 금메달(金牌)(1928), 제1회 대한민국 수출공예품 전시회 가양상(佳良賞)(1950), 제3회 전국국산품전시회 문교부장관상(1954), 해방 10주년 생산품박람회 최우수상(1955), 미국 캘리포니아 국제박람회 금메달(1956), 동아일보 공예품전 전승공예부문 특선(1969), 제1회 관광민예품경진대회 대상(1971) 등을 수상했다. 1963년 인간문화재 청자도공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198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호 청자장(靑磁匠)에 선정되었다. (출처/해강도자미술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간미술)

 

vert.jpg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